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의 주연배우로 나선 그는 2008년부터 이 작품에 함께 했다. ‘26년’은 석연치 않은 이유로 투자가 철회돼 몇 차례 제작이 중단됐던 작품.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달리 하차하지 않고 끝까지 남아 있었다. 다른 작품들에 참여하면서도 틈틈이 이 영화에 신경을 썼다. 비록 배역은 김주안에서 곽진배로 바뀌었지만 그는 온전히 자신의 신념과 행동을 연기를 통해 보여줬다. 다행스럽게도 진배가 그에게 딱 맞아 떨어지는 배역 같이 느껴진다.
진구는 흥행 숫자를 좋아할 법도 한데 티가 나지 않았다. 무미건조(?)하다고 해야 할까. 그 이유를 묻자 진구는 “안 믿겨져야 한다고 해야 하나”라고 반문하며 “내 앞에서 세 번이나 무산 되어서 인지 와 닿지 않는다. 언젠가 한방에 무너질 것 같은 불안이 아직도 있다”고 했다. “좋은 결과로 끝나든, 나쁜 결과로 끝나든 극장에서 내려와야 이 영화가 내게 무엇을 줬는데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속 시원하게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세 번의 제작 무산이 제게 불신을 준 거죠. 솔직히 ‘26년’이라는 작품이 물거품처럼 없어져 버릴 것 같았어요.”
어쩌면 그래서 진구가 더 ‘26년’에 잘 녹아들었는지 모르겠다. ‘26년’은 1980년 5월 광주의 비극과 연관된 조직폭력배, 국가대표 사격선수, 현직 경찰, 대기업 총수, 사설 경호업체 실장이 26년 후 바로 그날, 학살의 주범인 ‘그 사람’을 단죄하기 위해 작전을 펼치는 액션 복수극. 진구는 조직폭력배 진배를 연기했다. 극 전반을 아우르는 중심인물이다. 하지만 진구는 주요배역인지 모르고 촬영을 했단다.
“배우들이 따로따로 촬영한 신이 많아요. 그래서 몰랐죠. 그런데 미리 알고 있었다면 오버했을 거예요. 그래서인지 ‘이 신만큼은 살려야 해’라는 것도 없었죠. 늘 했던 대로 연기했어요. 장광 선배님과 친하니깐 호흡이 잘 맞았고, (한)혜진이와도 친하니 우스갯소리도 하고, 엄마로 나온 (이)미도와도 친하니 따뜻하게 안아 줄 수 있었죠. 제가 잘한 것보다 다른 배우들이 다 연기를 잘해 영화를 살려준 거죠.”(웃음)
진구는 또 “관객을 울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면 영화의 균형이 깨졌을 것”이라며 “어찌 배우가 그런 상황을 당해보지 않고 100%를 표현하겠는가. 아무리 표현해도 부족할 것이다. 하지만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으로 참여했다”고 덧붙였다.
진구는 제작 투자에 직접 참여한 회원들과 만난 두레 시사회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말보다 관객들이 표정이 기억난다. 3열인가 4열에 앉아 계신 분인데 엉엉하고 우시더라”며 “우리를 연예인으로 받아준 게 아니라 일종의 동지로 따뜻하게 맞이해 주시더라”고 기억했다. 또 “제주도에서 관객과의 대화를 하면서는 관객들 앞에서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다”고 고백했다. “엄마 표정으로 ‘내 아들 고생했어’라는 느낌이었어요. ‘곽진배 역할을 맡았습니다’라고 첫 인사를 하고 어떻게 이 작품에 참여했는지 등에 대해 얘기하는데 목이 턱 막혀 버려 말을 잇지 못하고 울었어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처음이었죠.”
많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진구는 부상 투혼도 발휘했다. ‘그 사람’의 집 앞에서 경찰과 대치하는 신을 촬영할 때다. 초반 촬영이라 호흡이 맞지 않아 부상을 입었다. 그럼에도 몇 차례 촬영이 반복됐고, 진구는 부상에 이어 무더운 날씨 탓으로 호흡 곤란이 와 탈진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별것 아니라는 듯 말하며 “오히려 정신은 행복하고 맑았다”고 웃어 넘겼다.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일 가운데 먼 것도 아니고 아주 가까운 역사인데 사람들이 벌써 잊으려고 하면 안 되는 것 같아요. 꼭 총을 맞고, 칼을 맞아야 하는 것만 아픔이 아니잖아요. 마음 속 아픔이 더 아플 수도 있죠. 남겨진 분들이 얼마나 더 아플까요?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잊지 말고 기억했으면 하는 바람이 아직도 전 너무 커요.”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현철 기자 jeigun@mk.co.kr/ 사진 강영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