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정재(40)의 또 다른 대표작이 될 게 틀림없다. 그는 영화 ‘신세계’에서 호흡을 맞춘 최민식, 황정민과 비교해도 전혀 밀리지 않는다. 특히 중반 이후 이정재의 진가는 제대로 빛을 발한다.
최민식은 제작발표회와 언론시사회 등을 통해 이정재 캐스팅에 발 벗고 나섰음을 언급했다. 자성 역할에 이정재가 잘 어울릴 것 같았단다. 그가 보는 눈은 정확했다. 이정재는 음모와 배신, 의리라는 길 위에서 갈팡질팡하는 인물을 맡아 뛰어난 연기력을 선보였다.
이정재는 사실 어려운 역할이었다고 털어놓았다. 또 “가장 자신 없고 싫어하는 캐릭터”라며 솔직했다. “처음 시나리오를 받자마자 ‘이 역할을 어떻게 하지? 연기하기 까다롭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행동은 없고, 생각만 많은 역할을 제일 싫어하거든요. 이걸 민식이 형이 같이하자고 하네? 어떡하지?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막막한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죠.”
이정재는 “영상으로 나온 것보다 시나리오는 조금 밋밋했다고 표현할 수 있다”며 “어떤 분들은 ‘밋밋한 시나리오가 좋은 시나리오’라며 ‘그래야 뭔가를 채울 수 있는 게 많으니 좋은 것’이라고 하는데 나는 이해를 못한다. 시나리오를 설계 지도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게 허술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라고 했다.
그래서 박훈정 감독을 무척이나 괴롭혔다. 이 장면은 왜 나왔고, 어떤 식으로 연기해야 하고, 다음 신과 어떻게 작용하는 신인지 등 귀찮을 정도로 감독과 논의했다. 작품 들어가기 전에도 그랬는데, 촬영이 끝날 때까지 계속됐단다.
“감독님한테 ‘나도 행동으로 보여줄 수 있는 뭔가를 터트리고 싶은 지점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어본 적도 있어요. 그런데 계속해서 긴장하고 갈등한 인물이 갑자기 변하면 캐릭터 힘이 깨질 것 같다며 서로 이견을 조율해 나갔죠. 그 흐름을 깨지 말고, 화려하지는 않더라도 처음처럼 밀고 나가는 게 좋다는 결론에 도달했어요.”
최민식은 무척이나 적극적이었다. “저녁 먹는 자리에서 민식 형이 저를 옆에 앉히더니 ‘정재야, 너 자성 역할 잘할 수 있으니까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봐. 할 수 있는 만큼 해봐’라고 하시는 거예요. 근데 가만히 보니 이게 용기를 주시는 건지, 부담을 주는 건지 모르겠더라고요. 용기를 내게 도와주기도 하면서도, 또 한 편으로는 얄밉기도 했어요.”(웃음)
1993년 드라마 ‘공룡선생’으로 데뷔한 이정재. 드라마 ‘모래시계’, 영화 ‘태양은 없다’, ‘도둑들’ 등 히트작을 냈다. 오랜 시간 연예계에서 활동하며 앞을 향해 달려온 그는 요즘 인생에서 일과 사랑을 빼면 뭐가 있나 싶다. 가끔 술자리에서 지인들에게 하는 얘기다. 연기 활동과 함께 연애, 결혼을 생각하는 것인지 물으니 아쉬워한다.
“사랑 때문에 내가 일을 하고, 흥미롭고 재미있게 살려고 하는 게 아닌가 해요. 가족 간의 사랑이나 이성과의 사랑 모두 포함해서요. 제 인생에서 일과 사랑을 빼면 저는 아무것도 아닐 것 같은 느낌이에요. 하지만 요즘 일도, 사랑도 제 맘대로 되지 않는다는 말을 자주 하게 되는데 그게 아쉽긴 하죠.”
몰두한 사업은 이미 정리했고 연기에 올인하고 있는 그가 새로운 사랑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말로 들릴 수밖에 없다. 결혼은 둘째치고 연애는 항상 하고 싶다는 이정재. 연예계 대표 노총각이 돼 버렸는데 부모님은 걱정하지 않을까? 그는 “명절 연휴 때 부모님과 식사를 했다. 재작년까지만 해도 ‘결혼하라’며 괴롭혔는데 정말 말도 안 될 정도로 ‘노총각 히스테리’를 부렸더니 이제는 결혼에 대한 말은 안 하시더라”고 웃었다.
그런 노력이 담긴 ‘신세계’가 관객의 취향에도 맞는 작품일 것 같고, 이정재의 또 다른 대표작이 될 것 같다고 하니 조심스러워하는 눈치다. “호평도 많고, 좋은 기사들도 많이 난 걸 봤어요. 너무 감사한 말이고, 그렇게 되면 무척 좋을 것 같긴 해요. 하지만 아직 일반 반응이 나온 것도 아니니 조심스러워하게 되네요.”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현철 기자 jeigun@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