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부녀인 사실이 탄로나 내쫓겨진 여직공 판틴(앤 해서웨이)은 “자신이 잘못되면 어린 딸 코제트를 돌봐줄 사람이 없다”며 읍소한다. 돈을 벌기 위해 몸을 팔지만 가난이 쉽게 해결될 리 없는 그의 간절한 노래가 안타깝기 그지없다.
노랫말 같은 대사를 읊고, 음악은 하나가 된다. 뮤지컬이라는 장르의 매력이다. 때론 톡톡 튀는 리듬이 몸을 들썩이게 하기도 하고, 웅장하고 비장한 노래에 가슴이 뭉클해지기도 한다. 현장의 감동을 말로 표현하기는 쉽지 않을 정도다.
휴 잭맨, 앤 해서웨이 등 ‘레미제라블’의 주인공들 노래에 흠뻑 빠져 무대 위에서 펼쳐지고 있는 공연인줄 알았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스크린에서 전해져 오는 감동이다.
영화를 향한 기대감은 극 초반부터 이어진다. 재소자들이 휘몰아치는 바닷물에 맞서 수리할 배를 뭍으로 끌어내는 장면부터 거대한 스케일을 예상할 수 있다.
‘킹스 스피치’로 아카데미 시상식 4관왕을 차지한 톰 후퍼 감독은 ‘오페라의 유령’, ‘캣츠’, ‘미스 사이공’과 함께 세계 4대 뮤지컬로 손꼽히는 ‘레미제라블’의 감동과 재미를 스크린에 온전히 구현해 냈다. 유명 뮤지컬 프로듀서 카메론 매킨토시도 힘을 실어 믿고 볼 수 있다.
후퍼 감독은 대중 공포증을 가진 말더듬이 왕이 수많은 사람 앞에 떳떳하게 나서는 과정을 감동적으로 담아낸 것처럼 프랑스혁명 직후를 배경으로 당시의 혼란스러운 시대와 상황, 주인공의 이야기들을 섬세하게 담아냈다.
프랑스 빅토르 위고 작가의 ‘레미제라블’은 1980년 프랑스에서 초연된 이래 전세계 42개국 308개 도시에서 21개 국어로 공연됐다. 한국에서도 초연 공연이 진행되고 있는 작품이다.
특히 휴 잭맨의 매력이 시종 철철 넘친다. 고난과 역경의 세월 속에 녹아든 장발장은 새로운 모습이다. 왜 이제야 휴 잭맨의 또 다른 모습을 알게 됐을까 하는 관객이 많을 것 같다. 하지만 휴 잭맨은 지난 2004년 뮤지컬 ‘오즈에서 온 소년’으로 토니상 뮤지컬 부문 남우주연상을 받은 바 있다. ‘레미제라블’은 그의 실력을 믿고 감상해도 될 영화라는 말이다.
비극적인 여성을 맡아 실제 삭발 투혼을 발휘하고 11㎏까지 감량한 앤 해서웨이는 사랑에 상처 받고 홀로 아이를 키운 여성의 감정을 솔로 부분에서 폭발시킨다. 사랑을 향한 경외감을 느끼게 만든다.
한 번 죄인은 영원한 죄인이라고 믿는 가혹한 형사 자베르(러셀 크로우)는 장발장과 적대적인 대치로 긴장감을 극대화하는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무자비한 자신과 다르게 자비를 베푸는 장발장으로 혼란에 빠진 그의 고뇌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각자의 사연이 녹아있는 배우들과 그들의 이야기에 홀딱 반해 감상할 수밖에 없다. 현장에서 라이브 녹음한 덕인지 배우들의 감정 섞인 연기에 엄지가 자연스럽게 올라간다. 다만 러셀 크로우의 톤이 다른 배우들과 불협화음을 내는 것 같아 이따금 몰입을 방해한다.
158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의 압박이 있지만 후퍼 감독은 지루하다 싶을 때쯤 주인공들과 그들의 이야기를 전환시키는 지점을 둬 흥미를 잃지 않게 노력했다. 12세 이상 관람가. 19일 개봉.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현철 기자 jeigun@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