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너희를 편하고 흥겹게 놀게 하리라”
데뷔 후 20여년간 총 정규앨범만 10장의 풍성한 디스코그라피와 그동안 쏟아낸 히트곡은 이승환 공연에 특별한 준비가 필요하지 않게 한다. 특히 이승환은 이날 공연에서 ‘사랑하나요?!’ ‘천일동안’을 비롯해 ‘슈퍼히어로’ ‘덩크슛’ ‘세상에 뿌려진 사랑만큼’ ‘물어본다’ ‘그대는 모릅니다’ ‘세가지 소원’ ‘그대가 그대를’ 등 자신의 노래 중 가장 잘 알려진 노래들으로 셋리스트를 채웠다. 드팩민이라고 불리는 마니아들 중심의 공연 문턱을 대폭 낮추겠다는 의지다. 물론 이는 공연의 전체 퀄리티와 무관하다. 자신에게 새로운 공연을 준비할 에너지를 주었던 색다른 레퍼토리를 관객들에게 흥을 주는 익숙한 레퍼토리로 바꾼 것 뿐.
스스로 “내 공연 역사상 최단공연”이라고 밝힌 이날 공연은 3시간 내로 다이어트를 했다. 비록 일부 팬들은 혹독하게 짧아진 공연에 허탈해 할 수도 있었지만 아마도 상당수의 ‘초심자’ 관객들은 적당히 뻐근하게 놀다 갈 수 있을 정도의 시간 안배였다.
“내 너희에게 신세계를 보여주리라”
‘환니발’이라는 타이틀처럼 카니발을 찾은 소녀의 환상적인 모험이라는 콘셉트의 이번 공연은 노래와 연주 뿐 아니라 공연장 허공을 날아다니는 풍선들, 마술쇼, 비보잉, 발레공연 등 갖가지 연출로 관객들의 눈을 홀렸다. 적재적소에서 터지는 폭죽과 불이 붙어 하늘로 솟아오르는 기타, 이승환을 허공으로 띄우는 리프트, 무대 위에서 만개하는 꽃과 각종 캐릭터 코스프레를 한 댄서들의 등장까지 이날 공연된 모든 곡마다 얼마나 다른 연출이 가능한지를 실험하고 경쟁하듯 쏟아져 나왔다. 이날 이승환은 처음으로 ‘순간이동’ 연출을 선보이며 관객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이승환이 처음 실험한 연출들이 3~4년 후에 다른 가수들의 공연에서 활용 된다는 말은 허언이 아니다. 실제로 지난 20여년간 이승환의 공연을 위해 새로운 공연 장비들이 개발돼 왔던 것도 사실이다.
관객들의 매너도 신세계다. 20년 내공의 관객들 답게 공연 중 객석 이벤트가 장관을 이루는 것. ‘사랑하나요?!’에서 흐트러지는 종이꽃가루와 ‘물어본다’를 부를 때 객석에서 터져 공연장을 뒤덮어 버리는 휴지폭탄은 언제 봐도 소름 돋는다.
“내 너희에게 나의 능력을 증명하리라”
이승환의 공연은 눈을 즐겁게 하는 ‘쇼’와 귀를 울리는 ‘감동’, 재치 있는 입담과 코믹한 효과들로 인한 ‘웃음’, 마지막으로 화끈한 록 음악으로 달리는 ‘열광’의 순서로 구성된다. 기실 이 같은 요소들은 노하우와 장비의 차이가 있을 뿐 어느 공연이나 콘셉트 자체는 대동소이하다. 이승환 공연의 가장 큰 차별성과 무기는 이승환의 목소리 자체다. 발라드를 부를 때의 섬세한 미성, 애절한 가성을 내기도하고, 달콤하게 간질이듯 부르기도 하고 때로는 포효하듯 거친 그로울링 까지 쏟아내는 그의 보컬리스트로서의 스펙트럼은 공연을 드라마틱하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인 것. 특히 이승환의 믿기지 않는 폐활량에서 뿜어져 나오는 압도적인 성량은 잠실실내체육관 1회 4천여명이 동시에 쏟아내는 함성을 뚫고 나갈 기세다. 결국 그의 목소리를 들으러 온 관객들인 까닭에 그의 목소리가 선하하는 감동은 어떤 연출보다 빛난다. 이승환의 나이가 곧 지천명이 된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경이로울 정도다.
공연이 주는 감동을 단순한 몇 가지 요소로 정의할 수는 없다. 음악이란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에 근거한다는 점에서 어떤 공연이 절대적으로 우위에 있다고 말하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평소 딱히 관심없는 뮤지션의 공연은 아무리 완벽한 사운드와 화려한 볼거리를 갖췄다 해도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 것이 사실. 하지만 이승환의 ‘계시’를 최소 한번이라도 경험하면 다른 공연에 뭔가 모를 불편함을 느낄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만은 분명하다. 다음 공연 소식이 들리면 나도 모르게 두루마리 휴지를 챙기는 모습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이현우 기자 nobodyin@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