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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결혼의 여신’에서는 재벌가 시월드를 상대로 통쾌한 복수에 성공, 마성의 카리스마를 발산하더니, KBS ‘왕가네 식구들’에서는 천 원짜리 한 장에도 벌벌 떠는 억척스러운 아줌마의 전형을 보여준다.
두 작품 모두 승승장구 중이라 사실상 주말 저녁 내내 만나고 있는 셈인데, 전혀 불편하지가 않다. 오히려 완전히 딴판인 두 사람을 보는 기분이니, 이 보다 완벽한 ‘1인2역’이 어디 있을까.
‘왕가네 식구들’ 방송 초반, 배우 이태란의 캐스팅을 두고 이른바 ‘겹치기 출연 논란’이 일었다. 시간대상 연이어 방송되는 2개의 주말극에 한 배우가 출연할 경우, 캐릭터에 대한 몰입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고 이는 곧 두 작품 각각의 신선도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하지만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이태란은 두 작품에서 모두 불행한 여자로 등장하지만 시청자들에게 기대 이상의 행복을 안겼다.
그는 ‘결혼의 여신’에서는 돈과 명예, 미모를 모두 갖춘 완벽한 여자로 보이지만 실상은 사랑도 행복도 잃어버린 외로운 재벌가 며느리로 출연한다. ‘왕가네 식구들’에서는 시종일관 엄마로부터 큰언니와 차별을 당하며 설움의 나날을 보내지만 소박한 행복을 꿈꾸는 여자다. 이 와중에 속만 썩이던 ‘백수’ 남편이 취직하자마자 부잣집 사모님의 유혹에 흔들려 불륜을 저지를 태세니, 불행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놀라운 건 이태란은 완전히 다른 역할을 맡은 이 두 작품 모두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혼의 여신’에서는 완벽한 복수로 섬뜩할 정도의 반전 카리스마를 선보였다. 주연인 남상미를 압도하고 있을 정도다. ‘왕가네 식구들’에서도 엄마로부터 온갖 설움을 당하게 되는 이유, 바로 그 ‘비밀’이 작품의 절대적인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이처럼 이태란은 두 작품 모두에서 화제의 중심이 되고 있다. 의구심은 오히려 호평으로 둔갑해 연일 극찬이 쏟아지고 있다. 최근 유행처럼 떠오른 ‘1인2역’의 최고봉이라고 가히 칭할 만 하다.
시청자들은 요즘 그녀의 복수에 함께 희열을 느끼고, 그녀의 분노에 같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그녀를 둘러싼 복잡한 상황에 눈을 뗄 수 없는 건 스토리만큼이나 중요 배우의 노련한 ‘흡입력’ 덕분이다.
그런 점에서 이태란의 연기, 그리고 집중력은 눈여겨 볼만하다. 이는 하루아침에 뚝딱 완성된 것도, 우연히 몸에 꼭 맞은 캐릭터를 입은 ‘운’도 아닐 터. 그간 다양한 경험과 식지 않은 열정으로 다듬어온 그녀의 ‘내공’의 힘이 제대로 빛을 발휘하고 있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한현정 기자 kiki2022@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