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윤석(45)이 세상 무서울 것 없는 아빠로 돌아왔다. 7일 개봉한 임순례 감독의 신작 ‘남쪽으로 튀어’에서 남들과 다르게 살아도 괜찮다는 이 시대의 갑(甲), ‘최해갑’을 연기했다.
김윤석은 “화려한 장르는 아니지만 배우와 이야기만 갖고도 따뜻함을 주는 보기 드문 영화다. 특히 가족들의 묘사가 정감이 갔다”고 했다.
김윤석은 천만 영화 ‘도둑들’ 다음에 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진정성 있게 나를 설득시킨 시나리오에 정이 간다”며 “다양한 장르로 찾아주는 게 고맙다”며 말을 이었다.
“오연수씨는 화장 안한, 실물이 가장 아름다운 여배우다. 지금까지 만난 사람 중 ‘맨 중에 맨’이다. 친구하고 싶은 느낌? 이런 여배우는 처음 봤다. 내가 부부 탤런트와 인연이 많은데, 유호정 하희라 오연수… 이제 신애라씨만 남았다.”
- ‘최해갑’이 부러웠던 건 든든한 아내(영원한 팬이자 아내인 안봉희)가 있다는 점이다.
“(오연수는) 심지어 아름답기까지 하고. 하하. 현실에서 도저히 찾을 수 없는 부인이다. (부부 간에) 굉장한 믿음이 있다. 말없이 나가도 헛짓을 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해갑’은 돈도 못 버는데 항상 당당하다. 그럼에도 아이들과 친구처럼 지내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 힐링영화라고들 한다. 하지만 요즘엔 자극적이고 강한 맛에 익숙한 사람들이 많다.
“어떻게 보면 용기가 있는 것 같다. 비유하자면 MSG(인공조미료)가 들어가지 않았다.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색깔이 있는 것도 아니고 원재료를 갖고 충분히 웃음을 유발할 수 있고 흐뭇한 마음을 줄 수 있다. 웃음으로 혼을 빼놓는 게 아니고 절제를 하면서 생각할 수 있게 한다. 이 영화를 한 컷으로 얘기한다면, 섬에 처음 도착했을 때 그 좁은 방안에 네 가족이 누워있는 신이다. 이 영화를 상징하는 느낌이 다 들어있다.”
- 임순례 감독과의 작업은 어땠나
“감독님 영화는 다 봤다. 감독님이 옛날부터 연극배우를 많이 캐스팅했다. 그 당시 연극배우들은 지금처럼 영화판과 친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감독님은 초기부터 연극배우들을 많이 썼다. 감독님의 카메라를 들이대는 시선은 굳이 표현하자면 ‘루저’에 가깝다. 남들의 시선이 흔히 가지 않는 방향을 비춘다. 이번 작품도 물론 해갑이라는 남자가 있긴 하지만 소시민의 이야기다. 감독님하고 딱 맞겠다고 느꼈다. 내가 느낀 감독님의 특징은 여유가 있고 여백의 미가 있다. 편집으로 빵 터트리고 코미디를 줄 수 있는 데도 절제력이 있다. 침묵 같은 것, 공허한 눈빛들을 놓치지 않는다. 어떤 이는 느려서 못 보겠다고도 하지만, 감독님은 그냥 그렇게 놔둔다. 보는 사람들에게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주는 것 같다.”
- 오연수씨에겐 15년 만의 복귀작이었다.
“(오연수씨는) 책받침 배우 아닌가. 옛날에 백일섭 선생님이 말하길 실물이 가장 아름다운 여배우로 오연수씨를 꼽았다. 내가 만난 여배우 중 화장 안한, 실물이 가장 아름다운 배우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 찍으면서는 항상 노메이크업이었다. 같이 분장하면서 보면 화장을 거의 안한다. 그 모습이 되게 아름다웠다. 실제로도 내면이 강하고 굉장히 말수가 적다. 지금까지 만난 사람 중 ‘맨 중에 맨’이다. 친구하고 싶은 느낌? 이런 여배우는 처음 봤다. 내가 부부 탤런트와 인연이 많은데, 유호정 하희라 오연수… 이제 신애라 한 명 남았다.”
