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식(50)의 아우라는 21일 개봉하는 영화 ‘신세계’에서 포효한다. 최근 삼청동의 카페에서 마주한 그는 “이제 지하세계에서 벗어나고 싶다. 피 좀 묻히지 않고 살고 싶다”며 엄살을 떨었다. 그리곤 “캐릭터 때문에 이 영화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우리 영화는 한마디로 깡패가 정치하는 영화에요. 멋스러운 인간들이 나오지만 시멘트 바닥 같은 퍽퍽한 느낌들이 좋았어요. 개인적으론 없는 듯 있는 듯 사건을 주도해나가고 다시 환기시키는,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어나가는 즐거움이 있었죠.”
‘신세계’는 마초들의 욕망을 다룬 누아르 영화다. 살아남기 위해 남을 죽여야 하는 상황 설정이 급박하게 돌아간다. 경찰이 폭력조직에 잠입해 조직원으로 활동한다는 설정은 홍콩 영화 ‘무간도’를 떠오르게 하지만, 매력 자체가 다르다.
조직폭력배 조직에 잠입한 경찰(이정재), 그 경찰을 아끼는 조직내 계파의 수장(황정민). 조폭에 잠입한 경찰관을 조종하는 그의 상관(최민식). 각기 다른 꿈을 꾸는 세 남자의 음모와 의리, 배신은 매혹적이다.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세 배우들의 각기 다른 매력과 내공 깊은 연기를 보고있는 것만으로도 눈은 호강한다. 행여 놓칠세라, 주인공들의 호흡 하나, 옷매무새 하나, 눈떨림까지도 카메라는 정밀하게 잡아낸다. ‘혈투’를 만든 박훈정 감독은 이런 기(氣) 센 배우들을 데리고 환상적인 앙상블을 빚어냈다.
“문화상품이란 건 손해도 보는 거죠. 투자를 해야 됩니다. 박훈정이 ‘혈투’로 말아먹었다고 해서 기회를 안 줬으면 끝이었을겁니다. 투자 환경이 아무리 냉정하다지만 진득하게 믿고 기다려줄 필요가 있어요.”
실제로 그는 영화의 주요세팅에 한몫했다. 이정재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같이 하자”고 제안했고, 촬영장에선 고참 선배로 후배들을 독려했다.
특히 이정재의 선택은 탁월했다. 최민식은 “시나리오를 보는 순간 이정재, 정우성 같은 배우들이 떠올랐다”고 했다. “왜 정우성이 아닌 이정재였냐”고 되묻자 “정재 같은 마스크를 더 좋아한다. 정재는 60대가 되면 제임스 코반 같은 배우가 되지 않을까 싶다”고 추켜세웠다.
‘정청’으로 분한 황정민과의 호흡은 탁구에 빗댔다. “탁구를 칠 때 스매싱을 하면 상대방이 리시브를 잘 해야 경기가 잘 풀린다. 그런 느낌이 들었다”고 기억했다.
“두 친구들은 ‘그럴 것이다’는 생각에서 빗나가지 않았어요. 일하는 자세나 인간적으로나. 사적인 면도 좋죠. 정재는 열려 있어요. 어제도 술 먹고 전화와서 ‘형 우리 다음에 또 해요’ 그러는데 ‘이제 날 끌고 들어가라’고 했어요. 가끔 보면 연기 좀 한다는 친구들 중 자기가 대상인 줄 아는 친구들이 있어요. 디렉션이 오면 불편해하고.”
최민식은 “요즘 좀 된다 하는 작품들은 기본이 400~500만이니 이런 나라도 없을 거다. 천만이면 영화를 두세 편을 봤다는 건데 이럴 때 잘 해야 한다”고 했다. “천만 들었다고 기고만장할 때가 아니다. 관객을 잃지 않으려면 좀 더 웰메이드 한 영화를 만들 시기”라고도 힘주어 말했다. 그러면서 인연이 깊은 후배들(하정우, 한석규, 류승범)이 출연한 영화 ‘베를린’의 감상평을 곁들인다.
“‘베를린’을 봤는데 ‘쉬리’ 생각이 납디다. 그때 ‘(한)석규하고 저렇게 총싸움 했는데’ 싶더군요. 그 영화 보면서 (나도) 총이 쏘고 싶더라고요. 그때는 원없이 쏴 봤어요. 스크린 속 배우들이 어우러져 있는 모습이 참으로 근사하던 걸요.”
스크린에선 이불 속에서부터 응축된 엑기스만을 꺼내놓고, 일상으로 돌아가선 그저 평범한 50대 아저씨처럼 살아간다는 최민식. 그의 다음 작품은 이순신 장군의 명량해전을 소재로 한 영화 ‘명량, 회오리 바다’(김한민 감독)이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향희 기자 happy@mk.co.kr/사진=강영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