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슬란드 밴드 시규어 로스의 첫 내한 공연이 지난 19일 오후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렸다. 6500여명의 관객이 운집한 공연장은 마치 올림픽(?)이라도 열리는 듯 다국적 인파로 가득했다.
무대는 은밀하게 시작됐다. 사방으로 둘러쳐진 천막은 두 번째 곡이 끝나고도 걷히지 않았다. 다만 그들의 그림자와 비디오 아트를 수놓기 허락할 뿐이었다.
이는 시규어 로스의 친절한 무대 연출이었다. 시야를 가린 덕분에 시각과 청각은 밸런스를 찾을 수 있었다. 보컬 욘 소르 비르기손(38·이하 욘시)의 창공을 가르는 듯한 신비한 고음은 보고 듣는 것 너머의 세상으로 관객을 이끌었다. 이들의 공연은 특유의 잔잔함을 유지하면서도 때론 묵직하게, 화끈하게 에너지를 폭발시키는 베리에이션으로 긴장을 유지해 나갔다.
이들의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어느새 아이슬란드의 파란 하늘 아래 드넓은 들판에 누워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아이슬란드어, 욘시가 만든 ‘희망어’로 쓴 가사는 알아들을 수도 따라 부를 수도 없지만, 음악의 정서가 전해지는 데 하등의 문제가 없다. 이들은 자유를 노래한다. 세상의 모든 존재들에게 구속으로부터의 해방을 돕는다.
이날 공연은 ‘빛의 향연’이라 부를 만했다. 욘시(보컬/기타), 오리 파울 디러손(드럼), 기오르크 홀름(베이스)과 퍼커션, 현악기, 브라스 등 12명의 하모니는 오렌지빛 조명들과 한 데 어우러져 마치 이 세상이 아닌 곳의 거룩함을 부여하기도 했다.
한 곡 한 곡이 끝날 때마다 관객들은 “오늘 욘시는 미쳤다”며 찬사를 쏟아냈다. “보고도 못 믿을 광경”이라며 감격에 말문이 막힌 표정으로 넋을 잃고 무대를 바라볼 뿐이었다.
시간은 화살처럼 빨랐다. 어느덧 ‘Festival’이 흘러나오자 공연이 막바지로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일순간 공연장에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이토록 아름다운 세계를 떠나야 한다는 아쉬움과 시규어 로스와 이별해야 한다는 슬픔에 수많은 감정들이 공연장을 떠돌았다.
마지막 곡 ‘Brennisteinn’이 끝났다. 관객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박수를 쳤다, 조명에 다시 불이 켜지기를 기대하며. 끝날 기미가 보이지
감히 현실이어선 안 될 퍼포먼스였다. 세상에 ‘미(美)의 이데아’가 존재한다면, 시규어 로스의 음악이 바로 ‘그것’이었으리라. 결코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밤이었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염은영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