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변하는 세상만큼 개그 코드도 달라지기 마련. 그 중에서도 눈에 띄게 달라진 점은 ‘풍자’를 전면에 내세운 코미디를 예전에 비해 쉽게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이다. 대선을 앞두고 캐릭터로 승부하고 있는 tvN ‘SNL코리아-여의도 텔레토비’가 거의 유일무이한 풍자 코미디류다.
코미디의 전유물이자 일종의 책무이기도 한 ‘풍자’ 코미디가 비록 TV에서는 사라졌지만, 그 명맥은 놀랍게도 매일 저녁, 그것도 10년 넘게 라디오에서 계속되고 있었다.
MBC 표준FM ‘최양락의 재미있는 라디오’는 DJ 최양락을 비롯해 배칠수, 전영미, 안윤상 등 성대모사의 달인들이 전, 현직 대통령을 비롯해 다수의 정치인들을 패러디 해 매일 애청자들에게 큰 웃음을 주고 있다. 연일 터지는 사건 사고는 물론, 정치·경제·사회 분야의 이슈를 다양한 코너를 통해 깨알 같이 전하고 있다.
10년 동안 ‘재미있는 라디오’를 지켜온 공로를 인정받아 MBC가 수여하는 브론즈마우스의 주인공이 된 최양락은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MBC방송센터에서 진행된 시상식 후 취재진과 만나 지난 10년간의 소회와 함께 코미디의 정치 사회 풍자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처음 DJ 맡았을 때 길어야 1년 갈 거라 예상했던 분들도 계셨는데, 어느새 10년이 됐네요.”
2002년 4월 처음 ‘최양락의 재미있는 라디오’ 진행석에 앉았으니 10년 하고도 7개월이나 지났다. 요즘 같은 추세라면 강산이 한 번 바뀌고도 한참 달라졌을 세상. 그는 “10년이 어렵지 20년은 금방 갈 것”이라며 파이팅을 다짐했다.
무엇보다 ‘재미있는 라디오’는 ‘대충토론’ ‘대통퀴즈’ 등의 코너에서 현직 대통령을 ‘MB’로 지칭하며 풍자하는 에피소드가 종종 등장해 청취자들의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전, 현직 대통령의 캐릭터를 성대모사를 통해 표현하고 그들의 치부를 간접적으로 꼬집어내는 것은 현재 방송 중인 여느 프로그램과도 차별화된, ‘재미있는 라디오’만이 지닌 경쟁력이기도 하다. 하지만 속 시원한 풍자 한편 ‘괜찮을까’ 싶은 우려가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최양락은 여유로웠다.
“풍자라는 건, 그렇게 생각해요. 그러니까 집권당, 현재 집권당은 새누리당이고 이명박 대통령이신데, 풍자의 주 대상은 집권당이면서 대통령일 수 밖에 없는 거죠. 그게 풍자겠죠. 간혹 ‘너무 까는 것 아니냐’ ‘너무 야당 쪽 아니냐’는 반응도 나오지만, 5년 전, 현재의 야당이 집권당일 때도 똑같았습니다. 너무 노무현 전 대통령을 까는 게 아니냐는 얘기도 나왔었죠. 물론 그렇다고 무조건 야당인 것도 아닙니다. 잘못된 것에 대해, 그날 그 날의 뉴스를 바탕으로 하고 있죠.”
최양락의 정치풍자 역사는 2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1년 MBC 개그 콘테스트 대상을 수상하며 코미디에 입문한 최양락은 ‘유머1번지’, ‘쇼비디오자키’ 등의 프로그램에서 왕성하게 활약했다. 능청스러운 입담과 콩트 연기 그리고 그 가운데 있던 풍자 코드는 당시로선 꽤 신선한 충격이었다.
“87년도, 노태우 대통령이 ‘나 보통사람입니다’ ‘너를 코미디로 다뤄도 좋습니다’고 하신 다음부터 코미디에서 (풍자가) 가능해졌죠. 5공 때만 해도 ‘대머리’ ‘주걱턱’이라는 표현을 공공연히 쓸 수 없었어요. 못 하게 하는 게 너무 많았죠. 방송국 국장이 검열 나오던 그런 시절이었는데, 노태우 대통령의 공약 이후 기회가 온 겁니다. 기회를 놓치면 안 됐죠.”
이는 ‘네로25시’ ‘동작 그만’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 등이 세상에 나오게 된 드라마틱한 계기가 됐다. 어쩌면 우리나라 정치 풍자 코미디 역사의 시작이었다.
“그렇게 무서운 시기에 (풍자)하는 것에 사람들이 얼마나 짜릿했겠어요. 그런데 요즘은 인터넷을 통해서 직접 불만 표출을 할 수 있으니 오히려 방송의 수위는 의외로 낮아지는 것이고, 그렇다보면 시청자 입장에서도 짜릿하기 어렵겠죠. 어정쩡하면 욕 먹으니까 자신이 없어지는 것도 있을 것이고요. TV 매체는 시간차를 극복하기 쉽지 않은데 우리는 라디오라는 점에서 아무래도 유리하지요.”
대선이 3주 밖에 남지 않은 상황. ‘재미있는 라디오’ 안에는 언제나 같은 편안한 웃음 가운데서도 미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대충토론’ 코너에도 종종 등장하던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를 비롯해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가 지금은 출연 금지(?) 기간이기 때문.
“하하. 지금 입이 근질근질합니다. 박근혜 후보 그리고 문재인 후보. 다 (성대모사) 되거든요. 라인업은 되는데, 선거운동 기간에는 성대모사도 못 하는 규정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못 하고 있는데, 19일 개표 이후엔 실컷 할 겁니다. 곧바로 20일 방송부터 등장할 거고요. 떨어진 분, 당선된 분 모두 나오실 겁니다.”
TV가 아니면 어떠랴. 2000년대 초, 인터넷의 발전과 절묘하게 발걸음을 함께 한 이 ‘재미있는 라디오’를 통해 여전히 큰 웃음을 주고 있는 그는 “코미디가 발전해야 그 나라가 발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오랜 시간 솔잎을 먹고 사는 송충이의 언중유골이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박세연 기자 psyon@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