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부가킹즈 ‘어 디케이드’(A Decade)
2월 발매된 부가킹즈의 ‘어 디케이드’ 앨범은 부가킹즈 10년의 역사를 회고하는 듯한 작품이다. 일렉트로닉 부터 뉴스쿨, 레게, 재즈, 복고, 가스펠 등 모든 곡들이 각기 다른 색을 뿜으며 빛나고 있지만 무엇보다도 힙합이라는 장르가 우리나라에, 특히 랩이 우리말에 어떤 방식으로 뿌리내리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하지만 타이틀곡 ‘돈 고’(Don't go)가 당시 유행하던 일렉트로닉 사운드가 아닌 전형적인 복고였던 까닭에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올해의 키워드가 복고였음을 이미 연초에 부가킹즈가 전면에 내세웠던 건 기억해줄 필요가 있지 않을까.
2. 블락비 ‘난리나’
홍수피해로 국가적인 슬픔에 빠져있던 태국까지 가서 개념없는 행동만 하지 않았다면 블락비는 분명 다른 평가를 받았을 것이다. 리더 지코의 음악적 성격과 대중성을 캐치하는 감각은 다이나믹듀오, 슈프림팀 같은 기존 힙합계 스타들과 달랐고, 블락비라는 팀 역시 기획사 시스템 속에서 만들어진 아이돌과도 다른 차별성이 분명했다. 2월 발표 된 ‘웰컴 투 더 블락비’(Welcome To The BLOCK, 타이틀곡 ‘난리나’)는 이들의 이 같은 개성이 오롯이 담겨있는 앨범이었다. 하지만 인터뷰 한 번에 모든 것이 사라지는 불운을 겪어야 했다. 6개월의 자숙기간을 거친 이들이 내놓은 ‘닐리리맘보’는 분명 절치부심한 흔적이 역력했다. 이제 이들은 진정 자유분방한 아티스트의 태도가 무엇인지만 배우면 될 것 같다.
3. 넬 ‘슬립 어웨이’(Slip away)
4월 발매된 넬의 ‘슬립 어웨이’는 멤버 모두 군입대를 모두 끝낸 넬이 4년 만에 앨범이다. 뉴욕의 아바타 스튜디오 녹음, 존 데이비스(John Davis)의 마스터링 등 부가적인 설명이 반드시 앨범의 완성도를 결정하는 건 아니지만 이 앨범의 사운드는 단연 올해 발매된 앨범 중 최고라는 평가다. 지금까지 넬이 들려줬던 사운드에 비해 처절함이 부족하고 지나치게 섬세했다는 점이 앨범의 흥행에서 아쉬움을 준 것은 분명하지만 그만큼 오래 간직하고 들을수록 빛나는 앨범이기도 하다.
4. 스탠딩에그 ‘라이크’(LIKE)
스탠딩에그는 우리 가요계에서 아무런 프로모션 없이 좋은 음악만으로 사랑받을 수 있음을 증명하고 있는 팀이다. 꾸준히 디지털 싱글 방식으로 앨범을 발표하던 지난 4월 이들이 내놓은 정규 2집 ‘라이크’는 스탠딩에그의 힘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종합선물세트 같은 앨범. 수록곡 전체가 감성적인 팝 스타일을 유지하면서도 진부하지 않은 멜로디로 채워졌다. 정규 앨범답게 다양한 장르를 포섭하려는 시도를 아끼지 않았다. 브라스와 코러스가 경쾌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마이 퍼스트 팬’(my first fan)이나 포크록 넘버 '머더(mother)' 등은 이들의 단단한 음악적 기본기를 만날 수 있는 곡들이다.
5. 옥상달빛 ‘서로’
미니멀한 사운드에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를 잔잔하게 읊조리듯 노래하는 ‘홍대여신풍’ 사운드를 누가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걸 완성한 것은 분명 옥살달빛이다. 우후죽순 생겨나 단순하게 흉내만 내는 ‘가짜여신’들 사이에서 탁월한 멜로디 감각과 반짝이는 곡 구성으로 분명 전혀 다른 차원을 점하고 있는 것도 분명하다. 5월 발매된 옥상달빛의 ‘서로’ 앨범은 지구 환경과 아프리카의 기근에 대해 노래해도(‘염소 4만원’) 옥상달빛의 필터링을 거치면 전혀 다른 느낌을 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들에게 만약 엄청난 대중적인 인기와 미디어의 관심이 쏟아진다면 이들이 이런 감성을 더 이상 표현하지 못할지 모른다는 불필요한 걱정이 생길 만큼 보존가치가 충분한 앨범이다.
6. 박정현 ‘파랄렉스’(Parallax)
6월 발매된 박정현의 정규 8집 앨범 ‘파랄렉스’는 끊임없이 진화하는 박정현을 만날 수 있는 작품이었다. 이제 박정현과 떼놓고 생각할 수 없는 정석원, 황성제의 참여는 당연한 것일지 모르지만 몽구스의 몬구, 못(MOT)의 이이언(eAeon) 등 소위 인디뮤지션들의 참여는 의외다. 이들이 참여한 곡들은 박정현이라는 뮤지션이 가진 음악적 스펙트럼으로 포섭할 수 없는 색은 대체 무엇인지 싶을 만큼 놀라울 정도. 여기에 하나 더, 타이틀로 선정한 ‘미안해’가 멕시코 인기그룹인 카밀라(Camila)의 노래를 리메이크한 곡이라는 점이다. 색다른 걸 보여주고 싶은 의지는 뮤지션이 가져야할 당연한 태도 아닌가.
