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화 전날 대본을 훑어보고 나름대로 생각도 하다 잠이 듭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그저 일한다는 그 자체에 즐거움을 갖고 의상도 직접 선택해요. 도착하면 정작 배고픔은 잊고 대본 회의에 들어가요. 어쨌든 신바람이 난다는 거죠.”
원조 국민MC 허참(64). 25년 간 “몇 대 몇”을 외치던 ‘가족오락관’을 떠나 MBN 신개념 노하우 대결 버라이어티 ‘엄지의 제왕’을 통해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지난 26일 방송된 ‘엄지의 제왕’은 동시간대 지상파 예능이자 강호동의 복귀작인 KBS 2TV ‘달빛 프린스’를 누르고 전국 기준 3.430%(닐슨코리아 기준)의 시청률을 달성했다. ‘엄지의 제왕’은 스타 게스트도, 세상에 없을 법한 단 하나의 이야기도 없다. 일반인 출연자가 생활 속의 지혜를 공유했을 뿐임에도 시청자들의 공감을 샀다.
“방송 입문이 순탄치만은 않은 길이었는데 다행히 행운이 주어졌어요. 시작과 동시에 좋은 프로그램을 많이 맡았죠.”
한 프로그램을 25년이라는 세월동안 할 수 있는 MC가 몇이나 될까. ‘가족오락관’으로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비결이 궁금했다.
“새삼 이 나이에 생각해봐도 주변의 인간관계를 많이 쌓는 것만큼 좋은 게 없는 것 같아요. 혼자서 이룬다는 것은 말도 안 되죠. 제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숨겨진 재능을 일깨워준 사람들이 있어 가능했다고 봅니다. 하다못해 나쁜 사람들에게서도 배울 점이 있어요. ‘이건 하지 말아야 겠다’는 자각을 하게 합니다. 사회생활하면서 많이들 배우지 않나요. 다 소중한 재산이었죠.”
허참은 “결정적으로 적성에 맞는 ‘가족오락관’을 시작했다”며 당시 무아의 경지로 몰입했다고 했다. “일로 생각하면 짜증도 나고 녹화시간도 길게 느껴진다고요. 일에 앞서서 좋아서 하는 게 크나큰 비결이 아닐까요.”
일반인 출연자가 많은 ‘엄지의 제왕’에서 그 진가가 발휘됐다. “출연자는 방송을 처음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긴장을 하고 있어요. 제가 갖고 있는 노하우로 그들이 갖고 있는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게 제 몫이 아닐까 싶어요.”
특히 대부분 전문가로 구성된 패널들은 서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려고 한다.
“출연자들을 적당하게 분배해서 질문하게 하고, 웃음을 유발시킬 수 있도록 유도합니다. 이건 ‘가족오락관’에서 많이 터득했어요. 이곳에서도 아주머니들이 방청객으로 앉아있어요. 그들이 하품하거나 시계를 쳐다보지 않도록 하는 것이 제 몫이죠. 스스로가 느낍니다. ‘아, 일찍 공부하기를 잘 했구나’라고.”
“몇몇은 보면… 후배들이라서 그런지…”라면서 깊이 생각에 빠진 그는 “물론 그들도 집에 들어가면 가장이고, 어려움도 보람도 있겠지만 자기 적성에 가장 잘 맞는 프로그램을 찾아야 한다”며 연륜이 묻어나는 말을 전했다.
“나이가 들어가면 갈수록 자신에게 맞는 프로그램을 입어야 해요. 하다보면 ‘아, 이거다’는 생각이 들겠죠. 누구에게나 남쪽인지 북쪽인지 방향은 있겠지만, 그 과정에 늪이 있을 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저 역시 목적은 방송인이지만 때로는 ‘내가 왜 방송국에 들어왔지’ ‘내가 다른 걸 찾아야 하지 않을까’ 깊은 고심에 빠질 때도 있어요.”
인터뷰의 끝자락 쯤 ‘엄지의 제왕’ 녹화 재개를 알리러 들어온 예능국 민성욱 PD가 살며시 말을 얹었다.
“선생님을 처음 뵀을 때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새 프로 들어가기에 앞서 ‘가슴이 떨린다’고. 웬만한 사람들도 가슴 떨린다는 얘기를 안 하는데… 그게 참 가슴에 와 닿았죠.”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이소담 인턴기자/사진 MB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