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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지난 9일 개봉한 영화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를 만들면서 “수명이 단축될 정도의 스트레스를 느꼈다”고 했다. 10년 동안 이불 속부터 응축해둔 엑기스를 그는 이 영화에 모두 쏟아부었다. 탈진 할만도 했다. 장 감독은 “아쉬움은 남지만 후회는 없는 작품이다”고 했다.
“그래, 내가 보고 싶은 영화를 만들자 싶었다. 그게 바로 내가 만들고 싶은 영화였다. 머리를 써야 하는 영화가 아니라 몸으로 가슴으로 느껴지는 그런 영화였으면 좋겠다. 내가 담고 싶었던 무거움마저도 가슴으로 느꼈으면 좋겠다.”
-영화와 좀 다른 느낌의 외모다. 반듯한 느낌도 많고.
“(빙그레) 그래서 실망하는 분들이 많다. 곱슬머리에 산발하고 다니거나 자유롭고 도발적일 것 같은 이미지로 상상들을 하는데, 그렇지가 않아서. 날 드러내는 것 자체가 불편하다. 처음 이쪽 일을 시작할 땐 ‘내가 영화를 할 수 있을까’란 의문도 가졌다. 매체에서 바라보는 영화감독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도 그랬다. 막상 아카데미를 가서 공부를 해보니, 나보다 더한 애들도 있더라.(웃음)”
-10년 만의 작품이다. 짓눌러오는 부담감을 어떻게 극복했나.
“물론 있었다. 그런데 10년은 너무 긴 시간이더라. (시간이 흐를수록) 차츰 나를 되돌아보게 됐다. 내가 좋아하는, 내가 보고 싶은, 내 안에 충실한 영화를 만드는 게 답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 내가 보고 싶은 영화를 만들자 싶었다. 그게 바로 내가 만들고 싶은 영화였다.”
-미성년자인 여진구가 주인공으로 출연한 영화인데, 청소년 관람불가다.
“내적으로 필요한 어떤 폭력성, 강도 같은 것들이 필요했다. 처음부터 자라나는 청소년들한테 보여줄 의도는 없었다.”
-이 영화에 대해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호평은. 기다렸던 반응이랄까.
“어느 기사에 나왔는데 ‘탱크처럼 무거운 주제를 깃털처럼 가볍게 재밌게 풀어놓은 영화’라는 말이었다. 이 영화를 만들면서 의도했던 바를 잘 담고 있다. 그냥 가볍게, 즐겁게 볼 수 있는 분들은 짜릿한 장르 영화로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 영화 속에 숨은 것들을 찾아보는 분들에겐 양파 껍질처럼 파면 팔수록 나오는 영화였으면 한다. 머리를 써야 하는 영화가 아니라 몸으로 가슴으로 느껴지는 그런 영화였으면 좋겠다. 내가 담고 싶었던 무거움마저도 가슴으로 느꼈으면 좋겠다.”
-4명의 각기 다른 아빠를 보면서 왜 저렇게 살고 있나란 생각도 했다. 무엇 때문에?
“석태는 그야말로 괴물을 꺼내놓고 사는 사람이다. (인간은) 다들 어딘가에 괴물 한 마리씩은 키우고 살아가고 있다. 어느 순간 약해지고, 불안해지면 그런 괴물이 올라온다. 석태는 그 괴물을 떳떳이 꺼내놓고 살겠다는 선택을 한 사람이다. 아빠들은 포르쉐를 타거나 도박장을 다니긴 하지만, 그리고 사람을 죽여서 쾌감을 얻는 종류도 아니지만 스스로를 사회로부터 격리시키고 감정의 끈을 잘라버린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어느 날 납치해 온 신비로운 아이를 만나게 되면서 자신이 사회와 가졌던 교류, 교감 등을 하게 되었을 때…그런 느낌들을 신비한 체험으로 얻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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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시나리오를 보고 ‘어린 아이를 주인공으로 이렇게 해도 되나’ 싶었다. 너무 자극적이고 세련됐더라. 무엇보다 진정성을 획득해야 영화가 제대로 설 수 있다는 것에 집중해서 작업했다. ‘석태가 왜 이럴까?’ 의문을 갖고 많은 고민을 했다.”
-결국 또 다른 괴물(화이)에 의해 파멸이 된다.
