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다시 이 영화의 제작이 재개된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당초 참여하기로 했던 이들이 한두 명씩 모여들었다. 2008년부터 함께 하기로 했던 배우 진구를 비롯해 단역과 보조 출연자들, 스태프 몇 명이 제작사 청어람과 뜻을 같이 했다.
조근현(44) 감독도 그 중 한 명이었다. 영화 ‘후궁: 제왕의 첩’, ‘마이웨이’, ‘형사 Duelist’ 등을 통해 미술감독으로 더 유명한 조 감독은 연출자로 이 프로젝트를 마무리할 책임을 안게 됐다.
“올 초 다시 한 번 제작이 무산됐을 때 최용배 대표님이 ‘예산이 더 줄어들 거다. 그럼에도 난 다시 갈 거다. 예산에 맞게 미술 설정을 바꿔보라’고 하셨어요. 미술 설정을 비롯해 시나리오를 각색해 드렸는데 제가 연출을 이해하고 있다는 판단을 하신 것 같아요. ‘시나리오를 쓴 적이 있냐?’고 물으셨고 몇 편을 보여드렸는데 그 때 결심을 하셨던 것 같아요.”
선뜻 나서서 이 ‘문제작’을 연출할 사람이 없어 조 감독이 대타로 뛴 건 아니라는 설명도 했다. 몇몇 감독이 연출 의사를 표했지만 시간·금전 등 다른 이유들 때문에 합류하지 못했다.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라고 하는데, 그 때문에 연출에 처음 도전하는 조 감독을 향한 시선이 곱지 않은 면도 있다. 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는다. 오히려 7월 촬영을 시작한 영화가 11월 말 개봉을 맞추기 수월했다. 미술적인 부분을 직접 컨트롤할 수 있고 빠른 시간에 표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시선보다 어려웠던 건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고 했다. 물론 “내 인생에 새로운 장이 열리는데 왜 욕심이 없었겠느냐”고 반문한 그는 “보란 듯이 미끈한 영상을 만들어 보고 싶긴 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어떤 누군가에게 잘 보이자’는 생각을 바로 접었어요. 15세 이상의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이해하고 공감하며, 어떤 식으로든 감정이 폭발되면 좋겠다고 바랐죠. ‘이 영화가 여기서 막히면 만들어질 수 없을 것 같다. 제작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라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는 “영화를 통해 ‘설명하지 말자, 가르치려고 하지 말자’라는 생각이었고, ‘왜 눈물이 나는지, 왜 화가 나는지’ 이유를 알 수 없게 만들고 싶었다”며 “그런 감정을 느끼면 강풀 작가의 원작을 보든지, 5·18 관련 자료를 찾아보든지, ‘그 사람’에 관해서 찾아볼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평론가의 말처럼 영화의 빈곳을 스스로 채워가길 바라기도 했다”고 말했다. 또 “이제껏 강풀 작가의 만화도 호불호가 강한 게 꽤 있었는데 나 역시 그런 반응을 피하려고 애쓰지 않았다”며 “결말도 시원하게 해결하고픈 욕망이 있었지만 지금이 가장 나은 판단”이라고 덧붙였다.
조 감독은 극 초반 애니메이션을 사용한 이유에 대해서도 털어놓았다. 미술 감독 출신이니 충분히 실사로도 구현할 수 있지 않았느냐고 하니 조 감독은 예산 문제를 먼저 꼽은 뒤, 자신의 생각을 덧붙인다. “어디서 본 듯한 인물들이 아파하고 공포를 느끼는 것처럼 연기를 해야 하는데, 결코 관객들에게 그와 관련한 감정이 와 닿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또 그렇게 하는 건 진짜 자신이 없었다”고 고백했다.
서울의 한 극장에서 두레 시사회를 했을 때의 기억도 공유했다. “아팠던 일이라고 할까요? 한 두레 회원 분이 열 살짜리 아들을 데리고 영화를 보러 왔는데 5분 만에 뛰어 나가 버렸어요. 극중 정혁(임슬옹) 누나의 창자나 터져 나오는 애니메이션 장면이었죠. 그 분 아들이 ‘만화만 봐도 무서운데 실제 겪었던 사람은 어땠을까’라며 힘들어했대요. 아픈 기억이죠.”
그는 ‘26년’을 상업영화라고 불러야 하는 게 맞느냐고 하니 고민을 거듭하고 입을 열었다. “나중에 많은 관객들이 보게 되면 상품으로서 가치가 있던 것이니 당연히 상업영화일 것”이란다. 또 “제작의도와 기획에 정치적인 부분이 들어가 있을 테니 정치영화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과거의 그 참사는 누가 봐도 잘못된 일이고, 그 일과 관련해 법집행도 받았는데 유야무야됐다는 사실”이라며 “영화 같은 매체도 일종의 권력인데 약자 편에 서는 게 맞는 것 아니겠느냐”고 강조했다. 그는 강자 반대 편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했다.
“배우들이 ‘떳떳한 영화에 참여해서 사람들을 만나는 게 당당해졌다’고 서슴없이 말하더라고요. 저도 첫 작품이라 부담은 한도 끝도 없는데, 또 한편으로 끝없는 고마움을 느끼죠. 이제 저를 바라보는 시선이 있겠죠. 아마 가벼운 코미디 영화조차 할 수 없을지 몰라요. 하지만 이 영화가 제 인생에 좋은 영향을 미치게 될 건 확실해요. 저한테도 그게 맞는 것 같고요.”(웃음)
이 영화에서 이름은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지만 누구다 다 아는, 전임 대통령. 그는 이 영화를 봤을까, 혹은 볼 거라고 생각할까?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 비웃고 있을 것 같아요. 아닌가? 관심도 없지 않을까 하네요. 다 가져봤던 사람이고, 오랫동안 많은 걸 누려왔던 사람이니까요.”
사실 그가 처음 영화에 뛰어든 건 집안 사정이 좋지 못해 돈을 벌기 위한 것이었다. 단기 아르바이트 개념으로 시작했지만 재미를 느꼈다. 서울대 서양화학과 출신인 그는 미술파트를 담당하며 현장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강의도 나가면서 학생들을 가르치다보니 연출과 시스템에 대해서도 알게 됐다. 또 사람들을 만나 소통한 과정들도 배웠으니, 이번 영화 연출에서 알게 모르게 많은 부분이 녹아 들어갔음에 틀림없다.
그는 “솔직히 연출에 욕심이 있었다면 지금쯤 흔히 말하는 영업을 하고 다녔을 테지만 나는 향후 진로조차 고민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아직은 허투루 다른 것에 신경 쓰고 싶지 않다는 생각 때문이다. “26년의 제작 전반을 겪고 나서 추후 생각해 볼 것”이다. 흥행을 향한 욕심이라기보다 일종의 어떤 사명감이다.
한편 ‘26년’은 1980년 5월 광주의 비극과 연관된 조직폭력배, 국가대표 사격선수, 현직 경찰, 대기업 총수, 사설 경호업체 실장이 26년 후 바로 그날, 학살의 주범인 ‘그 사람’을 단죄하기 위해 작전을 펼치는 액션 복수극이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현철 기자 jeigun@mk.co.kr/ 사진 강영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