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즈, 핑크플로이드 같은 밴드들은 꼭 더블 앨범을 내잖아요. 당연히 로망이었죠. 전후좌우 생각안하고, 한번쯤은 그 로망을 실현해 보고 싶은 거 아니겠어요? 사실 회사에서 반대할 수도 있겠다 생각을 했어요. 오히려 응원을 해주더라고요. 해봐라.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봐라.”
거창한 의미는 담지 않았다. 무거운 주제의식 같은 건 없다. 하지만 하나의 테마는 분명 존재한다. 이지형, 그만의 얼룩진 20대가 이 앨범을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다.
“다른 누구의 20대도 아니고 그냥 제 20대에요. 애써 말을 안 했던, 그동안 꼭꼭 감추기만 바빴던, 불편하고 무서웠던 감정들을 담았어요. 예전 일기장도 뒤적여 보고, 그 시간 그 감정들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며 그대로 복원하고 싶었던 거죠. 시간이 지났으니 어느정도는 퇴색되고 또 어느 정도는 미화됐을 수도 있지만 최대한 그 순간들을 재생해 보려고 노력했어요. 마끼아또라는 말이 ’얼룩진’이라는 뜻이 거든요. 얼룩진 제 청춘인 거죠.”
편의상 첫 번째 장을 ‘청춘’으로 두 번째 장을 ‘마끼아또’로 정했다. 장르적으로는 ‘청춘’이 좀 더 밴드사운드에 가까운 ‘마끼아또’는 어쿠스틱 사운드에 가까운 노래들로 추려져 있다. 그가 돌아 본 자신의 20대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릇된 판단을 하고 그릇된 길을 가더라도 그 때 내 판단 대로 했어야 했는데, 세상을 다 아는 것처럼 으스대고 싶기도 했었는데, 어떤 선택의 순간에서 용기를 낸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영화를 보고, 책을 읽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생각들을 고쳐먹고, 부딪치면 도망치기 바빴고요. 쉽게 얘기해서 막 살아 볼 걸, 그냥 되는대로 살아볼 걸 하는 후회들이 가득했던 시간이었죠.”
그는 스스로 더 이상 청춘은 아니라고 하는 걸 보면 ‘영원한 청춘’ 같은 말은 믿지 않는 듯 했다.
“사실 물리적으로는 20대 정도가 청춘이겠죠. 30대가 되면 또 다른 형태의 삶이 있는데 사람들은 20대가, 청춘이 인생에 가장 아름다운 시절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은 아닌지 싶기도 해요. 중요한 건 20대에도 세상이 뿌옇게 보이지 않고 심장이 요동치지 않으면, 청춘이라고 볼 수 없겠죠.”
자연스럽게 나이가 들고 그 경험치들이 쌓여 새로운 창작의 시선이 생기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왜 굳이 20대를 바라보게 됐는지는 의문이다.
“사실 ‘봄의 기억’ 내고 나서 음악이 재미없어졌어요. 어떤 신호가 왔는데 이러다가 뮤지션들이 한 번에 가는구나 싶은 그런 기분이 문득 들었죠. 뮤지션들이 거짓말을 늘어놓기 시작하는 시점이에요. 진심으로 말하지 못하고 뜨겁지 않은데 뜨거운 척 하는 시기가 저에게도 왔던 거죠. 그래서 한 동안 아무런 작업도 안하고 놀았어요. 있는 돈 다 써버리고, 여행만 다녔죠. 그러다가 이제 작업을 해야겠다 싶을 때 쯤, 아내에게 아이가 생겼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결혼 4년 만에 첫 아이었다. 아빠가 된다는 사실은 이지형이 세상을 보는 방식을 전혀 다르게 만들었다.
“뷰파인더와 렌즈가 전부 바뀐 것 같더라고요. 세상이 이런거 였구나 하는 초점이 잡히기 시작했어요. 20대에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 아이디어 고갈이 오지 않을까하는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에요. 근데 막상 이런 일이 제게 생기니 할 게 너무 많은 거에요. 이런 앨범을 만드는 거도 그중에 하나였죠.”
“아버지에게 듣는 이야기라는 게 사실 10개 정도에서 계속 돌아가잖아요.(웃음) 제 아들에게는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어요. 아이가 20년, 30년이 지난 후에 아빠의 20대 시절 방황하던 모습들과, 얼룩진 이야기를 볼 수 있기를 바랐어요.”
이지형이 인터뷰 내내 강조한 것은 이번 앨범이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라는 것이었다. 아들에게 들려주고자 함 역시 개인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타인의 어떤 경험들이 다른 누군가를 치유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제 음악도 마찬가지고요. 인구에 적잖게 회자되고 있는 이 ‘멘토’라는 것이 어쩌면 성장통을 빗겨가고 싶어 하는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해요. 그냥 청춘은 아파도 되고, 힘들어도 되요. 그러다보면 자연히 치유되는 부분들이 생기게 되고요. 제 노래는 그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우리는 힘들어 하는 누군가에게 조언을 한답시고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해보라는 말들을 늘어놓느다. 하지만 이야기를 다 들어주고 고개만 조용히 끄덕이며 “그래, 이해한다. 나도 그렇다”는 한마디가 훨씬 더 큰 위로가 되고 힘이 될 때가 있다. 이지형의 노래들은 굳이 우리에게 위로를 건네지 않는다. 뭔가 방향을 던지지도 않는다. 단지 “나도 그랬다”고 조심스럽게 고백하고 있을 뿐이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이현우 기자 nobodyin@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