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정유미는 “페르소나니 뮤즈라는 등의 말은 좋지 않다. 다른 분들도 있잖나. 또 진부한 표현이기도 하다”고 웃었다. 물론 ‘안 좋다’는 게 이분법적 의미로 부정적인 말은 아니다. 페르소나나 뮤즈라는 수식어는 아직 ‘무한 보류’로 해야 정확할 듯하다.
“오랫동안 좋은 감독님과 작업을 하고 싶고, 영화에서도 다양한 캐릭터를 하며 오래 만나고 싶은데 자주 등장하면 관객들이 싫어할 수도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또 다른 감독들과도 작품을 통해 다양한 역할을 하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다. 천상 팔색조 연기자 혹은 욕심 많은 연기자다.
정유미는 사실 홍 감독의 15번째 영화 ‘우리 선희’에 합류할지 몰랐다. 지난해 영화 ‘깡철이’와 다른 작품 준비를 하고 있었을 때 제의를 받았기 때문이다.
“사실 제가 또 하게 될 줄 생각하지는 못했어요. 전화가 와서 ‘뭐하느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특별한 일은 없는데 영화 들어갈 준비하고 있다’고 하니 ‘잘 됐다. 이틀만 나올래?’라고 하시더라고요. 처음에는 안 한다고 했는데 ‘준비하는 게 방해되지 않는다’고 하시더라고요. 이틀만 하기로 했는데 뭐가 바뀌셨는지 (전체 6회 촬영 중) 네 번 나와야겠다고 하셨어요. 다른 작품 준비해야 한다는 얘기를 하니 감독님이 ‘바보 같은 소리! 너 많이 찍히면 좋지’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렇게 참여하게 됐어요.”(웃음)
“주목을 받아서 부담됐었나 봐요. ‘말렸다’는 표현을 써도 될까요? 잘 안 되더라고요. ‘대사 잊어버리면 어떡하지?’라는 생각 때문에 또 실수하고 그랬죠. 감독님이 화내지 않으셨느냐고요? 화는 절대 안 내세요. 그냥 (홍 감독 특유의 느릿하고 저음의 목소리를 따라 하며 )‘야, 너 그러면 안 돼…’ 정도? 헤헤헤.”
‘우리 선희’는 외국 유학을 가려고 교수에게 추천서를 받으러 오랜만에 학교에 온 선희(정유미)와 그의 주변 인물들인 학과 교수(김상중), 오랫동안 사귀다 이별했던 전 남자친구(이선균), 한때 미묘한 감정이 있었던 학과 선배(정재영)가 얽히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극 중 정유미는 세 사람에게 사랑을 받는 역할로 나온다. 비슷한 경험이 있는지 묻자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세 사람 중에 어떤 사람이 마음에 드느냐고 하자 또 웃으며 “없다”고 했다. 연애의 슬픈 경험사를 좀 들으려고 했더니 애착을 가진 데뷔작 ‘사랑니’를 언급하며 “영화에 나왔던 강아지를 내가 키웠는데 죽었다. 정말 슬퍼서 집 앞에서 소주를 먹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그 이후 힘들 때도 절대 술을 먹진 않는다”고 했다. 엉뚱한, 혹은 노련한 매력 발산이다.
‘우리 선희’는 주변 사람들의 평가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세 남자가 선희를 바라보는 시선은 다른 듯 비슷하다. 현실 속 정유미가 가장 듣기 좋았던 다른 사람의 평가는 뭐였을까?
“영화 연출을 잠시 쉬시던 감독님이 저를 보고 ‘저 친구 보니깐 다시 영화 찍고 싶다’고 한 말이 가장 감동적이었어요. 물론 전해 들은 얘기지만요. 또 그게 지금도 유효한 건지는 모르겠고요.(웃음) 저는 다른 사람에게 어떤 평가를 해주냐고요? (엄지를 치켜세우며) ‘대박!’ 이거죠. 안 좋았을 때는 뭐라고 말 못하는 편이고요. 하하하.”
정유미는 인터뷰 내내 웃었다. 장난도 잘 쳤다. 엉뚱하기도 했다. 낮고 무거운 역할을 주로 맡는 그와는 전혀 다른 매력이 철철 넘쳤다. 쉽게 말해 유쾌함 그 자체다. 전작들을 언급하며 다른 감독님들이 정유미 안에 내재한 또 다른 모습을 못 보는 것 같다고 하자 맞장구친다.
“지금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작품들에 참여하고 싶다”는 정유미. 내용을 보고 정말 마음에 들어 작은 제작 규모의 애니메이션 더빙을 차기 활동으로 정했다. 이미 캐릭터가 완성된 인물이라 연기를 하며 감정몰입을 하던 작품과는 또 다르다며 어려움을 토로한 그는 자신이 선택한 걸 잘 해내고 싶다고 바랐다. 연기 잘하는 배우로 정평이 나 있는 그인데 엄살을 피우는 것 같다. 엄살인지 아닌지는 조만간 스크린을 통해 확인하면 될 듯싶다. 당연히 아니겠지만.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현철 기자 jeigun@mk.co.kr/ 사진 호호호비치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