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히. 헤헤. 하하. 호호. 앉자마자 별안간 다양한 웃음소리를 낸다. 어린아이 같다가도, 똑 부러지는 여성상을 제시하는가 하면, 수줍은 소녀의 모습을 대변하는 듯한 웃음소리들. 그러면서 인터뷰 내내 “내 속엔 다른 내가 있다”고 강조하는 씨엘(본명 이채린). 그녀의 진짜 속내를 낱낱이 파헤쳐보자.
사진=YG엔터테인먼트 제공 |
연습생부터 7년, 데뷔 후 4년. 씨엘은 그렇게도 원했다던 솔로 활동을 시작했다. 지난달 28일 공개한 첫 번째 솔로곡 ‘나쁜 기집애’(THE BADDEST FEMALE)가 바로 씨엘의 7년여 세월을 모두 담아낸 그 것이다. 어쩌면 그 이전의 세월까지. 우연치 않은 기회에 앨범을 발매했다지만 데뷔 때부터 자신의 사인에 ‘THE BADDEST FEMALE’이라는 문구를 써왔던 것처럼 자신에게 딱 맞는 옷을 입고 팬들을 찾은 셈이다.
그렇게 기다리던 솔로 활동인데 싱글 한 곡뿐이다.
“내 꿈이었다. 할머니가 되었을 때 추억이 될 수 있는 앨범 하나를 갖고 싶었다. 더구나 이 곡은 씨엘을 잘 표현해준 곡이라서 더욱 남다르다. 투애니원(2NE1)에 속한 상태에서 솔로 활동을 하는 거라 부담이 덜 된다. 욕심내지 않고 천천히 보여드리고 싶었다.”
그럼 후보 곡들이 있었을 법도 한데.
“말장난을 하다가 우연히 나온 곡이다. 제목 역시 테디 오빠가 ‘나쁜 기집애’로 하면 좋겠다고 하더니 뚝딱 곡까지 만들어 놓으셨더라. 그 곡을 들은 양현석 사장님이 나에게 잘 어울릴 것 같다며 바로 녹음을 진행했다.”
왜 다들 ‘나쁜 기집애’를 씨엘과 잘 어울린다고 했을까. 얼마나 못되게 굴었길래.
“‘나쁜’ 즉, ‘BAD’의 뜻이 악한 이미지만은 아니다. 멋있다는 의미에서 많이 쓰이곤 한다. 가수라는 일을 하면서 곡에 내가 갖고 있는 마음을 부여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아이돈케어’(I Dont’t care)라든지 ‘나쁜 기집애’가 된 것 같다. 늘 내가 사용하던 문구였는데 이번 곡이 나오면서 그 뜻을 설명할 수 있어서 좋다.”
멤버들이 응원은 많이 해주던가?
“워낙 자주 봐서 파이팅 해주는 것이 더 어색하다. 그냥 음악 같이 듣고 ‘진짜 멋있다’고 말해준다. 항상 옆에 있어줘서 든든하다.”
사진=YG엔터테인먼트 제공 |
이제 갓 스무 살 티를 벗고 상큼해야할 스물 셋 씨엘은 무대 위에서 만큼은 ‘카리스마’가 넘쳐난다. 한참 나이가 많은 이들이 씨엘의 무대를 봐도 ‘언니’라는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다. 그러더니 이젠 아주 대놓고 가사 속에 ‘언니’를 연발한다. 심지어 투애니원 멤버들 중 언니인 산다라박과 박봄에게는 서슴지 않고 “귀엽다”고 말한다.
“멤버들은 정말 귀엽다. 사실 네 살 차이 나는 여동생이 있는데 언니로서 영향력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뿐만 아니라 모든 동생들에게 배울 점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항상 그랬듯 새롭고 좋아하는 걸 할 거다. 그걸 본 사람들이 나를 통해 공감대를 형성한다면 나로서는 성공이다.”
그렇다면 성공한 셈이다. 진짜 언니 같다.
“투애니원 활동할 때부터 여성들이 강해지는 일이 일어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요즘 가요계에 ‘나쁜 여자’들이 넘쳐난다. 나 뿐 아니라 여성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주관이 뚜렷해지는 것 같아서 기분 좋다.”
기성세대들과 충돌이 일어나지 않을까? 혹은 남성 팬들에게 오해를 살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예의랑 당당한 것은 별개의 문제다. 난 지킬 건 지키는 ‘나쁜 기집애’다. 또 내가 말하는 당당함 역시 나쁜 뜻은 없다.”
