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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발매된 이정현 스페셜 싱글 ‘V’는 3년 만에 내놓은 신곡이다. 당초 미니앨범을 기획했지만 200곡이 넘는 데모곡을 받았음에도 불구, 맘에 드는 곡을 만나지 못해 작업이 계속 미뤄졌다고. 하지만 이정현은 “팬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돌아오게 됐다”고 설명했다.
“처음 생각했던 콘셉트는 지금의 ‘V’와 다른 느낌이었어요. 콘셉트에 맞춰 데모곡을 받았는데 괜찮다 싶어 편곡을 하면 마음에 안 들고 해서, 작업을 엎기도 했죠. 그 중에서도 ‘V’는 후렴구를 빼놓고는 굉장히 새로운 느낌이었어요. 이런 사운드는 위험한 도전이긴 하지만 새로운 것을 들려드리고 싶었죠.”
어떻게 그 많은 곡 중 맘에 드는 게 단 하나도 없었으랴. 이유는 그녀 사전에 ‘적당히’란 없기 때문이다. 하나를 내놓더라도 완벽하게 해내는 것은 17년 연예계 생활에도 기복 없이 꾸준히 사랑받는 그녀의 기본 베이스다.
“200여 개의 데모곡들이 듣기엔 너무 편하고 무난한데, 사실 비슷비슷했어요. 그렇게 되면 너무 개성이 없을 것 같았죠.” 작곡가들로선 까다롭다고 혀를 내두를 만 하지만 그런 심미안과 선구안이 있기에 지금의 이정현이 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박찬욱, 박찬경 감독 브랜드 ‘파킹 찬스’가 메가폰을 잡은 뮤직비디오는 한 편의 엽기 코믹 호러물을 방불케 하는 탄탄한 스토리와 영상미, 구성을 자랑한다. 뮤직비디오 속에서 선보인 좀비 비너스 콘셉트는 25일 Mnet ‘엠카운트다운’ 컴백 무대에도 그대로 재현됐다.
기존 타 가수들의 퍼포먼스와 다른, 강렬한 콘셉트의 무대에 경쟁자는 잘 나가는 후배 걸그룹이 아닌, ‘와’ ‘바꿔’ ‘반’ ‘미쳐’ 등 과거 이정현 자신이 내놨던 곡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V’에서 보여주는 인형 콘셉트는 그간 이정현이 몇 차례 선보였던 느낌이지만 몇 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여전하다는 점에서 박수를 칠 만 하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나이를 생각하라’는 핀잔도 들려오는 것이 현실. 이에 대해 그는 “좋아하시는 분은 보시고, 보기 싫으신 분들은 안 보시면 될 것 같다”고 시크(chic)하게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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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반갑게 컴백한 이정현이지만 2013년 가요계는 그녀에게도 그리 녹록한 환경은 아니다. 아직은 모든 게 ‘LTE’급으로 빠르게 변화하는 분위기에 적응하기 쉽지 않은 눈치다.
“무엇보다 ‘유행가’가 없어졌다는 게 안타까워요. 1위가 일주일을 버티기도 힘들고, 그런 상황에서 곡들이 너무 빨리빨리 바뀌어버리니까. 추억할 수 있는 곡들이 없어지는 거죠. 제가 활동할 때만 해도 10년 전 노래를 들으면서 그 시절을 추억하고, 좋은 정서도 가질 수 있었는데 지금의 세대들은 어떤 추억으로 어떤 노래를 할까 싶네요.”
현재 그녀의 주 무대이기도 한 중국과 비교하면 그 차이는 확연하다. “중국 공연을 하며 느낀 점은 아직까지 중화권 시장은 그렇게 빨리 바뀌지는 않는 것 같다는 거예요. 10년 전 노래도 계속 찾아주시고, 유행가는 차트에 오래 남아 있고. 그런 부분은 솔직히 부럽죠. 우리 아이돌 후배 중에도 너무나 뛰어난 후배들이 많은데, 오래 버틸 수 있는 후배들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과도하게 시스템화 된 아이돌 시장 역시 그녀에게는 격세지감이다. “회사 시스템에 맞춰 너무 많은 가수들이 찍혀져 나오는데, 개개인의 재능을 너무 죽이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문득 듭니다.”
