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당신이 생각하는 인디란 무엇인가?
주지하다시피 인디는 인디펜던트의 약자다. 사전적인 의미로 대형 자본에 의지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작품을 생산하고 유통하는 것을 말한다. 실제로 영미권에서는 후자의 의미가 보다 인디의 본질에 가깝다. 유니버셜뮤직, 소니뮤직, 워너뮤직 등 대형 유통사의 유통망을 통하지 않고 판매되는 음악을 인디음악으로 분류한다. 인디는 장르나 생산방식이 아니라 유통 방식에 의해 정의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음반시장 구조가 영미권과 다른 우리에게 인디는 유통방식 보다는 생산방식, 특히 활동방식에 가까운 용어가 됐다. 스스로 곡을 쓰고 녹음해 앨범을 제작하거나, TV 출연이 아닌 클럽공연을 통해 활동을 하면 인디로 구분된다. 전자의 경우라면 서태지도 인디고, 후자의 경우라면 팀으로는 TV 출연을 하지 않는 브라운아이드소울도 인디여야 한다.
여기에 음악의 진정성이라는 다분히 아전인수격 해석과 아마추어리즘이라는 왜곡된 편견까지 더해지면 우리나라에서 통용되는 인디라는 표현이 어느정도 설명된다.
이렇게 정의 자체가 모호하다 보니 자우림을 비롯해 소속 아티스트만 15팀에 넘는 나름 큰 기획사인 사운드홀릭도 인디레이블로 불리고 소속 뮤지션들도 인디라고 칭해지는 촌극이 벌어진다. 그렇다면 십센치는 인디일까 아닐까?
![]() |
○ ‘인디’ 밴드의 첫 체조경기장 공연
23일 오후 7시 서울 방이동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파인 땡큐 앤드 유?’(Fine thank you and you?)라는 타이틀로 십센치(10cm)의 단독공연이 열렸다. 1만석 규모의, 실내공연장 중에는 국내 최대규모의 이곳은 세계적인 뮤지션들과 국내 최정상급 티켓 파워를 가진 가수들만 설 수 있는 공연장이다. 2016년 일산에서 신축되는 1만 8천석 규모의 공연장이 문을 열기 전까지 체조경기장의 상징성은 유효할 듯 싶다.
단 두 장의 정규앨범과 한 장의 미니앨범을 발표한 ‘인디’ 밴드 십센치가 이곳에서 공연을 여는 것은 기적 같은 일이라고 한다. 혹자는 체조경기장 공연은 애초 무리수라고도 했다. 하지만 이날 공연을 통해 이 공연이 기적도, 무리수도 아니었음을 십센치는 증명했다.
이날 십센치는 ‘새벽 4시’를 시작으로 ‘오늘 밤은 어둠이 무서워요’ ‘너의꽃’ ‘킹스타’ ‘아메리카노’ ‘오늘밤에’ ‘죽겠네’, ‘파인 땡큐 앤드 유’ 등 자신들의 대표곡을 비롯해 게스트로 출연한 버벌진트와 ‘굿모닝’을, 하하와 ‘찹쌀떡’ ‘죽을래 사귈래’ 등 총 26곡을 160여분간 소화했다.
특유의 자뻑 개그는 물론이고, 보컬 권정열의 농염한 보이스, 뮤지컬 ‘지킬앤 하이드’의 ‘지금 이 순간’을 솔로로 열창한 윤철종의 의외의 모습까지 확인 할 수 있었다. 마칭 밴드로 분해 객석 한가운데서 깜짝 등장하거나 하얀 종이가루가 쏟아지기도 하고 멤버들이 T자형 무대를 이리저리 뛰어다니기도 했다. 이날 무대는 체조경기장 규모에 손색없는 버라이어티한 공연이였다.
십센치는 인디인가?