- 와이프가 예뻐서 해갑이라는 인물이 더 능력있어 보이기도 했다.(웃음)
“맞다. 단아하게 옆에만 있어도 남편이 빛이 난다. 극중에서 몇 벌 되지도 않은 옷을 입고 나와도 아름답더라. (오연수와는) 허물없이 지내지만 서로 존댓말을 한다. 두 아들의 엄마이기에 서로 존중해주는 게 좋다. 주로 애들 얘기, 사는 얘기를 많이 했다.”
“고맙고 감사한 건 어떤 한 장르에 치우치지 않고 나를 찾아준 감독들이다. 자칫 잘못하면 굉장히 센 전문 스릴러나 액션전문 배우가 될 수 있었지만 다양하게 찾아준 것이 고맙다.”
- 흥행불패를 이어왔다. 강약을 조절해 작품을 선택하는 느낌이다.
“그 당시에 들어온 시나리오 중 가장 좋은 것을 선택한다. 일부러 그렇게 하려고 해도 안 된다. 그 시기에 그런 시나리오가 있어야 할 수 있다. 내가 아무리 캐스팅 1순위라 하더라도 그런 얘기가 없으면 할 수 없지 않나. 정말로 운이 좋게 그렇게 된 것이다. 정말로 진정성 있게 나를 선택시킨 시나리오에 정이 간다. 고맙고 감사한 건 어떤 한 장르에 치우치지 않고 나를 찾아준 감독들이다. 자칫 잘못하면 굉장히 센 전문 스릴러나 액션전문 배우가 될 수 있었지만 다양하게 찾아준 것이 고맙다. 정통 멜로만 하나 남았는데, 더 늙기 전에. 내가 올챙이가 되기 전에. 하하!”
“나는 섹시하지 않더라도 진정성 있게 멜로에 다가가면 가능하다고 본다.”
- 최근에는 ‘더티섹시’라는 말도 있다.
“류승룡이 없었으면 그런 단어도 안 만들어졌을 텐데, 우스갯소리로 ‘더티’는 승룡씨에게 주고 싶다.(웃음)”
- 어떤 멜로를 하고 싶나.
“멜로 시장은 다 죽었다. 멜로 하나의 장르만 갖고는 요즘엔 잘 안하고 스릴러나 범죄 장르까지 합쳐서 멜로로 만든다. 그래도 가장 멜로의 향기가 남아있는 건 로맨틱 코미디다. (내가) 멜로를 하게 된다면 식스팩을 만든다거나 몸 만들기를 하면 그것도 웃길 것 같다. 환상을 주기 보다는 현실감 있는 멜로가 될 것 같다. 현실에서 볼 수 있는 느낌이 좋지, 포장된 아름다운 멜로는 닭살이 돋아 못할 것 같다.(웃음)”
“송강호씨와는 20년지기다. 거의 여자친구처럼 매일 문자를 주고받다시피 한다. 우린 서로를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서로의 작품에 대해선 몇 마디 안한다. 요즘엔 만나면 맛이 가서 술은 많이 못 먹는다. 생맥주만 먹고 얘기만 한다. 똑같다. 자식 얘기, 영화 얘기… 맛있는 거 먹고.”
-시나리오 작가로도 이름을 올렸다. 감독 계획은 없나.
“내가 아는 배우들의 반 이상이 감독의 꿈이 있다. 왜냐면 우리는 어차피 선택 당하는 입장이고 다른 사람들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하나의 매개체로 들어간다. 그 이야기들이 잘 펼쳐지도록 열심히 연기를 하는 건데, 그러면 우리도 한 번 해보고 싶지 않겠나. 다들 꿈이 있다. 중요한 것은 ‘내 얘기가 있냐’는 것이다. 그걸 찾는데 오래 걸릴 것 같다. 그게 찾아지면 감독도 해보고 싶다. 현장에서도 기계 매커니즘을 보면 재밌다.”