7. 김진표 ‘JP6’
김진표가 4년 만에 발표한 정규 6집 앨범. 김진표는 누가 뭐래도 한 때 국내에서 가장 독한 래퍼였다. 특히 패닉과 노바소닉 시절 김진표의 랩은 눈앞에 거슬리는 모든 것에 10톤짜리 헤머를 날릴 기세였다. 하지만 어느덧 30대 중반을 넘어선 김진표에게 이를 강요할 이유는 없다. 김진표의 ‘JP6'는 시간의 흐름과 함께 자연스럽게 변하는 아티스트의 음악적 취향과 세상에 대한 시선들이 고스란히 담긴 앨범이다. 김진표의 앨범 중 가장 팝스러운 앨범이기도 하고 노래하는 듯 랩을 하는 그의 랩 스킬이 가장 세련되게 표현된 앨범이기도 하다. 여전히 그의 랩은 유려하고 무엇보다도 솔직하고 귀에 잘 들린다. 대한민국 모든 래퍼들이 배워야할 것 중 하나다.
8. 조권 ‘암 다 원’(I’m Da One)
발라드 그룹 2AM이지만 조권의 첫 솔로는 댄스장르가 될 줄은 누구나 다 알았다. 하지만 조권은 한 발 더 나갔다. DJ 아비치(Avicii)가 참여한 ‘애니멀’(Animal)은 곡 자체의 세련된 형태 뿐 아니라 비주얼 쇼크를 보여주기 충분했다. 당분간 국내에서 ‘애니멀’을 넘는 파격적인 무대는 나오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또 레이디가가를 오마주한 듯한 킬힐을 신고 짐승을 조련하는 듯한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 있는 가수 역시 조권 외에는 아무도 없을 것 같다. 또 타이틀곡 ‘암 다 원’은 올해 발표된 국내 노래 중에 가장 영미권 팝에 가까운 노래였다. 실제로 이 노래는 영국의 떠오르는 작곡가 로렌 다이슨(Lauren Dyson)이 참여한 곡이다. 조권의 이 앨범이 실패한 원인이라면 너무 앞서갔다는 것 뿐이다.
9. 윤하 ‘슈퍼소닉’(Supersonic)
전 소속사와 분쟁으로 1년 6개월간 침묵했던 윤하의 정규 4집 앨범. 보컬리스트로서도 분명 탁월한 성장을 보여줬지만 무엇보다 스스로 곡을 써야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앨범의 수록된 12곡의 노래를 하나하나 직접 수집 했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윤하는 정성들여 선곡한 노래들로 최상의 결과물을 도출하는 방식을 습득하는 놀라운 성장을 이뤄냈다. 프로듀서로서 자신의 귀를 활찍 연 셈이다. 장르적으로는 다양하지만 전체를 보는 눈이 생긴 까닭에 앨범 전체의 전개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특히 ‘런’(Run) ‘셋 미 프리’(Set me free) ‘호프’(Hope) 등을 통해 보여준 자기고백은 '뮤지션은 무엇으로 스스로를 표현하는가'를 배운 듯 하기도 하다.
10. 보아 ‘온리 원’(Only one)
보아의 정규 7집 앨범 ‘온리 원’은 대한민국 아이돌의 스탠다드를 만들었던 보아가 ‘아이돌은 어떻게 아티스트가 되는가’를 가장 스탠다드하게 보여준 앨범이다. 데뷔 후 첫 자작곡 타이틀이라는 점 보다 더 주목해야 할 점은 앨범 전체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이다. 단순히 고마움만이 아닌 가끔은 두렵기도 한 팬들에 대한 솔직한 심정을 표현한 ‘더 쉐도우’(The Shadow)를 비롯해 인기의 공허함과 정상에 대한 불안함을 노래한 ‘더 탑’(The top), 진한 외로움의 정서로 가득한 ‘메이데이! 메이데이!’ 등 10여년 간 ‘아시아의 별’로 살아온 보아 내면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겼다. 진정성이 주는 감동이란 장르나 완성도와는 또 다른 문제다.
11. 장재인 ‘여름밤’
이제 갓 20대가 된 장재인이 스스로를 싱어송라이터라고 부르는 모습은 조금 민망했던 것이 사실이다. 김형석의 프로듀싱 아래 자작곡으로 채운 첫 앨범을 발표했을 때도 ‘이게 정말 온전히 장재인이 만든 앨범일까?’라는 의구심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김형석 작곡가의 품에서 떠나 혼자 과거이 과거 써놓았던 곡들을 모아 발표한 ‘여름밤’ 앨범을 만났을 때, 가능성 이상이 발견됐다는 점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타이틀곡 ‘여름밤’을 비롯해 수록된 ‘스텝(Step)’, ‘레이니 데이(Rainy Day)’, ‘굿 데이(Good bye)’ 등 5년 동안 여름에 작곡 작사해서 탄생 된 곡으로 채웠다는 식의 콘셉트 구성 역시 장재인의 욕심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12. 준세이어 ‘픽 앤 롤’(Pick n’ Roll)
준세이어는 공일오비의 기타리스트 장호일이 프로듀서 겸 가수 케이준과 함께 결성한 빈티지 록 밴드다. 장호일에게는 공일오비 외에 지니(신성우 장호일 이동규)를 제외한 첫 번째 외도다. 90년대 가장 감각적인 사운드를 만들어냈던 공일오비의 멤버가 70년대 록큰롤을 지향하는 팀을 결성한 것도 재미있지만 그 사운드의 질감과 멜로디는 귀가 번쩍 띌 만큼 세련되고 매끄럽다는 것도 놀랍다. 공일오비나 지니 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전면에 나서는 것은 케이준이라는 젊은 뮤지션이지만 이를 조련하는 장호일의 능력은 지금까지 그가 기존의 팀들에서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 분명하게 증명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이현우 기자 nobodyin@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