십센치는 소속사가 없다. 십센치의 소속사를 검색해보면 텐뮤직이라는 소속사 이름이 나오긴 한다. 하지만 법인도 아니고, 직원은 윤철종, 권정열 멤버 두 명이 전부다. 말 그대로 자체 레이블 인 셈이다. ‘아메리카노’의 성공과 1집의 히트로 여러 대형 기획사에서 영입 제의가 있었지만 이들은 자신들 만의 방식을 고집했다. 실제로 십센치는 우리나라에서 흔히 쓰이는 인디라는 정의에 가장 가까운 팀이다. 소속사 사장님도 없고, 당연히 음악에 대한 간섭이나 통제도 없다.
일전 인터뷰에 이 같은 방식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나눠가져야 하는 돈이 아까워서다. 무엇보다도 우리 두 사람 다 위에 누가 있는 게 싫다”고 웃으면서 말했지만 실제로 매니지먼트의 도움 없이 스스로 모든 결정을 내리고 과정을 주도한다는 것은 말 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앨범하나를 만드는 것 부터가 녹록치 않은 일인데 체조경기장 규모의 대형 공연을 준비하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한 일에 가깝다.
하지만 이 같은 내부 사정과는 무관하게 이들은 간간히 ‘무한도전’ 같은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새 앨범이 나오면 전곡이 차트 상위권에 오르고, 오프라인에서 앨범이 2~3만장씩 팔리는 팀이다. 대형 포털사이트에서 새 앨범 발매에 맞춰 이들의 라이브를 온라인으로 생중계하고, 체조경기장에서 공연을 하는 이들이 과연 인디일까?
![]() |
십센치, 인디는 없다
십센치는 “주변에 음악하는 후배들이나 동료들이 ‘어떻게 소속사 없이 활동할 수 있냐’고 많이들 묻는다. 사실 대답하기가 어렵다. 우리는 우리가 편한대로 하는 것 뿐이지 어떻게 하는지 잘 모르니까. 일단 음악을 잘하면 되는게 아닐까”라고 말했다.
쉽게 툭 던지듯 말했지만 이들의 방식은 소위 말하는 ‘인디정신’ 표방하거나 고수하기 위함이 아니다. 단지 자신들이 음악활동을 하기 편한 방식일 뿐이다. 이승환이 드림팩토리를 만들고, 서태지가 서태지컴퍼니를 만들고, 신해철이 일전 싸이렌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한 것도 같은 이유다.
자신들이 음악을 하기 편한 방식이라 함은 단순히 누구의 간섭이나 통제를 받지 않고 더 좋은 음악을 만들기 위함이다. 좋은 음악은 대중들의 호응을 이끌게 되고 자연스럽게 이를 상업적으로 포장해 더 많은 수익을 낼 수 있는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들이 아티스트 주변에 몰리게 마련이라는 사실을 이들은 스스로 증명해 왔다. 이 때 아티스트는 이들 중 가장 마음에 맞는 사람들을 파트너로 선택할 수 있는 소위 갑의 위치가 된다. 모든 아티스트가 꿈꾸는 방식이지만 기본적인 바탕은 결국 음악이다.
다시 말하면 음악만 좋으면 먹고사는 문제 뿐 아니라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얘기다. 어떤 음악이 대중적인 보편성을 얻지 못하는 것은 장르적 특성, 또는 음악 자체의 난해함 때문일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인디기 때문에, 기성 미디어나 대기업과 자본이 이들을 배척하기 때문은 결코 아니라는 설명이다.
![]() |
사전적인 의미로 인디와 메이저의 구분이 분명한 영미권에서는 인디에서 성공해 메이저로 가는 것이 자연스럽고 당연한 수순이고 또 대부분의 뮤지션들이 이를 바라고 음악을 한다고 해도 썩 틀린 말은 아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음악을 들어줬으면 하는 마음은 뮤지션으로서 당연한 바람이니 말이다. 누가 뭐래도 우리는 작은 클럽을 떠나지 않겠다는 태도는 인디도 인디 정신도 아니다. 이미 체조경기장에 선, 앞으로 다시 한번 체조경기장에, 또는 잠실 주경기장에 서게 될 십센치에게 왜 이제는 젬베를 치지 않냐고 윽박지를 이유도 없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이현우 기자 nobodyin@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