인터뷰 차 양동근을 만나러 가는 길. ‘4차원’ ‘까칠’ ‘예측불허’ 등의 수식어를 가진 그이기에 첫 만남이지만 설렘 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행여 그의 심기를 조금이라도 건드린다면 곧바로 분위기가 냉각될 것만 같은(?), 약간의 불안감도 없지 않았다.
이 모든 게 쓸데없는 상상이었음을 알게 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안녕하세요오옷!!” 다소 장난스럽게, 우렁찬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는 그의 첫 마디, 약 1~2초 만에 얻은 깨달음이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얼굴을 마주 보고 이야기를 나눴다. 표정은 온화했고, 말은 길고 진지했다.
A. 무슨 소문? 인터뷰 할 때 애를 먹인다고? (하하!) 나 알고 보면 그런 사람 아닌데.
Q. 원래부터 이렇게 편한 사람이었다고?
A. 사실 그건 아니다. 예전엔 인터뷰가 싫었다. 또 누군가 나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이야기해도 크게 신경 쓰질 않았다. 그냥 그런가보다 했다.
Q. 그런데?
A. 이젠 좀 바꾸고 싶다. 나를 둘러싼 오명을 씻어야겠다. (불끈!) 물론 나에게 거리감을 느낄만한 성향들도 있겠지만 분명 아닌 부분들도 많으니까. 어릴 땐 그저 입조심 하느라 바빴다. 마음의 여유가 좀 생겼다. 이제야 사춘기가 끝났나?
Q.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큰일 난다던데. 어떤 특별한 계기가 있는 건가?
A. 아빠도 되고 남편도 됐으니까? 많은 부분에서 변화가 생긴 것 같다.
Q. 좀 더 구체적으로?
A. 사람에 대한 소중함이 커졌고, 마음의 부담 같은 게 적어졌다. 작품을 고를 때도 ‘꼭 주인공을 꼭 해야겠다’는 생각이 없어졌다. 오히려 주연을 했을 때 표현할 수 있는 감정의 폭이 좁고 평면적인 것 같다. 물론 현실적인 부분도 고려하게 됐다. 아기 분유 값 벌어야 하니까. (하하)
Q. 그래서 이번 영화 ‘응징자’에서 첫 악역에 도전했나? 가장 행복한 시기에 가장 독한 캐릭터라니.
A. 개인적인 부분에서도 전환점을 맞았지만 배우로서도 변화가 필요했다. 늘 해오던 캐릭터가 아닌 새로운 것을 하고 싶었다. 배우로서의 스펙트럼을 넓히게 된 계기가 됐다. 찍을 때는 정말 정신이 없었는데 영화를 보니 잘 한 것 같다. 신선하니까.
A. 창식이는 학창시절 많은 죄를 지었지만 별 문제의식 없이 산 것 같다. 집안의 권력과 돈 덕분에 어려움 없이 사회에 적응했다. 한 때의 객기? ‘격한 사춘기를 보냈다’ 정도로 치부하고 현실을 살아온 인물. 돈만 많고 딱히 자식 교육에 관심이 없던, 술만 먹으면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돌변하는 아버지를 보면서 무의식 중에 적잖은 충격을 받고 자란 것 같다. 게다가 젊은 새 엄마가 생겨 어린 나이에 많은 아픔을 겪으며 엄한 곳에 화풀이를 한 것 같다. 만약 준석(주상욱)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과거를 잊고 정상적인 삶을 살았을 거다.
Q. 실제 아내가 임신 중이라 연습할 때마다 애를 먹었다고.
A. 욕설은 기본, 온갖 패륜을 일삼는 친구라 연습 내내 쉽지는 않았다. 집 안에서 연습할 공간이 마루 뿐이라 할 때 마다 미안했다. 틈틈이 동화책도 읽어주고 예쁜 말도 하면서 태교에 힘썼는데 여의치는 않았다. 아이가 나왔을 땐 만감이 교차하더라.
Q. 영화가 다룬 ‘학교 폭력’. 아버지 입장에서 보면?
A. 확실히 이전과는 느낌이 다르다. 내 아이가 가해자이든 피해자이든 ‘학교 폭력’의 대상자라고 하면 가슴이 아프다. 특히 ‘학교폭력’이란 게 표면상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쉽게 자신의 상태를 털어놓기가 힘들 테니까. 평소에 아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대화를 좀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의 문제에 개입은 하 되 충고나 조언에서 끝나면 안 될 것 같다. 힘들겠지만 부모로서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Q. ‘응징자’는 그런 면에서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나?
A. 사실 장르가 스릴러이다 보니 피해 학생들에게 어떤 치유의 역할을 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가해자 입장에 놓인 이들이 봤을 때 어떤 경각심을 줄 수는 있을 것 같다. 이번 영화로 ‘학교폭력’의 심각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Q. 영화 시사회 후 주변 반응은?
A. 다행히 아직까지는 좋다. 캐릭터가 너무 강해 속으로는 걱정을 했는데 부모님은 평소처럼 담담하게 보셨다. 특히 아내가 내게 좀 더 믿음이 생긴 것 같다. 앞으로 내가 더 잘 할 수 있도록 내조를 잘 해주겠다고 하더라. 배우로서의 가능성을 더 크게 봐준 것 같다.
Q. 아내에 대한 사랑이 깊은 것 같다. 아내 자랑 좀 해줄 수 있나?
A. 나 ‘팔불출’ 스타일 아닌데. (긁적) 아내는 나만큼 개성이 뚜렷한 사람이다. 그렇지만 생각과 성향이 정반대다. 코드가 완전히 다르다. 그래서 배울게 참 많다. 현장에서 완벽하게 나의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에 늘 쫓기듯이 무거운 책임감을 안고 살아왔다. 아내는 말 한마디, 생각, 향기가 나와는 다르다. 남들처럼 살려고 하지 않는다. 남의 시선을 크게 신경 쓰지도 않는다. 여유와 신념이 있다. 아내 덕분에 이전보다 여유로워진 것 같다.
Q. 앞으로 어떤 남편, 아빠가 되고 싶나?
A. 좋은 남편이 되고 싶은데 어렵다.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아직 서툴다. 기도하는 남편이 되고 싶다. 아빠? 친구 같은 아빠가 되고 싶다.
Q. 배우로서도 제2의 시작이다. 어떤 배우가 되고 싶나?
A. 계단 같은 배우가 되고 싶다. 일찍 연예계에 들어와 스포트라이트를 받아 봤다. 하지만 그 이면의 고독함, 또 부담감도 겪었다. 이제서야 많은 것을 내려놓았다. 마음은 편안해졌고 시야는 넓어졌다. 이젠 모두가 나를 밟고 한 단계 한 단계 올라가도 좋다. 배우로서도 그런 존재가 되고 싶다.
A. 천만 관객을 넘는다면, 여의도에서 올 누드를 선보이겠다. 여의도 시작 지점부터 끝까지 옷을 모두 벗은 채 달리기를 하겠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한현정 기자/사진 유용석 기자 kiki2022@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