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박정선 기자] 달달한 사랑노래를 부르며 결혼식의 단골 축가 가수로 각광받아온 두 남자 박승화, 이세준. ‘신부에게’ ‘사랑해도 될까요’ ‘널 사랑하겠어’ 등 사랑스러운 가사에, 달콤한 보이스로 듣고만 있어도 가슴을 설레게 하는 이들은 유리상자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결혼식장을 누볐다. 그런데 박승화가 ‘유리상자스러움’을 벗고 진짜 박승화의 모습으로 대중들 앞에 섰다.
인터뷰를 앞두고 박승화의 사진을 찾아보며 부드러운 외모와 달달한 목소리에 푹 빠져 있을 때쯤, 헝클어진 머리에 추레한 옷을 입고 한 남자가 들어섰다. 설마 하던 차에 “안녕하세요”라며 인사를 건넨다. 아, 이 남자 유리상자에서 벗어난다더니 콘셉트인가. 생각했던 이미지와 달라도 너무 다른 그의 진짜 모습을 알아가는 것으로 인터뷰를 시작하기로 했다.
작은 체육관을 운영하는 것이 꿈이었던 어린 박승화는 순위와 관련된 온갖 비리들을 목격하고 과감히 꿈을 포기했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줄곧 태권도와 인연을 쌓아왔던 그는 결국 작은 체육관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당시 음악은 단지 취미일 뿐이었다. 그는 우연히 음악 하는 친구를 만나 다른 사람의 자리를 대신하는 것으로 처음 무대에 올랐다. 많은 가수들이 그렇듯 음악에 눈을 뜨게 된 것은 ‘우연히’였다.
“우연히 노래를 하고, 사장님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생겼는데 계속 일을 해달라고 부탁하더라. 근데 그 무대가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또 현실적으로 돈벌이도 괜찮았다. 생각해봐라. 예쁜 누나들 앞에서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하는데 월급까지 많이 준다. 자연스럽게 그 생활에 젖어 버렸다. 결국 운동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음악을 시작했다. 내가 좀 잘했나봐.(웃음)”
그러던 중 군대를 가게 된 박승화는 ‘예술단’에 소속되어 밴드로 활동하고, 선배들을 통해 작곡을 배우고 제대했다. 또 한 번 ‘우연한’ 기회가 그를 찾았다. 지금으로 따지면 SM격인 동아기획에 들어간 것이다. 그렇게 그는 하루아침에 가수가 됐다. 하지만 가수라는 타이틀만 달았을 뿐 이렇다 할 활동은 없었다.
유리상자(왼쪽 박승화, 오른쪽 이세준) |
제 길이 아닌가 싶어 등을 돌리려던 찰나, 그를 붙잡아 준 사람은 김광석과 박학기였다.
“두 분이 나를 데리고 공연을 다니면서 노래와 연주를 계속하게 했다. 심지어 자신들의 페이에서 내 용돈까지 챙겨줬다. 덕분에 연명할 수 있었고, 지금까지도 친형보다 더 가까운 사이로 지내고 있다. 김광석 형은 안타깝게 떠났지만...”
덕분에 음악을 놓지 않았지만 근본적인 고민은 해결되지 않았다. “내 무대가 없었다”는 것이 계속되는 고민의 이유였다. 박승화는 과거 장동건, 이병헌 등 톱스타들부터 김현철, 이소라, 윤도현, 유승준 등의 가수들의 노래에 코러스를 도맡아 했다. 이 같은 생활이 반복되자 그는 또 한 번의 슬럼프를 겪게 됐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소속사 측에 마지막 소원을 말했다. 나만의 공연을 하게 해달라는 제안이었다. 소속사에서 역시 마지막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이틀의 공연을 허락했다. 이때 이세준을 만났다. 내 마지막 무대라고 생각한 그 곳이 유리상자의 시작이었다.”
‘텔레파시’가 통했다는 표현으로 이세준과 함께 활동하게 된 그는 데뷔곡 ‘순애보’로 당시 ‘가요톱텐’에서 엄청난 성적을 자랑하며 이름을 알렸고, 이후에도 꾸준한 사랑을 받았다. 그렇게 사건사고는 물론, 팀 내의 작은 불화도 없이 15년째 함께해오고 있다.
박승화 20주년 기념앨범 재킷 |
유리상자로 15년, 솔로 데뷔로는 20년을 맞은 박승화는 ‘유리상자’가 아닌 철저한 ‘박승화’의 음악을 내놓으며 데뷔 20주년을 자축했다. 지난 18일 발매된 앨범이 바로 그것이다.
“요즘은 일주일이면 앨범 재킷까지 다 나오는 시대가 됐다. 그런 것에 별로 애착이 가지 않는다. 앨범 하나를 내려고 몇 달 동안 녹음실에 있는데, 그 시간이 가수에게는 정말 즐거운 기간이다. 근데 그게 없어져버렸다.”
박승화는 자신의 신념대로 한 달 여를 녹음실에서 갇혀 지낸 끝에 20주년 기념 앨범 한 장을 팬들 앞에 내놓았다. 수록곡의 제목들만 늘어놓아도 유리상자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 물씬 풍겨온다. ‘사랑’을 이야기하던 유리상자 박승화가 ‘사람’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번 앨범에도 ‘레모네이드’라는 사랑 노래가 있다. 애착이 가는 노래 중에 하나지만, 나 혼자 하는 앨범에서 유리상자스러운 곡을 타이틀로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모던 록 계열의 ‘다시 한 번’을 타이틀로 결정했다. 혼자 작업을 하니까 의논을 거치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할 수 있어서 좋다.”
박승화가 사람과 소통하는 창구는 ‘라디오’다. CBS 음악FM ‘박승화의 가요 속으로’를 진행하고 있는 그는 라디오 사연을 통해 일반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하고, 이를 가사로 옮겨 적었다. 사랑이야기도 좋지만 삶에 힘을 줄 수 있는 응원의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의도를 담았다.
세월을 거스
박정선 기자 composer_js@mkcultur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