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 그냥 편하게 살아요.”
김장훈이 최근 주변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들은 말이다. 공연, 기부, 독도, 환경, 위안부 김장훈은 좀 처럼 편히 있지를 못한다. 김장훈이 자신의 12월 20일부터 25일까지 4만명 규모의 ‘완타치-아듀’ 공연 이후 내년 4월 한국을 3년간 떠나겠다는 선언 역시 김장훈 그대로다. 왕성하다는 표현이 부족할 만큼 활동이 많은 그의 가장 큰 문제(?)는 지나치게 사람을 좋아하고 믿는다는 것. 그것은 곧바로 김장훈의 역사적인 커리어가 됐다. 그가 중국에서 환경운동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도 투어를 할 수 있게 된 것도 순전히 사람에 대한 믿음과 정(情) 때문이었다.
“5년 전 처음 중국 관계자들이 내 공연을 보고 나를 만나러 왔을 때 나는 그들을 친구로 대했다. 그리고 매해 그들은 내게 중국에서 뭘 하고 싶냐고 물었다. 나는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다고 답했다. 중국의 후난성 방송사 연출 감독을 시켜준다고도 했고, 중국 연예계에 진출을 돕겠다며 방송에 마음껏 출연을 시켜준다고도 했다. 하지만 모두 거절했다. 난 돈도 명예도 인기도 필요 없다고 했다. 나는 그들에게 친구고 싶었던 거다. 5년 째 진짜 원하는 게 없냐고 해서 중국에서 내 공연을 딱 3번만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중국 투어는 그렇게 진행됐다. 5년간 쌓은 인간적인 신뢰만으로 성사시킨 공연이다. 늘 모두가 행복한 결과만 있는 건 아니었다. 올해 유난히 그에게 부침이 많았음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하지만 어쩌면 모두 그가 자초한 일 아닌가.
“김현식씨가 세상을 떠나기 전, 그와 함께 생활을 하면서도 나는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이미 전설인데, 누구보다도 행복한 가정도 있고, 편히 노래할 수 있을 텐데 왜 저 형은 저리 방황하는 걸까, 납득이 되지 않았다. 이제는 이해가 된다. 그건 타고난, 사람의 힘으로 바꿀 수 없는 심성인가보다. 보통 사람들이 쉬 지나치는 걸 지나치지 못하는 거고, 어쩌면 보통사람들이 바라보고 있는 행복을 놓치고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김장훈도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결혼도 생각해보고 입양을 심각하게 고려해 본적도 있다.
“상처를 아무리 입더라도 바꿀 수는 없는 것 같다. 사람들은 세상 화원 속에서 조금씩 무뎌짐이라는 항체가 생겨나는 것 같던데 나는 항체가 안 생길까. 얼마 전에 SNS에 누군가 나를 조용히 응원하는 사람이라고, 내 노래로 젊은 날을 이겨냈다고, 조금만 내려놓고 기대를 덜하면 좋지 않겠냐고 글을 남겼는데, 눈물이 나더라. 내게 상처를 주는 것도 사람이지만 희망을 주는 것도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노래를 하는 거고 할 수 있는 거다.”
김장훈은 당분간 국내에서는 볼 수 없게 될 오는 연말 공연에 그런 희망을 담았다.
“총 3부로 구성했다. 1부는 기타치고 피아노 치면서 가장 미니멀한 형태의,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김장훈의 모습을 보여줄 거다. 2부에서는 잘 알려진 곡들과 내 공연 특유의 에너지 넘치는 모습을, 3부에선 내 연출의 끝을 보여줄 생각이다. 관객 한 가운데 중앙무대에서 한명 한명 천천히 보며 해보고 싶은 것과,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할 거다.”
김장훈은 공자의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朝聞道 夕死可矣)는 말을 빌어 “노래를 한번 제대로 할 수 있다면 죽어도 좋다”고 말했다. 노래할 수 있다는 희망, 자신의 목소리가 감동 속에서 울려 퍼지는 순간 사람들의 눈빛을 볼수 있다는 희망이 그를 이끌고 있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이현우 기자 nobodyin@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