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두정아] ‘악역 전문배우’로 불리며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배우는 많지만 늘 위엄 있는 표정과 말투로 대중의 깊은 신뢰를 받는 배우는 드물다. 다수의 사극에서 남성답고 반듯한 이미지를 선보여온 배우 임호의 이야기다. ‘임금 전문배우’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닐 만큼 진중하고 지적이다.
장희빈과 인현왕후 사이에서 갈등하던 ‘장희빈’(1995)에서의 숙종 연기가 그랬고, 장금이의 음식을 맛있게 음미하던 ‘대장금’(2003)의 중종의 모습 또한 그랬다. ‘광개토태왕’(2011)과 ‘선덕여왕’(2009) ‘대조영’(2006) 등 굵직굵직한 사극에서 선보인 연기 또한 시청자의 뇌리에 깊숙이 각인되며 특별한 영역을 구축했다.
하지만 ‘천의 얼굴’을 보여야하는 배우로서는 고정된 이미지가 때로는 자극을 주기 마련이다. 임호는 최근 연극 ‘선녀씨 이야기’를 통해 파격적인 연기 변신에 나섰다. ‘임금 전문배우’라는 수식어가 무색할 만큼 180도 다른 파격적인 모습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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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이선화 기자 |
“이번 연극에서 워낙 파격적인 변신이라 기존의 제 이미지를 좋아하셨던 분들은 거부감을 느끼실 수 있을 것 같아요. 꼭 색다른 모습을 보여야겠다는 계획보다는 제가 연기하는 종우라는 캐릭터의 인간적인 면에 끌렸어요. ‘돌아온 탕자’ 같은 인물인데,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인생의 희노애락을 담은 캐릭터죠.”
지난 16일 서울 대학로 아트센터K에서 막을 올린 ‘선녀씨 이야기’는 지난해 전국연극제에서 대상 수상 및 희곡상과 연출상 등 5관왕에 빛나는 작품이다. 집을 나간 지 15년 후 어머니의 장례식장을 찾아 어머니의 삶을 이해하는 아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현대 가족사회의 이면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임호는 극중 청개구리 같은 불효자 종우 역을 맡았다.
“저는 성선설을 믿는 편이에요. 사랑 받아 마땅한 아이로 태어났지만,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가정불화로 어렵게 자라요. 상처가 치유 받지 못해 삐뚤어져 버린거죠. 하지만 결국은 되돌아가요. 부모가 되니 부모님의 마음을 이해하게 됐는데, 작품하면서 부모님 생각에 눈물깨나 흘렸죠.”
지난 1993년 KBS 공채 15기 탤런트로 데뷔한 후 다수의 드라마와 영화, 뮤지컬에 출연해온 임호는 이번이 데뷔 20년 만의 첫 연극 도전이다. 연극을 전공한 그가 왜 지금껏 무대 위에 오르는 것을 미뤘을까.
“결벽증과 같은 마음이었어요. 제가 데뷔하던 때에는 더블 캐스팅이 흔치 않았기 때문에, 늘 드라마 스케쥴이 없을 때 연극을 해야겠다 했었죠. 스스로 가지고 있던 원칙이었는데 지금에서야 ‘바보 같이 왜 참았을까’ 싶네요.”
그는 “4년 전 즈음 금연 캠페인의 일원으로 ‘돌아오는 길’이라는 연극을 하긴 했었는데, 상업 연극은 이번이 처음이다”라며 “서툰 부분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과연 내가 종우라는 캐릭터를 잘 흡수하고 있느냐인 것 같다”고 했다.
지난 2010년 마흔의 나이에 11세 연하의 디자이너 윤정희 씨와 결혼한 임호는 2011년 첫 딸을 얻은 데 이어 올해 초 둘째인 아들을 얻는 경사를 맞았다. 그는 아이가 자라는 것을 보며 부모가 된 사실을 자각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시점에 ‘선녀씨 이야기’를 만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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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이선화 기자 |
연기 경력으로 치자면 10년 선배인 이재은과 극중 호흡을 맞춘다. 그는 이재은에 대해 “경력이 많아서 역시 남다르다. 딱 봐도 ‘베테랑’ 같더라”며 “믿음이 가는 연기자인 것 같다”고 평했다.
데뷔 이후 가장 재미있게 임했던 작품을 물으니 “2001년 출연했던 시트콤 ‘허니허니’”라는 의외의
“그때나 지금이나 시청자들은 저의 ‘일탈’을 아직 못 받아들이시는 것 같아요.(웃음) 타고난 중저음이 제 이미지에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하지만 이번 연극을 통해 저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시고 응원해주신다면, 언젠가 다시 시트콤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두정아 기자 dudu0811@mkcultur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