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파이’(감독 이승준)가 떠안고 가야 하는 문제였다. 초반부터 악재였다. 영화는 한바탕 웃음을 주는 코미디 장르인데 감독 하차 문제 탓에 심각하게 보였다. ‘미스터K’로 시작된 영화는 ‘협상종결자’로 제목을 바꾸더니 조금은 가벼워 보이는 ‘스파이’로 제목을 확정, 관객을 찾는다.
영화를 바라보는 시선은 아직 여전히 부정적이다. 연출자 하차 문제는 해결된 듯한데 뚜껑을 연 영화는 과거 아놀드 슈워제네거 주연의 ‘트루 라이즈’(1993)를 모방한 것 같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악재의 연속이다.
물론 비슷한 점이 없진 않지만 ‘스파이’는 그 이상의 매력을 갖췄다. 한해 너무 많은 작품에 얼굴을 비추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받은 설경구는 평범한 회사원으로 정체를 감춘 최정예 스파이요원 철수로 또 색다른 매력을 전하고, 문소리도 철수의 스튜어디스 아내 영희를 맡아 철저하게 망가진다. ‘오아시스’ 이후 11년 만에 재회했는데 설경구와 문소리는 여전히 찰떡궁합이다. 문소리에 접근하는 의문의 남자를 연기한 다니엘 헤니는 영화 ‘감시자들’의 정우성만큼 빛을 발한다. 라미란과 고창석, 한예리도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감을 톡톡히 드러내며 깊은 인상을 남긴다.
영화의 압권은 문소리다. 촬영할 당시 출산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고 하는데 몸을 사리지 않았다. 고행했음이 그대로 드러난다. 총알이 마구 쏟아지는 식당에서 빨간 드레스를 입고 바닥을 기어 다니고, 물에도 흠뻑 젖는다. 코믹한 연기로도 웃음을 준다. 말투와 행동 하나하나 놓치고 싶지 않은 캐릭터다. 리허설 한 번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연기 호흡을 맞춘 설경구와 티격태격하는 신도 맛깔스럽다. 또 로맨틱 가이 다니엘 헤니와의 데이트에 가슴 떨려하는 모습도 웃음을 준다.
다니엘 헤니의 비주얼에 넋을 잃을 여성 팬들도 여럿 있을 것 같다. 로맨틱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그는 멋지다. 그의 정체가 드러나도 여전한 그의 분위기가 영화를 관람하는데 득이 됐으면 됐지 걸림돌은 되지 않는다.
남북한의 전쟁 유발 시도라는 소재가 담겨 있어 심각해 보이지만 그렇게 무겁지는 않다. 적당한 수준의 재미와 흥미를 느끼게 한다.
추석 연휴 기간을 노린 영화는 추천작 중 하나로 꼽아도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없을 듯하다. 두 시간 동안 웃음이 이어진다. 121분. 15세 관람가. 5일 개봉.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현철 기자 jeigun@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