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한국 영화는 외국에서도 어깨를 나란히 한다. 해외에서 수상도 많이 하고, 배우들의 진출도 활발해졌다. 하지만 현실에 안주하는 삶은 발전이 없다. 과거와 현실을 곱씹어 본다면 나은 미래가 기다리지 않을까.
영화 ‘영화판’은 ‘부러진 화살’의 정지영 감독과 배우 윤진서의 한국영화 기행을 담았다. 두 사람은 인터뷰어로 나서 우리나라에서 내로라하는 영화인들 100여명을 만나 영화 이야기를 듣는다. 임권택, 박찬욱, 봉준호, 임순례, 변영주, 이창동 등의 감독들부터 안성기, 박중훈, 강수연, 최민식, 김혜수, 문소리, 김아중 등이 망라됐다.
이들을 만나는 것에 안주하지 않는다. 미래를 위한 답을 구하고자 한다. 영화계 일을 꿈꾸는 이들이나 관계자들에게 무척이나 흥미로운 소재이자 내용 전개다. 물론 일반 대중도 이들의 과거 이야기에 꽤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여성으로서 한국영화에 참여한다는 것에 대해 여성 감독들과 배우들의 허심탄회한 이야기도 듣는다. 윤진서는 “어느 분한테 격정 멜로는 젖꽂지 정도는 나야와 한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 때 가장 암울했고 잠깐 오해도 했었다. 너무 힘들었다. 그 사람 때문에 모든 자의식을 잃어버리고 배우로서 너무 힘들었다. ‘내가 왜 배우를 하고 있지?’라는 생각도 들었다”고 고백한다.
김혜수는 “20대 때 아무리 좋은 작품이 들어와도 노출 있는 건 안 했다. ‘왜 배우가 노출해야 연기가 느나?’라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1960~70년대 군부독재시절 검열과 그에 반해 만들어진 영화들, 과거 충무로에 개입된 조직 폭력배들, 할리우드 직배 시스템이 도입된 이후 한국영화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스크린쿼터 운동, 거대 자본의 영화 시장 진출, 영화계 신구 갈등 문제까지 다양한 부분을 짚었다.
박중훈은 “80년대만 해도 영화 제작부 쪽에는 깡패가 실제 있었다”며 “나는 납치까지는 아니었는데 감금된 적은 있다”고 고백했다.
정 감독은 한국의 노장 감독으로서의 고민에 대해서도 털어놓는다. “예전에는 가만히 있어도 작품 해달라고 여기저기서 말했는데 지금은 열심히 다녀도 별로 반응을 안 보인다”며 “자본이 권력이라면 그 권력과 만나는 지점이 점점 더 멀어졌다”고 토로했다. 그의 최신작 ‘부러진 화살’이나 ‘남영동 1985’ 같이 대기업에 도움을 받지 못하고 만든 영화들이 생각날 수밖에 없다.
대기업 자본의 무서움에 대해서도 놓치지 않는다. 강우석 감독은 “자본의 할큄이 들어왔다”는 표현을 썼고, 이창동 감독은 “대기업 자본이 들어오면서 시장에서의 압박이나 요구가 더 강해졌다. 투자심사를 하는데 정치적 검열이 아닌 상업적 검열을 받는다”고 짚었다.
다큐멘터리를 연출했고 영상연출을 강의하는 허철 감독이 정 감독과 윤진서와 동행했다. 12월6일 개봉 예정.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현철 기자 jeigun@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