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주몽’ 끝나고 나서죠. 2년 동안 집에서 넋 놓고 있었어요. ‘내가 뭐하는 걸까? 왜? 배우라고 할 수 있는 건가?’ 정체성이 흔들리던 시기였죠.”(웃음)
6월6일 개봉하는 영화 ‘마이 라띠마’에서 힘겹게 최저층의 삶을 지탱하는 수영을 연기했으니 당연히 나올 질문에 그의 답은 싱거운 듯했다. 하지만 다르게 보면 연기자라는 직업을 가진 이에게 일할 준비가 돼 있는데 아무도 찾지 않는다는 건 가장 어렵고 힘든 기억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그게 슬럼프라고 할 순 없어요. 그렇게 따지면 전 항상 슬럼프죠. 여러 가지가 저를 일깨우는 원동력일 뿐이에요. ‘주몽’ 전에는 삽질(?)도 많이 한 걸요. 중국에서 맨땅에 헤딩도 해봤고요.”(웃음)
그는 과거 위기를 발판 삼아 높은 곳을 향하고 있다. ‘주몽’ 이후 ‘바람의 화원’, ‘찬란한 유산’, ‘천사의 유혹’, ‘동이’, ‘49일’ 등의 드라마에 출연했고, 영화 ‘백자의 사람: 조선의 흙이 되다’, ‘26년’ 등을 통해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저는 제가 갇혀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실험도 많이 했어요. 어떤 역할이든 할 수 있다고 봐요. 그게 악의 끝이나, 타락의 끝일 수도 있고요. 물론 꼭 그 상황이 돼야 그 인물 연기를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배수빈은 수영을 연기하기 위해 노숙자들을 눈여겨봤다. 사람에 관심이 많다는 그는 “‘이들은 어떤 성장 과정을 거쳤을까? 왜 저런 삶을 살 수밖에 없을까?’라는 관찰자의 시점으로 바라봤다”며 “이들도 이런 삶을 원치 않았다는 걸 알게 됐고, 여러 가지 사회 제도적인 문제들을 보게 됐다. 또 이들 중에는 욕심이 과한 사람도 있었다”고 짚었다. 극 중 수영의 처지를 떠올리게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의 사람들이었고, 그의 간접 경험은 영화 속에 녹아났다.
‘마이 라띠마’에 초반부터 참여한 배수빈은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를 통해 유지태 감독과 인연을 맺었다. 유 감독이 자신의 시나리오를 모니터해달라고 부탁했고, 배수빈은 “출연하고 싶다”고 부탁을 했다. 애초 19세 남자 이야기였는데 유 감독은 시나리오를 고쳐 써 나이와 상황 등을 조정했고, 배수빈은 자신의 개런티까지 투자를 했다. 한마디로 꽂혔다.
“수영의 이야기가 와 닿았죠. 사람과의 관계를 통한 아픔에서 사람이 성숙한다고 생각해요. 자기를 내려놓을 줄 알고, 또 그렇게 살다 보면 소통을 하게 되는 거죠. 제가 수영처럼 굴곡진 인생을 살진 않았지만 ‘사람이 다 비슷하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아픔이죠. 유지태 감독과 생각하는 방향이 같더라고요. ‘이 사람과는 어떤 일을 도모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어요.”(웃음)
이들의 노력과 열정이 통한 걸까? ‘마이 라띠마’는 지난 3월 제15회 도빌아시아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는 쾌거를 이뤘다. 하지만 배수빈은 무척이나 아쉬워했다. “연극 ‘광해’에 참여하고 있어서 영화제에 가지 못했어요. 해외영화제에 참석해 본 적이 없는데, 상까지 받았으니 가야 했는데…. 정말 아쉬워요.”
영화 개봉에 앞서 배수빈의 결혼 소식이 전해져 팬들의 관심을 받았다. 배수빈은 예비신부를 향한 지나친 관심은 정중히 사양했다. 적정할 정도만 공개한 그는 결혼해도 “똑같이 연기활동을 할 것”이라며 “관심을 조금이라도 받을 수밖에 없지만 내 결혼이 거창한 것은 아니다. ‘마이 라띠마’는 좋은 영화니 영화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삶을 살면서 성실해야 하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밥을 먹을 수 있고, 가족이든 뭐든 지킬 수 있는 거예요. 성실하지 않고 노력하지 않으면 뭐든 지킬 수 없는 게 당연하죠. 전 제가 일해서 번 돈으로 먹고사는 게 좋아요. 욕심을 내고 싶지 않아요. 어떤 일을 하든 반대편 누군가는 상처를 받겠지만, 서로가 모두 좋은 일을 하고 싶어요. 제가 가진 건 몸과 목소리, 눈빛뿐이지만 이것들을 이용해 좋은 방향을 찾아가려고요.”(웃음)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현철 기자 jeigun@mk.co.kr/ 사진 팽현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