- 영화를 선택하는 데 가족이 영향을 미치나?
“가족은 그렇게 영향을 주지 않는다. 내가 선택한 작품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가족이라 해도) 와이프 뿐. 애들은 어리다. 우리 애들이 ‘완득이’는 진짜 많이 봤다. 이번 ‘남쪽으로 튀어’도 볼 수 있을 거다. ‘완득이’ 때는 (아이들이) ‘완득이 완득이’ 하고 돌아다녔다.”
- 이 영화를 하면서 아빠로서 돌아볼 계기도 됐을 듯 하다.
“맞다. 더 여유있는 아빠가 되야겠다고 느꼈다. 부모들은 ‘대안학교가 있다더라’ ‘조기유학이 좋지만은 않다더라’ 이런 얘기를 계속 한다. 그러니까 이 영화를 보면 속이 시원한 거다. 흔히 자퇴하고 자기 하고 싶은 디자인을 하겠다고 하면 ‘그래 가!’라고 할 수 있다.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
-‘도둑들’이 시리즈로 만들어진다면 출연 생각이 있나.
“시나리오를 봐야죠.(웃음)”
-‘황해’는 배우들이 워낙 힘들게 촬영해 다시 촬영하고 싶지 않을 것 같다.
“내가 아는 나홍진 감독은 ‘황해2’는 만들지 않을 것 같다. 또 무언가를 찾아서 지금도 헤매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설)경구와는 그렇게 많이 못한다. 연극판에 있었지만 작품을 해본 적이 없어 자주 못 만난다. 송강호씨와는 20년 지기라 하루에 한 번씩 연락한다. 거의 여자친구처럼 매일 문자를 주고받다시피 하니까. 우린 서로를 너무 잘 알고 있어 (작품에 대해) 사실 몇 마디를 하지 않는다. 요즘엔 만나면 맛이 가서 술은 많이 못 마신다. 생맥주만 먹고 얘기를 주로 한다. 똑같다. 자식 얘기, 영화 얘기… 맛있는 거 먹고.”
- 광고에선 볼 수 없다.
“나는 안 찍는다고 말한 적 없다.(웃음) (들어온다면) 일단 보고 해야 하지 않을까. 근데, 안 찍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되게 많다.”
- ‘베를린’ 등 쟁쟁한 작품들과 붙는다.
“‘베를린’ 뿐만 아니다. ‘7번방의 선물’, ‘신세계’도 있다. 다 윈윈했으면 좋겠다. 좋은 느낌이 뭐냐면 작년에 한국영화가 양적으로 1억 관객 돌파도 있었지만, 일부에선 질적인 향상이나 장르의 다양성을 얘기했다. 다행히 2013년 1월에 나오는 영화들이 많기도 하지만 장르도 다양하다. 그런 게 굉장히 좋은 현상인 것 같다. 그 중 ‘남쪽으로 튀어’가 독특하게 다양성을 만들어내는데 일조했다 생각한다. 옛날엔 설이 되면 조폭 코미디나 어드벤쳐 대작들이 주로 있었는데. 이렇게 소소한 영화들이 구정에 걸려 관객들의 선택 폭이 넓어졌다.
- 김윤석에게 남쪽이란 어디인가.
“언젠가 유럽을 터벅터벅 걸어서 여행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짬이 날 때 와이프 손잡고 다니고 싶다. 하지만 애기들도 있고 되겠나. 옛날에 유럽을 갔었는데 너무나 짧은 시간에 유럽을 돌아다녀서 맛만 보고 돌아왔다. 나이가 들었을 때 다시 한 번 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 다음 작품은 뭔가.
“‘화이’(장준환 감독)라는 작품을 준비 중이다. (3년 계획을 끝냈다던) 하정우는 폭주 기관차처럼 달려간다. 아직까지 젊기도 하고 쉬는 게 더 괴롭다고 느끼는 것 같다. 나는 작품을 일찍 정하지는 않는 편이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향희 기자 happy@mk.co.kr/사진=강영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