얼마 전 월드투어를 끝냈다.
“1년 동안 정말 많이 배우고 성장했다. 생각이 더 커지고, 달라지기도 했다. 특히 아시아 여자에 대한 편견이 있는데 그걸 없애고 싶었다. 스눕둑도 자신의 문화를 좋아하는 동양인 여자가 있다는 것을 좋아해 주신다. 대화를 나누다 보면, 나라와 성별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나와 스눕둑은 서로의 음악을 들려주며 소통했다.”
사내대장부 같다. 아니 여성대장부라고 해야 할까?
“난 중성적인 성격이라 남자였어도 지금과 똑같았을 것 같다. 외모는 잘생겼지 않을까. 여자들을 많이 울리는 진짜 나쁜 남자가 됐을 거다.(웃음)”
사진=YG엔터테인먼트 제공 |
당차고 선구자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 남성미를 느끼던 찰나, 뒤통수를 치듯 “나도 여잔가보다”라며 충격적인(?) 말을 내던진다. 지금까지 들은 이야기로는 그저 남성성 짙은, 그보다 좀 덜한 표현을 빌리자면 강한 여성미를 갖춘 씨엘이 처음으로 ‘호호’거리며 웃는다.
그런 사람이 뮤직비디오에서 금니를 하고 나오다니.
“안 그래도 그게 걱정이다. 뮤직비디오의 여러 콘셉트가 다 내 속에 있는 모습들인데 금니는... 나도 여자이긴 한가 보다. 처음에 해보자고 했을 때 흔쾌히 수락했는데 막상 해보니까 웃기더라. 오빠들도 웃음을 참으면서 멋있다고 했다. ‘이러다 정말 시집을 못 갈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래도 이 모습을 사랑해주실 분도 계실 거라고 믿는다.”
이걸로는 부족하다. 본인이 천생여자라는 걸 어필해봐라.
“요리하는 걸 무척 좋아한다. 쉬는 날 요리를 배운다. 미래의 남편이 맛있게 먹어줄 정도는 된다. 멤버들에게도 종종 해주는데 평이 좋다. 제일 잘하는 것은 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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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에서 보이지 않았던 새로운 모습에 놀라는 기자를 보더니 신났는지 “내 안엔 어린 아이도, 할머니도 있다”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특히 지인들에게 항상 “어린이 취급해주세요”라는 말을 버릇처럼 하고 다닌다고. 아 잊고 있던 그녀의 나이가 생각났다. 파릇파릇한 23살 소녀였다. 88올림픽도 보지 못한...
“귀여운 거 좋아한다. 어린이에서 멈춘 것들이 약간 있는 것 같다. 항상 순수함을 갖고 살아가고 싶은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테디베어도 좋아한다.”
테디 오빠는 아니고?
“아니다.(웃음)”
뮤직비디오 속 고무줄놀이, 쎄쎄쎄 등의 아이템은 그럼 씨엘 속에 어린이가 준 건가?
“콧수염은 살바도르 달리를 좋아한다. 달리를 보면 아버지가 생각나는데, 우리 아빠가 괴짜 같은 느낌이 있다. 아이패치 역시 달리를 보고 영감을 얻었다.”
그럼 쎄쎄쎄, 고무줄놀이는? 당신이 즐겨했을 만한 시대의 놀이는 아니었을 텐데.
“고무줄놀이는 양현석 사장님의 아이디어다. 내가 과거의 것을 현대적으로 푸는 걸 좋아해서 사장님의 의견을 재미있게 풀어보려 했다. 제목이 ‘나쁜 기집애’니까 여자들이 많이 했던 대표적인 놀이들을 넣어봤다.”
정말 의외다.
“씨엘도 채린(씨엘의 본명)도 나다. 무대 위에서는 씨엘이지만 친구나 가족을 만날 때, 또 혼자 있을 때는 채린이 되려고 노력한다. 씨엘의 틀 안에 갇혀 있으면 나를 잃어버릴 것 같기
끝도 없었다. 아마 하루 종일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면, 그녀 속에 또 다른 모습이 수없이 쏟아져 나올 듯 보였다. 씨엘과 채린이를 넘나들며 스물 셋의 인생을 살고 있는 그녀는 “나에게 만족은 없다”고 사랑스러운 욕심을 내비쳤다.
[MBN스타 박정선 기자 composer_js@mkcultur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