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본을 보자마자 단번에 빠져들었어요. 여태껏 만난 어떤 역할보다도 가장 변화무쌍 해 마음이 끌리더라고요. 마음만 앞선 시골 소녀가 가수가 되겠다고 서울에 가긴 했는데…정말 온갖 고생을 다 하는 거죠! 저도 모르게 드라마와 함께 부쩍 성숙해진 기분이에요.”
배우 송민정(26)이 6년 공백 끝에 진정한 여배우로 거듭났다. 그 동안 차곡차곡 쌓아두었던 내공이 KBS 아침 드라마 ‘사랑아, 사랑아’를 통해 제대로 터져버렸다. 송민정은 극 중 만복당 한약방집 둘째 딸이자 승희(황선희)의 쌍둥이 동생 홍상아 역으로 분했다.
송민정은 “이번 작품을 통해 내가 얼마나 연기를 사랑하고 뜨거운 열정이 있는 지 깨닫게 됐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가 연기한 ‘상아’는 승희에 대한 열등감으로 똘똘 뭉친 인물. 버스 안내양, 가수, 미스코리아 등 다양한 경험을 통해 전형적인 신여성으로 성장해 화려한 삶을 살지만 가슴 안은 허무함으로 꽉 차있다.
“승아의 ‘짝사랑’ 연기는 정말 어려웠어요. 겁이 많은 편이라, 실제로는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없거든요. 누군가를 좋아해도 상대방에게 거절당할 것이 두려워 적극적으로 다가가지 않았어요. 그런데 점점 승아를 통해 그 절절한 마음이 이해가 가더라고요. 캐릭터에 몰입해 가면서 애착도 커지고 욕심도 많아졌어요. 한 번은 ‘짝사랑’만 하는 승아가 너무 안쓰러워 감독님께 항의 한 적도 있어요.(웃음) 제 안의 본능적인 뭔가가 깨어난 거죠.”
솔직하고 당당한 상아는 볼수록 밉상이다. 때때로 되바라졌다고도 볼 수 있다. 자신의 모든 걸 업둥이인 승희에게 빼앗겼다고 여겨 승희와 사사건건 부딪히고 괴롭힌다. 하지만 그녀의 내면 안에는 미워할 수 없는 또 다른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송민정은 이 복잡한 인물을 훌륭히 소화했다.
“누군가를 홀로 사랑한다는 건 외롭고 두려운 일인 것 같아요. 연기 하는 내내 참 쓸쓸했거든요”라고 말했다. 이어 “너무 ‘짝사랑’ 만 했더니 마음이 참…. 다음엔 꼭 서로 예쁘게 사랑하는 커플 연기를 하고 싶어요”라고도 했다. ‘새침때기’ 인형 같은 외모와는 달리 솔직하면서도 털털한 성격을 지닌 그였다. 말하는 데 있어 가식이나 과장이 없다.
2006년 연예계 데뷔한 송민정은 사실 올해로 8년 차. 첫 주연 작인 ‘사랑아 사랑아’를 만나기까지 길고 험한 무명의 시간을 견뎌야 했다. ‘길거리 캐스팅’으로 연예계 입문한 그는 앞서 드라마 ‘당신 참 예쁘다’ 에서는 푼수끼를, ‘뱀파이어 검사’에서는 섹시함을, 또 ‘신들의 만찬’에서는 어리보기함을 선보이며 배우 생활을 이어왔다.
그는 “사실 처음에는 연기에 대한 큰 욕심이 없었다”고 운을 뗐다.
“준비가 덜 된 상태라서 그런지 작품을 할 때마다 불안감과 초조함이 따라다녔어요. 스스로 제 모습이 항상 마음에 들지 않았고,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급급한 마음이 있었거든요. ‘더 좋은 작품을 해야지’라는 욕심에 사로잡혀있었던 것 같아요. 처음으로 긴 작품을 하면서 정말로 마음놓고 재미있게 연기에 임했어요. 제대로 다시 태어난 느낌이에요.”
그는 극 중 캐릭터가 다양한 경험을 통해 성숙해졌듯이 자신 역시 그러하다고 했다. 작품 속에서 겪은 감정과, 기억, 열정이 그의 연기 의지를 제대로 일깨운 셈이다.
이제 막 날개 짓을 시작한 그의 눈에는 설렘이 가득했다. 타고난 외모와 지치지 않는 열정, 이젠 즐길 줄 아는 여유까지 생겼다. 배우인생의 긴 마라톤이 이제 막 시작된 가운데 그녀의 결승 지점이 기대된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한현정 기자 kiki2022@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