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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까지. 음반 한 장으로 이토록 뜨겁고 숨가쁘게 달려왔다. 밴드 페퍼톤스(Peppertones, 신재평·이장원). 자칭 우주 최강으로 출발, 은하계 정복 야욕(?)을 스스럼없이 밝히는 패기 넘치고 당당한 30대 ‘꽃밴드’다.
데뷔 EP부터 정규 3집까지 아기자기하면서도 실험적인 음악을 주로 해 온 그들이지만 2012년은 조금 특별했다. 2년 반 만에 내놓은 정규 4집 ‘비기너스 럭’(Beginner’s luck)이 전작들과 달리 정통 밴드 사운드로 무장했기 때문.
귀엽고 발랄한 음색의 여성 객원보컬 비중이 줄어들면서 슬금슬금 빠져나간 남성 팬들의 자리는 여성 팬들로 채워졌다. 자연스럽게 팬 성비 불균형 문제는 심화됐지만 친구 손에 이끌려 공연장을 찾은 비(非) 혹은 미(未) 팬 여성들마저 무장해제시키는 놀라운 능력으로 전체적인 (팬) 파이를 키운 경제적인(?) 한 해였다.
달라진 듯, 하지만 ‘뉴 테라피’만큼은 여전한 ‘원조 인디 아이돌’ 페퍼톤스. 이 건강한 햇살밴드가 만들어 낸 2012년 어떤 날들의 A·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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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2년 여 공들여 만든 정규 4집 ‘비기너스 럭’(Beginner’s luck)을 발매한 페퍼톤스는 오는 15일 EP ‘OPEN RUN’ 발매를 앞두고 있다. 한 해에 두 장의 앨범을 만나게 되다니. 반갑고 한편으로 놀랍다.
‘비기너스 럭’이라는 타이틀처럼, 음악을 시작한 초심자의 심정으로 돌아간 이들은 기존의 복잡한 편곡을 지양하고 ‘뺄셈의 미학’을 기본으로 지난 8년간 쌓아온 내공을 총 10트랙에 펼쳐놨다.
기발하고 엉뚱하거나 혹은 예쁘고 아기자기한 느낌보다는 조미료를 뺀 진국으로 돌아간 ‘비기너스 럭’은 종전 페퍼톤스 음악의 대표 이미지인 화려함을 벗어낸, 있는 그대로의 ‘진짜’였다. 진한 페퍼(Pepper) 향에 다소 가려졌던 소리(tone) 고유에 집중한 이번 앨범에서 음악에 대한 두 사람의 열정은 어느 때보다 더욱 돋보였다.
객원보컬을 줄이고 두 멤버가 보컬 전면에 나선 점도 주목할 만한 변화이자 성과다. 예쁜 멜로디를 먼저 생각했던 과거와 달리 “단어 혹은 문장을 만들어놓고 나서 곡을 붙이는 식으로” 바뀐 작법으로 인해 주위 단상에서 악상이 출발하는 경우가 늘어났고, 자연스럽게 노래도 직접 부르게 됐다. 덕분에 공연 완성도 또한 높아졌다.
바쁜 스케줄 가운데서도 뚝딱뚝딱 작업한 이번 EP는 숨가쁘게 달려온 4집 활동을 마무리하는 차원에서 기획된 앨범이자, 올 한 해 제대로 불붙은 페퍼톤스의 열정이 오롯이 드러나는 결과물이다.
타이틀곡 ‘노래는 불빛처럼 달린다’를 비롯해 ‘계절의 끝에서’ ‘furniture’ ‘신도시’ ‘검은 우주’ 등 총 다섯 곡이 수록됐다. 4집의 연장선인 만큼 기존과 마찬가지로 페퍼톤스 2명 외에 신승규(드럼), 양태경(건반), Jane(일렉기타) 다섯 명이 밴드 합을 맞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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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신보를 발매한 만큼 방송 행보도 꾸준하고 화려했다. 정통 음악 프로그램의 부재 속에서도 라이브 연주를 들려줄 수 있는 TV 프로그램에는 거의 모두 출연하며 왕성한 활약을 했다.