만약 이정현이 지금처럼 아이돌 회사 시스템이 정착된 시기, 걸그룹 멤버로 데뷔했다면 어떤 모습일까?
“제가 걸그룹이였다면요? 음 아마도 저 때문에 그룹이 해체되지 않았을까요? 하하. 회사 말 정말 안 들었을 것 같고, 다른 멤버를 꼬셨을 것 같아요(웃음). 회사 시스템은 못 버텼을 것 같아요.”
100% 가정에 불과한 문답이었지만, 실제로 이정현 같은 캐릭터 강한 가수가 분명 요즘 아이돌 스타일 및 데뷔 패턴과 다르다는 것은 분명하다. “1집 ‘와’ 때, 처음 마이크와 부채 콘셉트를 하겠다 주장했을 때도 회사와 정말 죽일 듯이 싸웠어요. 제가 내놓은 아이디어였는데, 방송 직전까지도 CD가 날아다닐 정도로 회사와 싸웠죠(웃음). 하지만 제가 주장을 굽히지 않아서 회사에서도 포기했었어요.”
당시 ‘와’ 첫 무대 이후 소속사 분위기는 한 마디로 초상집이었다. “망했다는 전화를 받았죠. 화장은 뭐고, 마이크는 또 뭐고 부채는 왜 들었고, 비녀는 또 왜 이렇게 크냐면서요. 그런데 정확히 3일 지나니까 반응이 오기 시작했고, 그렇게 터졌죠. 그 다음부터는 회사에서도 제 의견을 무조건적으로 존중을 해주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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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방의 한계를 일찌감치 뛰어넘은, 창조의 어머니가 바로 여기 있었다. 그렇게 ‘와’를 시작으로 ‘바꿔’ ‘미쳐’ ‘아리아리’ 등 다수의 히트곡은 얼마간의 시간을 지나 중국 대륙에서 번안되면서 다시 한 번 인기를 얻게 됐고, 의도하지 않게 이정현을 ‘한류스타’로 만들어줬다.
2000년대 중반부터 중국 활동을 병행한 이정현은 현재 현지에서 장쯔이와 같은 급의 극진한 대우를 받는 톱스타로 군림하고 있다. 내몽골 지역에서 열린 한 공연에는 이정현을 보러 10만 명의 관객들이 운집했다 하니 가히 ‘스케일’이 다르다.
“저도 이렇게 해외에서 활동하게 될 줄은 전혀 몰랐어요. 그런데 운이 좋게도 제 노래를 번안해서 불러주시는 과정에서 오리지널 가수를 찾게 됐고, 그러면서 활동을 지금까지 이어갈 수 있게 됐어요. 항상 감사드린다는 얘기밖에 못 하겠어요. 중국 팬들에게도 너무 감사드리고요.”
평소 성격은 “하나도 안 무섭고(웃음), 평범하고 조용한 편”이라지만 무대 위에서는 신들린 퍼포먼스를, 스크린에서는 캐릭터에 빙의된 살아있는 연기를 보여주는 이정현. 이렇게나 파격적이라니, 비결은 무엇일까.
“아무래도 배우 활동도 병행하고 있다 보니 매 순간에 맞춰 집중할 뿐이에요. 지금 이러다가도 ‘명량 회오리바다’에서는 캐릭터가 또 완전 다르거든요. 하지만 저는 연기자니까. 곡이 나오면 그 곡에 맞게 캐릭터에 빠져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다 보니 다양한 모습이 나오는 것 같고요.”
그런 자신의 모습을 한결같이 사랑하고 응원해주는 팬들에게만큼은, 고마움 뿐 아니라 미안함이 공존했다. “정말 고마운데, 원하는만큼 활동을 길게 하지도 않고, 자주 못 뵙는 것 같아 미안해요. 그래도 같이 나이 들어가는데도 잊지 않으시고 아직도 공개방송에 와서 소리지르며 응원해주시는 것을 보면 정말이지 말로 표현할 수 없이 감사합니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박세연 기자 psyon@mk.co.kr/사진 에이바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