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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들은 당연히 좋은 시나리오를 보면 참여하길 은근히 바란다. 그런 점에서 사실 한 감독의 말은 크게 와 닿지 않았다.
지난해 여름, ‘관상’은 엄청난 시나리오라는 평가를 들으며 영화계를 돌아다녔다. 특히 기생 연홍을 누가 맡을지 관심이 높았다. ‘관상’은 왕의 자리가 위태로운 조선, 얼굴을 통해 앞날을 내다보는 천재 관상가가 조선의 운명을 바꾸려 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시골 바닷가에서 사는 몰락한 양반 관상쟁이를 찾아 한양으로 올라오게 해 영화를 재미있게 만드는 ‘출입문’의 역할을 하는 게 연홍이다.
다양한 여배우들이 이 배역에 눈독을 들였다. 하지만 섹시하면서 애교 있고, 또 카리스마 있는 인물이라는 점을 포괄할 한 방이 있는 여배우들이 없었다.
제작사과 투자사는 김혜수를 떠올렸으나 역할이나 비중 때문에 쉽게 시나리오를 건네지 못했다. 한재림 감독은 미친 척하고 건넸다는데 결과는 의외였다.
소속사 입장에서는 여러 가지 사항을 검토해야 하니 “긍정적”이라고 답했지만, 김혜수는 처음부터 이 역할을 하고 싶어 했다고 한다. 1주일 만에 ‘콜’ 사인을 보냈으나, 이미 합류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참여하지 않을 것 같다”고 짐작했던 주연배우 송강호조차 놀랄 정도였다.
특히 김혜수는 이 역할을 평소 개런티보다 훨씬 더 적은 1억 원에 못 미치는 돈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관계자들은 김혜수가 ‘관상’의 화룡점정이라고 한다. 남자들만 나오는 영화에서 김혜수가 등장함으로써 전혀 다른 향기와 맛을 냈기 때문이다.
한 감독은 다른 배우들에게도 다 고마운 마음을 느끼지만 김혜수에게만큼은 더 특별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 마음을 크레디트에 특별하게 ‘그리고, 김혜수’라고 담아냈다.
또 한 가지. 사실 김혜수와 조정석은 초반 시나리오에는 없는 인물들이었다. 2010년 영화진흥위원회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은 시나리오에는 연홍과 팽헌은 존재하지 않았다. 한양 기생집 운영자를 남자에서 여자로 바꿨고, 처남 팽헌의 모습은 내경에 내재한 성격이었는데 하나의 캐릭터로 따로 등장하게 됐다. 이 두 사람의 등장으로 영화는 한층 더 맛깔스러워졌다.
추석 맞춤 영화 ‘스파이’도 현재 ‘관상’에 밀리고는 있긴 하지만, 많은 호응을 얻고 있다.
‘스파이’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미스터K’에서 ‘협상종결자’로, 또 ‘스파이’로 개봉되기까지 힘든 시간을 보냈다. 이명세 감독의 하차로 온갖 잡음이 터져나온 집합체 영화라는 불명예를 안기도 했다. 윤제균 감독은 개봉에 앞서 이와 관련해 비공식 자리에서 눈물을 떨궜다.
언론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스파이’ 주연배우인 설경구와 문소리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이 영화로 연출 데뷔하는 이승준 감독은 소외돼 있다. 이 감독은 자신의 작품의 뒷이야기들이나 애로사항, 재미있던 에피소드를 얘기하고 싶은 마음일 것 같은데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다.
‘스파이’의 태생과 관련해 어쩔 수 없이 나와야 할 이명세 감독 이야기 때문에 자중하는 입장이다. 선배에 대한 예우이기도 하다. 개봉 전부터 나온 외화 ‘트루라이즈’와 유사하다는 것과 관련해 해명도 하고 싶을 텐데 전면에 나서진 못하고 있다.
입봉하는 감독으로서는 이런 상황이 안타깝겠지만 문소리와 설경구, 다니엘 헤니가 자신의 데뷔작을 채워줬다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현철 기자 jeigun@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