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감독 장철수)에서 김수현이 연기한 북한의 남파 특수공작 5446부대 내 최고 살인 무기 원류한은 남한으로 내려가라는 임무를 맡았다. 그런데 달동네 바보로 위장해야 한다. ‘바보 똥꾸’라는 놀림을 들으며 지능이 떨어지는 동구를 연기하는 원류환. 사람들의 눈을 속이기 위한 계산된 지령이라지만 정말 바보 같다.
표정이나 행동, 말투, 몸짓이 리얼함 그 자체다. 드라마 ‘자이언트’나 ‘해를 품은 달’에서 멋지고 연기 잘하는 배우로만 인식됐는데, 언론시사회에서 “영구와 맹구, 용구를 참고했다”며 각 캐릭터를 성대 모사한 그는 또 한 명의 바보 캐릭터를 제대로 완성했다. ‘7번방의 선물’에서 지능이 떨어지는 용구를 신들린 듯 표현한 류승룡 저리 가라 할 정도다. 코를 찡긋하며 말하고, 특유의 추임새까지 ‘진짜 바보 아닌가?’ 착각할 정도다.
관객이 상상한 것보다 더한, 전혀 예상할 수 없는 김수현의 등장만으로도 영화는 호감형이다.
감쳐둔 살기가 알게 모르게 느껴지던 원류환은 이 지점에서 2년 동안 남한에 살며 변화한 모습이 여실히 드러난다. 형을 잃어버렸는데 찾아달라고 하는 꼬맹이 부탁을 들어주고, 겁탈당하려 하는 이웃집 여성을 구해 주려 하며, 슈퍼 주인 할머니를 괴롭히는 건달을 혼내주는 등 달동네 사람들을 걱정하는 그에게서 냉철함보다는 따뜻한 마음이 전해진다. 감독은 인간의 보편적인 감성에 대해서도 전하려 한 듯하다.
물론 남북을 소재로 한 영화답게 분단된 시대의 안타까움도 담겼다. 대한민국 국민은 죽었다 깨어나도 알 수 없는 북한 체제. 원류환을 좌절하게 하는 조국은 관객의 안타까운 마음을 더 키운다. 하나의 조국을 꿈꾸며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는 한반도 국민 같은데 절대 그렇지 못한 현실은 아쉬움이 가득할 수밖에 없다. 서로 죽일 수밖에 없는 처지는 비극 중의 비극이다.
이들이 펼치는 공중 액션과 맨몸 대결 신, 폭파·총격 신도 감각적인 영상으로 연출됐다. 주인공들이 빗속에서 대치한 후반부 장면은 긴장감이 역력하다.
장철수 감독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은 감독이 될 것”이라는 평소 바람을 제대로 보여줬다. 코미디로 시작하지만 드라마와 액션이 더해지더니, 가족드라마까지 추가해 복합장르로 마무리된다.
데뷔작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로 칸 국제영화제에 초청받으며 외국과 한국에서 주목받은 그는 또 한 번 관객의 흥미와 관심을 이끈다. 엄청난 인기를 끈 동명의 웹툰이 원작이다. 123분. 15세 관람가. 6월5일 개봉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현철 기자 jeigun@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