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를 이목을 집중시키려는 의도가 없진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자극적인 접근과 사건의 차용은 최대한 배제하려고 한 노력이 돋보인다. 어쩔 수 없이 등장하는 병원과 법정 신 등은 불가피하게 사용된 정도다.
대사들도 조심스럽다. 사건에 집중하기보다 아픔의 과거를 치유하려는 가족의 이야기를 담으려 한 점이 가장 특기할 만하다.
설경구와 엄지원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 소원이의 부모를 맡아 가슴 아픈 이야기를 전한다. 당연히 연기지만 배우들의 진심이란 이런 것들이라고 해야 할까? 딸 앞에 오열하는 엄마, 애써 버티다가 아무도 없는 곳에서 눈물을 흘리고 마는 아빠. 남자인 아빠마저 무서워하는 자식을 위해 아이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캐릭터 코코몽 옷을 입고 나타는 아빠의 모습은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아역 배우 이레는 맑다. 환한 웃음은 밝음 그 자체다. 그런데 일을 당한 뒤 병원에서 “그냥 지나가려고 했는데, 비맞는 아저씨에게 우산을 씌워주는 게 맞다고 생각했을 뿐인데. 왜 나한테 잘했다고 얘기해주는 사람이 없느냐”는 말은 참고 참았던 눈물을 터트리게 만든다. 어두워진 표정이지만 주위의 도움으로 점차 다시 밝은 아이가 되어가는 소원이는 또 한 번 관객을 먹먹하게 할 게 틀림없다. 아울러 이 아이를 응원하게 만든다.
관련 피해자들의 3, 4차 피해를 걱정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이준익 감독이 “탈무드에서 ‘잘 살아라. 그것이 최고의 복수다’라고 한 것처럼 엄중한 처벌도 좋지만, 피해자들이 잘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한 것처럼 보란 듯이 잘 사는 것도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이다. 이미 사건의 당사자들 중 많은 이들이 희망을 품고 살아가고 있다. 더 많은 이들이 그랬으면 한다는 이 감독의 바람이 전해진다.
증언을 함으로써 생기는 2차 피해를 막기 위해 이제 성폭행 사건 공판에 가림막이 설치된 것도 보기 좋은 법정 풍경 중 하나다. 물론 이런 재판이 없어지는 게 가장 좋겠지만….
이준익 감독이 상업영화 은퇴를 번복할 만큼 욕심낼 작품이었던 건 분명하다. 122분. 12세 관람가. 2일 개봉.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현철 기자 jeigun@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