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정혜영(40)을 따라다니는 수식어다. 이제는 첫 스크린 도전에 흥행을 만들어낸 연기자라는 말도 붙을 것 같다. 20년 만에 처음으로 출연한 영화 ‘박수건달’(감독 조진규)이 250만 관객(21일 영진위 기준)을 돌파, 큰 사랑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정혜영은 “실감이 나지 않는다”며 “박신양이나 아역배우 윤송이 등의 공이 크다”고 배시시 웃었다.
‘박수건달’은 건달 광호(박신양)가 사고로 손금이 바뀌게 되면서 낮에는 박수, 밤에는 건달로 이중생활을 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코믹하게 담은 영화다. 무당으로 변신해 웃음을 주는 박신양뿐만 아니라, 소재와 설정, 코믹 에피소드, 눈물 요소가 적재적소에 잘 들어가 대중의 기호를 충족시킨다. 정혜영은 안타까운 사연을 지닌 여의사 미숙 역을 맡아 아역배우 윤송이와 함께 눈물과 감동을 담당한다.
정혜영은 “웃음만 주고 끝나는 게 아니라 이 영화를 선택했다”고 회상했다. “재밌게 시나리오를 봤는데 후반부에는 또 다른 중요한 축을 이루고 있어서 고심했죠.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느낀 감동과 울림을 대중에게도 전달할 수 있을까?’라는 부담과 걱정이 있었거든요.”
실제도 네 아이의 엄마라서 그런지 그는 엄마 역할을 잘 표현했다. 그냥 엄마 역할이 아니라 가슴 아픈 사연을 안고 있으면서도, 또 강단 있는 인물이다. 그는 “아무래도 생활 속 모습이라 그런지 좀 더 잘 표현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웃었다.
“많은 부분이 안 나오게 됐으니 처음에는 아쉽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감독님과 이야기를 하면서 풀어나갔죠. 나중에 중요한 신이 있는데 가벼운 엄마로 보이면 안 되고, 또 코믹하게 보이는 것도 진실한 엄마로 보일 수 없으니까요.”
정혜영은 1993년 SBS 공채탤런트로 시작했다. 그간 영화 출연을 바라기도 했지만, 어떤 기회를 잡고자 달려들거나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고 하지는 않았다.
“과거에 좀 더 유명해지고,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였다면 끝도 없이 달려갔을 거예요. 하지만 제가 좋아서 연기했고, 쉼표가 필요할 때는 여행을 다녔죠. 제가 누릴 수 있었던 행복을 누린 게 좋았고, 값어치가 있었다고 생각해요.”
사실 그는 우연찮은 기회로 데뷔했다. 서울예전 광고창작과를 전공한 그는 방송국 공채시험을 같이 보자는 친구의 부탁에 마지못해 갔다가 덜컥하고 붙어버렸다. 친구는 떨어졌는데 그는 네 차례나 되는 과정을 통과했다. 사회에 나간 같은 과 선배들 덕에 CF에서 단역으로 나서는 등 TV 나올 기회도 많아졌다. 그렇게 자신의 존재를 알려 나갔다.
“연기를 처음 시작했을 때 하고 싶어서 한 게 아니라 의문을 가졌던 적이 있다”고 고백한 그는 “1995년 드라마 ‘째즈’를 끝내고 연기를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털어놓았다. 자기의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연기를 그만둘 생각을 하고 외국으로 공부하러 떠났다. 평소 관심 있던 디자인과 카피라이터가 목표였다.
하지만 외국에 있으니 연기가 계속 생각나더란다. 마침 한국에서 섭외 전화가 왔고, 그를 흔들었다. 계속 공부를 하겠다고 거절하고 다시 마음을 잡았다. 잠시 한국에 들어왔을 때 또 전화가 왔다. 그때 “어쩌면 이게 하늘이 내게 준 천직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단다.
“이상하게도 그렇게 생각하니 그때부터 연기가 재미있어지기 시작하더라고요. 그전에는 감독님이 시키는 대로 했고, 못한다고 혼났고, 화장실 가서 펑펑 울기도 했어요. 그런데 다시 돌아오니 다른 삶을 살아보는 게 좋은 직업인 것 같더라고요. 그때부터 욕심은 내지 않으면서 연기를 하기도 하고 쉬기도 하는 등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지냈죠.”
그는 또 “일은 잘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다. 시청률이 저조했던 적도 있었는데 그 과정 자체를 즐겨야 한다고도 깨달았다”며 “내가 만나는 사람들, 부딪히는 인연에서 행복을 찾는다”고 했다.
남편을 만나 깨달은 또 한 가지. “우리는 모두 어떤 사람을 만나겠다는 이상형을 갖고 있지만 정작 자신은 어떤 사람인지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라는 것. “남편을 만나며 ‘상대방이 바라보는 나는 준비된 사람인가?’라고 생각을 하게 됐죠.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우리 아이들을 봤을 때 이미 준비돼 있는 사람이길 항상 기도하고 살아요.”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애정도 무척 컸다. 네 아이를 키우면서 연기자의 삶까지 병행하는 건 힘들지 않느냐고 하니 “남편이 함께한다”고 했다. 또 많은 것을 내려놓으니 저절로 많은 것이 들어왔단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현철 기자 jeigun@mk.co.kr/ 사진 강영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