“파멸은 어느 정도 예측하고 있었을 거다. 석태는 스스로 그 파멸의 시작, 파국점을 찍어내는 사람이다. 석태는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되나’란 생각을 하지만,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는 걸 알고 있다. 다른 아빠들도 궁금해하긴 할 것 같다. 순수하고 고결해 보이는 어린 아이인데도, 완성체 같은 느낌을 갖고 있어 과연 이 아이가 두꺼운 벽을 깨고 괴물을 꺼낼 수 있을까, 우리(아빠들)처럼 될 수 있을까 의문을 갖는 거다.”
-엄마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화이가 변한다. 복수가 시작된다. 그런데 아빠들 앞에서 한번도 ‘엄마’란 단어를 꺼내지 않더라.
“엄마를 ‘그 사람’이라고 표현하긴 한다. 엄마가 영화에서 세 번 정도 나온다. 화이가 괴물을 만나기 전 화분 안에 갇혔던 어둠 속에서 엄마를 처음 절실하게 외친다. 그 절실하게 불렀던 엄마를 잊게 된다. 영주(임지은)에게도 화이를 길러야하는 것이 체벌처럼 느껴진다.”
-‘화이’를 10년 전에 만들었다면 어땠을까.
“본질적으로 다르진 않았겠지만 만듦새, 작품에 접근하는 태도는 조금 다를 수도 있을 거다. 옛날에는 정확해야 된다는 강박이 있었고, 영화적으로도 현란한 취향이 조금 더 있었다.”
-시나리오를 직접 쓰지 않은 것에 대한 아쉬움은 없나.
“1년 여간 온전한 영화로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처음 받은 시나리오는 너무 세련되고 자극적이었다. ‘어린 아이를 주인공으로 이렇게 해도 되는 건가’란 생각도 들었다. 이 영화가 온전하게 똑바로 서야 된다고 생각해서 그 작업을 충분히 했다. ‘재밌다’ ‘자극적이다’ ‘피가 나온다’ 등의 부분들이 재밌게 보일 수는 있으나, 양심적으로 안 된다고 생각했다. 현실로부터 붕 떠있는 느낌이 있었던 것을 관객들이 영화적이지만 영화 안에서 사실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작업하는 데 공을 많이 들였다. ‘석태가 왜 이러는 걸까?’ 의문을 갖고 많은 고민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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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적으로 치면 영화감독은 굉장히 안 좋은 직업이다.(웃음) 자기 수명을 갉아먹으면서 일을 해야 하는 직업인 것 같다. 자기 자신을 학대해야 하고, 조울증에 시달리고, 현장에서 자기가 원하는 만큼 끌어낼 수 없기도 하고. 그러나 외줄을 건너면 그 쾌감은 엄청나다.”
-‘화이’는 지독한 성장영화다. 여진구를 주인공으로 결정하기까지 불안하지 않았나.
“그 또래 배우라고 언급되는 사람들은 거의 다 봤다. 그 중 여진구를 최종적으로 선택한 이유는 ‘진정성을 가져야 된다’는 맥락과 통한다. 이 영화 속에서 기교를 부리거나 자기가 잘 하는 것으로 덮고 예쁘게 만들고 화려하게 만드는 배우는 이 강한 밀도를 가진 캐릭터를 표현하기에 힘에 부친다. 관객들도 알아차린다. 그 순간 캐릭터가 무너지는 동시에 영화 전체에 대한 믿음 자체가 사라져버리는 도미노 같은 현상이 일어날 거다. 배우를 선택하는 것에 있어 ‘얼마나 마음이 순수하게 인물에 접근하는가’에 대해 많이 봤다. 여진구는 연기 경력이 아역부터 꽤 있었는 데도 화려해보이고자 하는 면이 없었다.”
-‘해품달’로 주목받긴 했지만 아직은 노출이 덜 된 배우다.
“그런 것도 있다. 원래 바랐던 것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연기 천재가 나오는 것, 화이는 굉장히 신기해 보여야 할 것 같았다. 여진구는 그런 부분들을 잘 해내줬다. 또 여진구에게도 행운인 게 에너지가 좋은 배우들과 함께 하면서 그 모든 것들을 스펀지처럼 흡수하는 특별한 경험을 했다는 거다. 여진구가 잘 한 것은 사실이지만, 좋은 배우들이 곁에 있었다는 것도 이유가 될 것이다.”
