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날씨 했던 사람?’ 이 정도였는데, 이제는 ‘박은지’로 알아봐주시는 분들도 많아졌어요. 지금 당장 큰 욕심을 부리진 않고 있어요. 욕심 부린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급하게 먹는 밥은 체하기 마련이니까요.”
방송인 박은지(30). MBC ‘뉴스데스크’ 기상캐스터로 7년 넘게 활약한 그녀는 ‘날씨 여신’이라는, 다들 부러워할만한 타이틀을 과감하게 내려놓고 ‘엔터테이너’ 박은지로서 0부터 다시 시작했다.
“마음속으론 늘 ‘박수칠 때 떠나자’는 생각이 있었어요. 가장 잘 한다, 가장 예쁘다 할 때 나가자는 생각. 내가 기상캐스터로서 지금 말고 더 사랑받는 기회가 올 수 있을까 생각해봤을 때, 장담이 안 되더라고요. 날씨에서는 톱 급이었지만 그건 생명력에 한계가 있으니까. 다시 새롭게 시작하자는 마음이었죠.”
처음 프리랜서로서 방송가에 뛰어들었을 때, 그를 바라보는 시선의 온도는 매우 다양했다. ‘날씨여신이 왔다’는 호의적인 반응도 있었지만, ‘왜 왔나’ ‘얼마나 잘 하나 보자’는 곱지 않은 시선도 없진 않았을 터. 당사자인 박은지가 모를 리 없다.
“저라는 사람 자체가 너무 생소한 컨텐츠잖아요. 그냥 날씨 할 때 튀었던 애 정도로 생각해주셨죠. 처음엔 어울리는 게 좀 힘들었지만 지금은 함께 프로그램 했던 분들이 도움도 많이 주시고 제가 굉장히 잘 하는 것처럼 포장도 해주시고(웃음), 감사한 일입니다.”
이제 갓 전문 방송인의 길에 접어든 그였지만, 프로의 세계에 봐주는 일이란 없었다. 방송사를 넘나들며 숨가쁘게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녹화방송은 물론 ‘나는 가수다’나 올림픽 방송 같은 생방송도 척척 해내야 했다. 날씨 전달 외의 경험치가 아직 부족한 그로서는 호된 신고식을 치른 2012년이었다.
시행착오도 있었다. 혼자 남몰래 운 적도 있었다. “처음 입는 옷이라 힘든 적도 있었어요. 한 주는 잘 됐다가 그 다음주는 잘 안 풀렸다가. 그런 시간들이 반복되다 어느 순간이 되니, 이제는 기본은 조금 알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돌발 멘트를 자제하게 되고 눈치껏 수위 조절하게 된 정도?”
날씨를 전할 때와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은 ‘내일은 없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방송이 마음에 안 들면 내일 더 잘 하면 됐는데, 지금은 제가 잘 소화하지 못하면 기회가 또 없을 수도 있으니까요”
악플러와의 관계(?)도 장기전으로 보고 간다. “저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싫어하는 사람도 있는 거잖아요. 무플보다는 악플이 낫다고, 그런 건 신경 안 써요. 아무래도 처음 보는 사람이다보니 단점을 발견하려는 경우가 더 많겠죠. 개인 SNS로는 잘 보고 있다며 응원도 해주시고요. 꾸준히 하면 상쇄될 거라 생각해요. 전 저를 싫어하는 사람을 내 편으로 만들 자신 있어요.”
박은지는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내면이 강한 것 같다” 하자 고개를 끄덕이며 싱긋 웃는다. 하지만 미소 뒤편으로, 큰 부침 없이 승승장구해왔지만 남들 모르게 숨겨왔을 마음고생의 흔적이 엿보였다. 그는 평소 독서를 통해 스스로 마음을 다독이며 ‘힐링’하고 있다.
방송에서 보여주는 똑소리 나는 이미지 때문에 다가가기 어려워하는 사람도 많지만, 실제로 박은지를 만나본 사람은 열이면 열, 하나같이 말한다. “성격 되게 좋은데?”
“제가 하는 일 자체가 저 자신을 드러내는 일이 아니다 보니 외적인 모습으로만 판단하실 수 밖에 없을 거에요. 그런 점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제 모습을 보여주면 상쇄될 거라 생각해요. 인터뷰도 너무 좋아요. 선입견을 없앨 수 있는 통로니까요. 사람들과 얘기해보면 까칠하거나 도도하고 거만해 보였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는 말을 많이 듣거든요. 그런 과정을 통해 아 내가 좀 더 열린 마음으로 다가가야겠구나 싶기도 하고요.”
박은지는 ‘나는 가수다’에서 함께 호흡을 맞췄던 박명수의 예를 들며 말을 이었다. “진짜 제 모습과 대중이 느끼는 모습에 갭이 있는 것 같아요. 가끔은 개그맨이 너무 부럽기도 해요. 박명수 씨랑 뭘 하면 사람들이 너무 친근하게 대해주시거든요.”
그렇지만 방송에서 자리잡기도, 대중과의 소통도, 박은지는 의연하게 멀리 내다보기를 실천하고 있었다.
“(서)경석오빠께 여쭤봤어요. ‘오빠처럼 이렇게 가늘고 길게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오빠가 말씀하셨죠. 톡톡 튀면 된다고요. 너무 튀지도 그렇다고 잊혀지지도 않게. 탁탁 아닌 톡톡 튀는 걸 말씀해주셨죠.”
지금도 박은지는 내면을 들여다보는 연습 중이다. “미셀프 마이셀프가 균형을 이루지 않으면 한 순간에 나락으로 빠질 수도 있다는 얘길 들었어요. 남이 바라는 모습에 너무 맞춰서 살기보다는, 둘을 적절히 조화시키면서 오랫동안 방송 하고 싶어요.”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박세연 기자 psyon@mk.co.kr/사진 강영국 기자/장소협찬 BACO(바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