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정화(29)가 까르르 웃으며 말했다. 아닌 게 아니라 정말 예뻐졌다. 반짝이는 눈빛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인데, 강추위도 녹여버릴 온화함이 더해진 느낌이다.
최근 나눔 에세이 ‘안녕! 아그네스’를 발간하고 작가로 변신한 김정화를 만났다. 그녀는 여느 때와 같이 ‘나눔’을 나누느라 정신없는 연말을 보내고 있었다. 아름답다는 표현이 어울릴 법한 첫인상 얘기부터 꺼내자 김정화는 쑥스러운 미소와 함께 답했다.
“마음가짐이 달라져서 그런지 성격도 많이 외향적이고 긍정적이 됐고, 그런 변화가 얼굴에도 나오는 것 같아요. 요즘 좋은 얘기 많이 듣는 게, 아무래도 아그네스 관련 일이나 홍보대사 활동을 많이 하면서 제 마음이 좋아졌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아그네스(8)는 김정화가 3년 전부터 ‘엄마’를 자처하며 후원하고 있는 우간다 소녀. ‘안녕! 아그네스’는 김정화가 아그네스와의 특별한 만남을 통해 얻게 된 인생의 변화를 담은 책이다.
책에서 김정화는 아그네스와의 이야기를 풀어내기에 앞서, 12년 전 연예계 데뷔한 뒤 겪은 남모를 아픔에 대해 담담하게 털어놨다. 마치 오래 전 일기를 꺼내놓듯 가감 없는 솔직함은 놀라울 정도였다.
“아무래도 눈썹도 짙고 눈도 찢어진 편이라 외모적으로 각이 진 느낌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예전엔 정말 우울했었기 때문에 표정이나 행동도 그랬던 것 같고. 당시엔 잘 하지 않아도 잘 하는 것처럼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었거든요.”
한창 정신없었던 데뷔 초보다, 오히려 20대 초반이 김정화에겐 진정한 ‘질풍노도의 시기’였다. “고등학교 때 데뷔했는데, 몸은 성장했는데 마음은 그 자리에 있었던 것 같아요. 데뷔한 지 3~4년쯤 지나던 어느 순간부턴가. 사인 요청도, 사진 찍히는 것도 모든 게 문득 부담스럽게 느껴졌죠. 그러다보니 더 우울하고 예민해진 것 같아요.”
김정화의 자기고백은 의외로 길게 이어졌다. “그 땐 생각이 어렸고, 제 주관이 없었어요. 대인관계도 잘 못 했었고. 제일 중요한 건 나에 대해 잘 몰랐었어요. 내가 무슨 색을 좋아하는지, 뭘 좋아하는지도 모르겠고. 나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거죠. 배우라면 자기만의 색이 있어야 하는데, 나는 무슨 색일까 생각하면서 회의감도 많이 들었고요.”
활동 연차가 쌓일수록 ‘인간 김정화’는 점차 사라지고 ‘연예인 김정화’만 남는 것 같았다는 그녀. 한창 왕성하게 활동할 시기임에도 오히려 점점 움츠러들었다. 언제부터였을까. 꽤나 깊어진 우울증에 김정화는 잠시 활동을 중단하기도 했다.
“부족한 점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예전에는 제 고집이 좀 센 편이었어요. 한 5년 넘게, 제 생각 위주로 살아왔던 것 같아요. 그러다 슬럼프가 왔고, 활동을 중단했죠. 그러다 매니저 언니의 권유로 공연을 하게 됐는데, 무대에선 단점이 다 드러나게 되잖아요. 부족한 걸 인정하고 배우겠다는 자세로 마음을 바꾸면서 다른 사람의 얘기를 비로소 수용하게 됐고, 그 덕분에 많이 달라졌어요.”
한 때 “결혼을 빨리 하고 은퇴하겠다”는 생각까지 했었다지만 거듭된 무대를 통해 연기의 참 맛을 알게 된, 그리고 아그네스와의 만남을 통해 나눔의 기쁨을 알게 된 김정화의 지금 마음가짐은 어쩌면 신인 때보다도 더 활기차다.
“처음 뮤지컬을 하면서 노래도 못 하고 춤도 잘 못 추는 게 고민이었는데, 그래도 제가 좋아하니까. 더 열심히 노력할 수 있고, 그러다 보면 잘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됐어요. 지금은요? 물론 좋죠. 즐겁고, 즐기면서 하고 있으니까요.”
유난히 큰 눈 탓에 강한 인상을 주기도 하지만 실제 김정화는 여린 면이 많았다. “사실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다는 얘기 많이 들어요. 무표정하면 무섭다 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저 마음도 여리고 의외로 눈물이 많아요. 어렸을 땐 ‘울면 안 된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이제는 슬프면 울기도 하고 점점 감정 표현에 솔직해져가는 것 같아요. 아그네스를 만난 지 3년이 지난 지금도 얘기하면서 눈물이 나는걸요.”
인터뷰 내내 아그네스 이야기로 웃음꽃을 피웠지만 밝은 미소 한편 간간이 김정화의 큰 눈은 그렁그렁 빛났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박세연 기자 psyon@mk.co.kr/사진 강영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