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송혜교는 지난 몇 년간 흥행 운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 |
영화는 더 심했다. 데뷔 8년 만의 스크린 출연작 ’파랑주의보’(2005, 23만 명)를 시작으로 ’황진이’(2007, 119만 명) 등이 모두 고배를 마셨다. 한 번도 영화에서는 성공을 거둬 본 적이 없다. 100만 관객을 넘은 ’황진이’는 약 100억 원가량의 제작비가 들었으니 제대로 쓴잔을 마신 셈이다.
2008년 미국에서 촬영한 독립영화 ’페티쉬’는 만들어진 지 2년이 지난 2010년에 개봉했으나 소리소문없이 간판을 내렸다. 2011년에는 ’미술관 옆 동물원’(1998), ’집으로…’(2002)를 히트시킨 이정향 감독의 9년 만에 복귀작 ’오늘’에 출연하며 반등할 수 있을지 관계자들의 관심이 높았으나 결과는 역시 좋지 않았다. 13만 명 동원에 그쳤다.
안방극장과 스크린에서 연거푸 쓴잔을 마셔야 했지만, 그의 변신과 연기 확장은 손뼉을 쳐줄 만하다. 굳이 미국의 독립영화에 출연하지 않아도 되는데 ’페티쉬’로 발칙한 모습에 도전했고, 왕자웨이(왕가위) 감독의 영화 ’일대종사’에는 비중이 적은데도 흔쾌히 출연했다. 욕심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도전이라고도 바라볼 수 있다. 안전한 길이 아닌 다른 길을 선택하는 건 배우들에게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송혜교는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하며 연기 폭이 깊어졌다. 최근 그의 연기를 보고 동급의 다른 여배우들보다 잘한다는 칭찬이 많다. 지난 2011년 여성영화인축제에서 ’오늘’로 연기상을 수상, 까다롭기로 유명한 여성 영화인들 사이에서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또한, 같은 해 프랑스 파리의 글로벌 에이전시 ’에피지스’와 계약을 하고 유럽 진출 발판도 마련했다. ’황진이’와 ’페티쉬’를 본 에피지스 측이 극찬하고 그와 계약을 했다.
이런 반응들이 2월 13일 첫 방송 되는 SBS TV ’그 겨울, 바람이 분다’를 기대하게 하는 이유다. ’그 겨울, 바람이 분다’는 사랑을 믿지 않는 두 남녀를 통해 인간의 진정성을 들여다보고 사랑의 가치를 어루만지는 메시지를 담은 작품. 일본 드라마 ’사랑 따윈 필요 없어, 여름’을 리메이크했다. 노희경 작가와 ’그들이 사는 세상’과 ’빠담빠담-그와 그녀의 심장박동소리’로 호흡을 맞춘 김규태 PD가 연출을 맡는다.
![]() |
오영은 시야의 한가운데만 희미하게 점처럼 보이고 주변부 시각을 잃은 터널시각장애인. 사람들을 믿지 못하고 언젠가 자신이 한없이 약해질 때는 이 세상을 미련 없이 떠나리라 생각하며 마음을 닫고 살아가는 인물이다. 그런 영 앞에 16년 만에 오빠인 오수(조인성)가 나타나고, 영은 자신을 이렇게 버려둔 오빠에게 결코 마음을 열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하지만 메말랐던 그의 가슴에 조금씩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따뜻하고 자유로운 오빠를 다시 만났기 때문이다.
송혜교는 오영의 캐릭터를 표현하기 위해 노희경 작가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고 한다. 대기업 상속녀이지만 시각장애를 가진, 쉽게 매치하기 어려운 캐릭터이기 때문에 어떤 쪽으로 캐릭터를 구성해야 할지에 대해 고민이 컸기 때문이다.
앞이 뻔히 보이는데 보이지 않는 척 연기를 하는 건 쉽지 않다. 최근 꽤 많은 배우가 시각장애인 연기를 했으나, 지난해 방송된 드라마 ’적도의 남자’의 엄태웅과 영화 ’블라인드’(2011)의 김하늘 정도가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송혜교는 "시각장애라는 선입견 안에 갇히지 말고 틀을 깨 달라"고 한 노희경 작가의 말을 가슴에 새겼고, 실제 시각장애인들이 생활하고 있는 복지관을 방문하면서 오영이라는 캐릭터에 영감을 불어넣었다. 쉽지 않은 연기지만 다시 한 번 새로운 역할을 맡아 정면승부를 선택했다.
2005년 드라마 ’봄날’ 이후 8년 만의 복귀인 조인성과 어떤 화학작용을 할 지도 이 드라마를 향한 기대치를 높인다.
잘 나가는 전문 포커 갬블러 오수는 첫사랑의 잔인한 실패 후 삶의 의미나 진정성 없이 살아가는 인물. 그에게는 미래도 희망도 없이 오직 지금 이 순간만 있다. 세상에 무서울 것 하나 없이 사막 같은 가슴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그지만 삶과 죽음을 두고는 삶을 선택한다.
단, 자신이 살기 위해서는 대기업 상속녀 오영에게서 78억 원이라는 돈을 받아내야만 한다. 가짜 오빠 수를 연기해야 하는 그는 자신을 친동생처럼 따르는 진성(김범)과 함께 영의 집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자신만큼 외롭고 지친 마음의 영을 속이는 수의 가슴에 어느덧 잔잔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그동안 조인성이 여배우들과 호흡을 맞추며 발산한 케미스트리는 시청자들을 충분히 매료시킬 만했다. 드라마 ’별을 쏘다’에서는 전도연과 ’발리에서 생긴 일’에서는 하지원, ’봄날’에서는 고현정과 호흡을 맞추는 등 여배우들과 연기하며 자신의 매력을 흠뻑 발산했다.
최근 공개된 촬영 현장 영상에서 조인성과 송혜교는 추운 날씨에서도 시종일관 즐거운 표정으로 임했고, 특히 조인성이 추위에 떠는 송혜교를 위해 슬쩍 핫팩을 건네는 모습이 벌써 달달하게 전해져 시청자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현철 기자 jeigun@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