-‘석태’ 역엔 왜 김윤석씨였나.
“떠오르는 배우들은 많다. 그런데 ‘아버지’에 잘 어울리는 배우는 별로 없다. (김윤석은) 한 집단의 리더라는 느낌이 강하게 느껴졌다. 다른 분들은 혼자로서 완전한 느낌이 들었다면, 김윤석은 사회적으론 약하지만 아들에겐 강하게 보이려고 노력하는 아빠 캐릭터와 잘 어울린다.”
-외줄타기 느낌으로 촬영했다는 말을 들었다.
“외줄을 건너면 그 쾌감은 엄청나다. 외줄을 내딛을 땐 불안하고 예민하고 간절하다. 수명이 단축될 정도의 스트레스였다. 영화감독은 자기 수명을 갉아먹으면서 일 하는 직업인 것 같다. 내적인 동기가 있고, 잘 할 수 있는 재능을 갖고 있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추천해주고 싶지 않은 직업이다. 참, 운도 따라야 한다.”
-그래도 영화감독이어서 행복하단 얼굴이다.
“직업적으로 보면 대부분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들게 살고 있다. 그런 면에선 굉장히 안 좋은 직업이다.(웃음) 자기 자신을 학대해야 하고, 조울증에 시달리고, 현장에서 자기가 원하는 만큼 끌어낼 수 없기도 하고. 주어지는 것보다 한참 밑에서 선택해야 했던 것에 대해 평가받기도 한다. 영화가 점점 더 산업화 되고, 관객수로만 영화의 성패를 판단하는 경향이 세지고 있다. 돈이 하도 들어가니 대중예술 장르라고도 한다. 사실 (돈은) 내게 관심 없는 일이지만.”
-아내인 문소리씨가 이 영화를 보고 어떤 얘길 해줬나?
“솔직하게 얘기하는 편이다. (아내의 연기를 보고) 남편이기 때문에 숨길 수도 있지만, 오히려 더 있는 그대로 얘기한다. 이 영화에 대해선 좋았다고 해줬다.(웃음)”
-두 분을 보면 너무 사랑해서 결혼한 느낌이 든다.
“처음엔 둘 다 결혼 생각이 없었다. 독신주의까진 아니어도 영화감독이라는 직업 자체가 신랑감으론 좀… 사실 일반인과 결혼한다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같은 직업군에 있기 때문에 (아내는) 이해하는 범위가 넓다. 배우로서 아내는 리얼함을 베이스로 풍부함을 만든다. 다양한 얼굴을 가질 수 있는 마스크와 아우라를 갖고 있다.”
-아내는 남편이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라는 것에 대해 자랑스러워하지 않나.
“싫어하는 것 같지는 않다.(웃음)”
-다음 영화는 언제 들어가나. 또 10년이 걸리는 건 아니겠지.
“아직 ‘화이’ 결과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다음을 예상할 수도 없다. 다음 작품에 대해선 생각할 겨를도 없다.”
-인간 장준환은 어떤 사람인가.
“반듯해 보이지만, 이 영화가 말하는 바와 비슷하다. 내 안에도 괴물이 있다. 그 괴물을 꺼내서 들여다보면서 ‘화이’란 영화를 만들 수 있었다. 내 안에는 자유롭고 장난기 많은 악동 기질도 있다. 인간이라면 누구든 다양한 캐릭터, 스펙트럼이 있는 것 같다.”
-인생을 살면서 관심이 흐르는 곳은 어디인가.
“영화이기도 하고… 한편으론 산다는 것에 집중한다. 삶에 대해 들여다보길 좋아하고,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궁금해 한다. 내가 살아가는 것 자체가 때로는 불안하고 신기하고 의문이 든다. 영화를 본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엿보고 들여다보는 것과 같다. 그래서 흥미롭다.”
-스크린 밖 일상에선 어떤 모습인가.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주로 친구들 만나고 술 마셨다. 적극적으로 뭘 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집에서 혼자 뒹굴거리거나 멍하게 있는 걸 좋아한다.”
• [인터뷰] 설경구 “정우성도 모자라 다니엘 헤니라니, 젠장” |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향희 기자 happy@mk.co.kr/사진=강영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