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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 채널 Mnet ‘비틀즈코드2’는 하춘화와 소녀시대, 홍서범과 걸스데이, 현진영과 블락비, 김완선과 레인보우, 윤하와 B.A.P 등 서로 뚜렷한 공통점이 없을 것 같은 두 가수에게 흐르는 반복되는 운명(?)을 파해쳐 웃음과 재미를 주는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의 백미는 출연한 게스트의 노래들로 섞어 하나로 만드는 비비곡 코너다. 기상천외한 억지 설정과 황당한 이론들 끝에 소녀시대의 ‘아이 갓 어 보이’와 하춘화의 ‘날 버린 남자’가 비비곡을 통해 한 곡으로 완성되는 순간 시청자들은 이 소름 돋는 운명의 수레바퀴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매주 대덕연구원에서 이 비비곡을 연구하고 탄생시키는 비밀연구원 플래시핑거(Flash finger 본명 김정환)를 만났다.
재야 매시업(Mash up) 고수 플래시핑거
플래시핑거는 록밴드 기타리스트 출신으로 수년전부터 일렉트로닉 음악에 빠져들며 리스키리듬머신(RRM) 등의 디제잉팀에서 활동해온 매시업의 고수다. 현재는 블랙비트 출신 심재원과 스키조의 전 기타리스트 주성민과 함께 일레트로닉 밴드 비트버거의 멤버로 활동 중이며 개인적으로 뉴튼이라는 프로젝트 밴드를 꾸려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가 처음 대덕연구원에 합류한 것은 2011년 MAMA에서 YB와 다이나믹듀오 사이먼디가 오프닝을 꾸미는데 참여하면서 부터다.
“리스키리듬머신이 YB와 앨범 작업을 하게 되면서 그 인연으로 2011년 MAMA 오프닝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세 아티스트의 노래를 하나로 만드는 매시업(Mash up)을 당시 무대에서 선보였는데 당시 무대를 보고 대덕(비틀즈코드)에서 연락이 왔죠.”
여러 곡을 섞어 하나의 곡으로 만드는 매시업은 당시 다소 생소한 분야였다. 당시 플래시핑거가 참여했던 MAMA 오프닝 무대는 여러 아티스트가 단순하게 자신들의 곡을 이어붙이는 수준의 단순한 편곡 수준을 넘어선 새로운 형태의 음악 작업이었다.
“방송 화면에는 약 1초 가량 나옵니다.” 짧지만 강렬한 등장이었다. 2012년 3월 플래시핑거는 대덕에 정식 입소하게 된다.
해외기술 도입의 실패 국산기술의 개발
“처음 대덕에서 요구한 연구과제는 김흥국의 ‘레게파티’와 하하의 '키작은 꼬마 이야기 였습니다. 처음에는 해외에서 기술 도입을 시도했죠. 세계적인 매시업 아티스트인 디제이 마사에게 자문 및 기술 이전을 요구했습니다. 홈페이지에 Q&A를 보라는 답변이 돌아왔죠. 원천기술을 보호하려는 것은 전세계 어떤 연구원이나 같습니다.”
첫 연구과제 부터 심각한 기술적 난항에 봉착했다. MAMA의 경우 세 아티스트의 콜라보레이션 작업에 가까워 음원 소스를 구하는 것부터 비교적 수월했지만 기존 음원만으로 매시업을 한다는 것은 전혀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목소리와 반주를 분리하는 것 부터가 쉬운 작업이 아니었다.
“우리만의 독자적인 기술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먼저 N포털 사이트의 지식인들에게 도움을 요청해 MR제거 기술부터 습득해야 했죠. 하지만 보편적인 국내 MR 제거 기술은 아직 초보적인 수준이었습니다. 일반적인 일렉트로닉 매시업은 템포가 정해져 있는데 반해 ‘비틀즈 코드’의 비트와 화성이 중구난방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 같은 경우는 일일이 수작업을 통해 완성해야 했지요.”
플래시핑거는 독자적인 연구로 몇가지 스킬을 습득해 갔고 이 같은 노력으로 국산 기술은 완성화 단계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는 곧 이 같은 수준으로는 세계적인 매시업 아티스트들과 경쟁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삼태기 타령‥매시업에 흐르는 한국인들의 피
플래시핑거는 일종의 매너리즘을 고백했다. 두 세곡을 하나로 엮는 것은 이제 비교적 수월해 졌으나 그 이상이 필요했다. 그 때 발견한 것이 ‘삼태기 타령’이었다.
“사실 매시업이라는 문화 자체가 외국에서 들어온 것이라 우리에게 거리감이 있다는 것 부터가 편견이었습니다. 우리에게는 과거부터 ‘삼태기 타령’과 같은 매시업의 피가 흐르고 있었던 것이죠. 이 매시업이 우리의 전통이라고 생각하니 자신감이 생기더군요. 우리만의 새로운 방식을 개발하는데도 탄력이 생겼고요.”
플래시핑거가 만든 국내 독자기술의 핵심은 매시업에 스토리텔링 기법의 도입이었다. 실제로 로이킴, 정준영, 딕펑스(Dick Punks), 이지혜, 유승우, 허니지가 출연했던 편에서는 여섯 명이 각각 ‘슈퍼스타K4’ 당시 노래를 하나로 엮어 ‘가족’이라는 테마로 하나의 곡을 만들었다. 단순히 비트와 화성 뿐 아니라 두 노래를 엮어 하나의 이야기를 만드는 작업이 본격적으로 선보인 것.
“최근 상부에서 시대간격이 큰 뮤지션들의 연구과제들을 던지면서 보다 기술적으로는 어렵지만 독창적인 결과물들이 많이 탄생하고 있어요. 동방신기의 ‘왜’와 ‘캐치미’는 ‘왜냐고 묻지 말고 나잡아 봐라’ 소녀시대의 ‘아이 갓 어 보이’와 ‘지’(GEE) 하춘화의 ‘날 버린 남자’는 ‘날 버린 남자 잘 들어 나 남자친구 생겼GEE’로 재탄생 됐습니다.”
매시업, 음악은 결국 놀이
비비곡을 통해 탄생한 노래들은 사실 다소 장난스럽다. 일부에서는 원작에 대한 모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대덕연구원 플래시핑거는 생각은 조금 다르다.
“음악을 만드는 방식 자체가 달라졌습니다. 거창하게 얘기하면 매시업 작업은 과거의 유산을 얼마나 더 창조적으로 조합하느냐가 창작의 핵심입니다. 하지만 본질은 일종의 놀이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음악적 소스는 넘쳐나고 이를 구하는 것도 쉬워지고 있으니 이 놀이 도구를 가지고 노는 겁니다.”
그는 음악이란 결국 하나의 놀이가 돼야 한다고 믿고 있다. 지금까지는 음악을 들으면서 놀았다면 이제는 만들면서 노는 단계가 됐다는 설명이다. 매시업은 음악이 많은 사람들의 놀이 도구가 되는 시작점일 뿐이라는 설명이다.
“저 역시 매시업을 하면서 전통적인 방식의 창작을 병행하고 있는 뮤지션으로서 만약 기존의 방식을 주장하면서 새로움을 추구한다고 한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열심히 작업을 하는 것이 필요하겠죠. 기존의 것들을 조합하는 것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것이 나와야 할 테니까요.”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이현우 기자 nobodyin@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