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김주안의 모습만 생각했을까. 현실 속 배우 배수빈(36)에게서 주안을 떠올리긴 쉽지 않았다. 선하고, 부드럽고 젠틀한 이미지가 강했다. 하지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주안의 감정과 생각, 행동들이 슬며시 전해져 온다.
1980년 5월 광주 학살의 피해자들이 주범인 ‘그 사람’을 단죄하기 위해 작전을 펼치는 액션 복수극을 다룬 ‘26년’은 개봉한 지 1주일도 되지 않았는데 관객 100만명을 넘어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관객들이 이 영화를 보고 싶어 했다는 다른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배수빈은 이런 반응을 예상했을까. “약간은 예상했는데 이렇게까지 영화를 많이 보고 싶어 하는지는 몰랐어요. 저도 보고 싶긴 했지만요.”(웃음)
촬영 넉 달 전이 되어서야 비로소 합류한 배수빈은 조금은 다행이라는 듯 웃었다. “4년 전에는 이런 영화가 있는 지도 몰랐으니깐 그때 만들어졌다면 저는 참여하지 못했겠죠. 다행이에요(웃음). 물론 그 때 제작이 잘 돼 만들어졌어도 비슷한 반응이지 않았을까 싶네요.”
가장 늦게 합류하고, 또 배수빈이 맡은 김주안은 익히 알려진 대로 진구가 당초 맡기로 했었던 역할이다. 후배가 하려던 역할을 맡게 되니 체면 구기고 자존심이 상할 법도 한 거 아니냐고 하니 “아니, 왜요?”라는 답이 돌아온다. “전혀 문제가 없었다”고 강조한다. “최선을 다해 연기했다. 후회는 없다”는 말도 덧붙인다.
그는 “원작 만화가 무겁기는 했지만 재밌고 흥미로운 이야기여서 참여했다”며 “영화가 만들어진 실사를 보니깐 원작보다 더 크게 다가오더라”고 가슴 벅차했다. 이어 “너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부담은 됐었다. 하지만 ‘내가 어디까지 표현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잘 해보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참여하길 잘한 것 같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거칠지만 밉지 않은 행동대장 진배를 연기한 진구를 칭찬했다. “예전부터 친하게 지냈는데 진배와 진구는 정말 차이가 없어요. 평상시 진배처럼 사투리를 안 쓴다는 차이 정도일 뿐이죠. 진구의 개구쟁이 같은 모습이나 천진난만함, 마초 같은 느낌, 또 에너지 넘치는 느낌 등의 장점들이 진배에 고스란히 녹아 들어있죠.”
자신보다 진구와 한혜진, 임슬옹 등 다른 배우들의 칭찬을 더 많이 한 그지만 배수빈 역시 영화의 한축을 제대로 지탱한다. 극중 5·18 때 부모를 잃고 당시 계엄군이었던 김갑세(이경영)가 주안을 키웠다. 주안은 오랜 기간 복수를 꿈꿨고, 실행에 옮겼다. 주안이 그 사람을 향해 울부짖는 장면은 울컥하다. 다시 한 번 이 이야기가 실제 있었던 가슴 아픈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만든다.
생각해보면 배수빈은 최근 진중하고 진지한 역할을 많이 했다. 돈이 되는 작품보다 깊이 있는 작품을 일부러 찾아서 연기하는 이미지도 있다. 영화 ‘백자의 사람: 조선의 흙이 되다’도 그렇고, ‘마이 라띠마’도 도전 정신이 더 크게 작용하는 작품이다. ‘26년’ 역시 마찬가지다.
배수빈은 “흥행성을 보기보다 오래 기억에 남고 싶은 작품을 선택하는 편”이라며 “그런 선택은 내 생각이 많이 반영이 된다. 이번 ‘26년’은 대중적인 것과 의식 반영이라는 중간 지점이 잘 맞아떨어진 작품 같다”고 좋아했다.
물론 자신의 생각을 관철 시킬 수 있으려면 어느 정도의 인지도가 필요했다. 다양한 작품에 열심히 참여한 덕에 현재의 위치가 됐다. “이제는 조금씩 나의 이야기를 해봐도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조금씩 사람들에게 친숙한 작품을 하고 있다”고 웃었다.
영화를 보고 자신도 눈물을 왈칵 쏟아냈다는 배수빈은 “제작두레 시사로 전남 광주에 갔는데 그곳에서 ‘감사하다’, ‘고맙다’고 한 관객들의 말이 정말 기억에 남는다”며 “관객들과의 만남이 정말 새로웠다. 뿌듯했다”고 전했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현철 기자 jeigun@mk.co.kr/ 사진 강영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