페퍼톤스는 ‘유희열의 스케치북’을 비롯해 ‘정재형 이효리의 유앤아이’, ‘루시드폴의 리모콘’, ‘윤도현의 Must’ 등 지상파·케이블 음악 프로그램은 물론 ‘이한철의 올댓뮤직’ ‘열린예술무대 뒤란’ 등 다양한 지역 방송 무대에서도 팬들을 만났다.
‘스케치북’에서는 대학 시절 축제의 추억을 공개하는가 하면 ‘유앤아이’에서는 라디오에서 이장원이 선보였던 개인기, ‘누너예’(누난 너무 예뻐) 맛보기 버전으로 색다른 매력을 과시했다. ‘리모콘’과 ‘머스트’ 인터뷰를 통해서는 4집을 준비하며 달라진 음악관에 대해 진중하게 털어놓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TV가 페퍼톤스의 음악을 들려주는 장이였다면, 라디오는 페퍼톤스 신재평, 이장원 그 자신들의 매력을 유감없이 보여준 공간이었다.
본격적으로 음반 준비에 몰두하기 위해 DJ직을 내려놓은 신재평 대신, 이장원은 근 1년간 MBC ‘정오의 희망곡 스윗소로우입니다’ 고정 게스트로 활약하며 입담꾼으로서의 면모를 과시했다. 한동안 일 없는 주말 가이드 도우미로 활약하며 ‘잉여킹’ 이미지를 강화하는가 싶더니 ‘지식왕’으로 신분 급상승하는 기쁨을 맛보기도 했다.
현재 페퍼톤스는 SBS ‘장기하의 대단한 라디오’ 화요일 코너 ‘주첵이夜’에서 DJ 장기하와 함께 ‘81 라인’을 결성, 깨알 같은 조합으로 매주 청취자들을 만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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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장도 뜨겁게 달궜다. 각종 페스티벌은 물론 소극장 장기 공연, 여름을 뜨겁게 달군 클럽 투어에 연말 공연까지. 앨범을 발매했던 그 여느 해보다 많은 공연을 소화하며 일취월장, 공연형 뮤지션으로 거듭났다
페스티벌이면 빠질 수 없는 ‘햇살밴드’였다. 연 초 그린플러그드레드 2012를 시작으로 뷰티풀민트라이프 2012, 지산벨리락페스티벌에 이어 7년 연속 개근에 빛나는 그랜드민트페스티벌 2012 등 크고 작은 각종 페스티벌에 단골로 나섰다.
4집 ‘비기너스 럭’ 발매 기념 소극장 장기공연 ‘Beginner’s Luck live’을 총 8회에 걸쳐 진행했으며, 부산 공연에 이어 대구, 대전, 안산, 부평, 광주, 전주 등 전국 각지에서 100~200명 규모의 클럽 투어를 이어갔다. 페퍼톤스라는 이름으로 의기투합한 초심의 공간, 클럽에서 이들은 열정의 무대로 유난히도 더웠던 2012년 여름날을 흠뻑 적셨다.
연말까지도 숨 돌릴 틈 없는 행보가 이어질 전망이다. 한 해의 마무리를 앞두고 EP라는 깜짝 선물을 내놓는 페퍼톤스는 올해도 어김없이 연말 콘서트로 팬들을 만난다. 내달 21일부터 서울 악스코리아 및 부산 영화의전당 하늘연극장에서 연말 공연 ‘FINE.’을 개최, 신보 수록곡을 최초로 라이브로 선보일 예정이다.
머무르기보다는 끊임 없이 변화를 추구해 온 페퍼톤스. 어느새 팀 결성 10년을 앞두고 있지만 초심으로 돌아간 이들은 마치 신인인 양 그렇게 쉼 없이 달려왔다. 초심자의 행운(‘비기너스 럭’)을 노래한 그들이 기억하는 지난 1년은 많은 이들과 함께 해서 더 행복한 시간이었다.
“많은 분들을 만나고 노래할 수 있어서 즐거웠습니다. 소중한 기억들로 남을 2012년. 마지막까지 힘차게 달려가겠습니다.”(페퍼톤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박세연 기자 psyon@mk.co.kr/사진 안테나뮤직·GMF 공식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