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연우진(28)이 빙긋 웃었다.
MBC 드라마 ‘아랑사또전’을 마치고 고향에 내려가 가족과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돌아왔다는 연우진의 미소를 마주하니 왠지 마음이 놓인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어두운 기운으로 무장한 ‘다크 주왈’로 분했던 그였다.
극중 주왈은 골비단지라는 비참한 삶을 벗어나기 위해, 홍련(강문영 분)이 제시한 위험한 거래에 동의하고 매 달 보름이면 죄 없는 여인들의 목숨을 빼앗은 혼 사냥꾼이었다.
그랬기 때문일까. 브라운관에 비친 연우진의 눈빛은 늘 어딘지 모르게 불안했고, 슬퍼 보였다. 그 역시 “촬영 내내 이렇게 어두웠던 적이 없었다. 주왈이 너무 불쌍했고, 슬펐다” 했다.
그 어느 때보다 최고조의 집중력이 요구된 캐릭터였기에, 무엇보다 웃음기를 싹 뺐다.
웃는 일이 제일 어색했던 시간이었다. 하긴 사랑에 빠진 순간에조차 그의 미소를 찾아보기 힘들었으니. 하얀 치아를 드러내고 웃는 것은 고사하고,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모습을 찾기조차 하늘의 별따기였다.
“마지막 회 독백 장면에서 ‘거울을 보고 어색하게 씨익 웃는다’는 설정도 있었어요. (망연자실한 상황에) 자기도 모르게 픽 웃는다는 거였는데, 허탈하게나마 이를 드러내고 웃는 모습은 결국 끝까지 나오지 않았어요.”
‘아랑사또전’은 안쓰럽고 딱한 캐릭터 투성이였지만 그 중에서도 둘째가라면 서러울 주왈이었다. 연우진 역시 진짜 주왈을 만나기까지 공감과 연민의 감정이 누구보다 컸다 했다.
“처녀귀신 아랑이나 귀신 보는 은오와 달리 주왈이야말로 온전한 인간이었는데도 인간다운, 순수한 감정을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인물이었죠. 각종 사건에 얽히면서 주왈이 본능적으로 인간의 감정을 깨우쳐가는 과정이 개인적으로 와 닿았고요, 그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처참한 현실 그리고 비극으로 치닫는 상황이 굉장히 큰 연민으로 다가왔습니다.”
“정말 많이 고민하고 생각했죠. 욕심일 수도 있겠지만 많은 생각을 담아내려 했어요. 그런데 감독님은 오히려 생각을 비우라 하셨죠. 각 상황에서 포인트만 보여주면 된다고, 그 이상을 보여드리려다 중요한 걸 오히려 놓칠 수도 있다는 조언을 해주셨고, 거기서부터 하나하나 비워가며 연기했습니다.”
준비도 많았지만, 연우진은 영민했다. “모든 걸 채운 상태에서 하나씩 버리면서 했어요. 그 과정에서 세밀함 디테일함을 놓치지 말아야겠다 생각했고요. 주왈에게 닥치는 사건마다 키포인트가 분명히 있었거든요. 아랑과의 첫 만남, 처음으로 사랑을 알게 된 순간, 버려지는 순간 그리고 지워졌던 기억을 되찾고 현실을 자각하는 순간들. 그런 게 어색하게 보이지 않게 조금씩 버리는 작업을 했습니다.”
모든 비밀이 드러난 뒤, 자신이 해왔던 악행을 마주하게 된 주왈은 결국 절벽 아래로 몸을 던졌다. 하지만 극 말미 저승사자로 극적으로 살아났다(?). 불쑥 저승사자 복장으로 나타난 주왈의 모습은 시청자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개인적으로는 마음에 들어요. 생뚱맞다고 하는 분들도 많이 계셨지만 주왈은 분명 죄값을 치러야 하는 인물이었거든요. 그냥 자살로 마무리한다면 너무 극단적이고 끝나지 않은 느낌일텐데, 또 다른 용서를 구하는 의미에서 그렇게 표현된 건 좋았습니다.”
인간다운 삶을 갈구했지만 가장 인간답지 못했던 인간, 주왈에게 처음으로 인간의 감정을 느끼게 해 준 여인, 아랑(신민아 분)에 대해서도 궁금했다.
아랑을 바라보는 주왈의 눈빛은 반신반의, 호기심부터 애틋한 연모의 감정까지 실로 다양했기 때문.
“아마도 결국은 사랑하는 여인을 바라보는 눈빛이었겠죠? 하지만 처음에 포인트를 잡았던 건 ‘이건 뭐지?’ ‘이 여자 뭐지?’ 이런 느낌이었어요. 알 수 없는 감정이 주왈 안에서 요동쳤죠. 뭔가 가슴 뛰게 만들고 엔돌핀이 돌게 만드는, 정체불명의 사물을 바라보는 듯 하게 한다는 데 포인트를 잡고 갔습니다.”
아랑과 주왈의 저잣거리 데이트씬을 언급하며 신민아와의 케미(!)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연우진은 “워낙 신민아 씨가 발랄하고 사랑스럽게 연기를 잘 해주셨다”고 상대 배우를 치켜세웠다. 이상형으로 신민아가 언급된 데 대해 묻자 “아랑 같이 밝고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 좋은 에너지를 주는 사람이 이상형”이라고 부연했다.
이제 갓 ‘아랑사또전’을 마쳤음에도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새 작품으로 돌아오겠다는 연우진. 지금까지 거쳐 온 작품에서 보여준 다양한 모습처럼, 스스로도 “또 다른 변신이 기대된다” 했다.
배우로 활동하면서 언젠가 꼭 이루고 싶은 꿈은 대선배 한석규와 작품에서 만나는 것이다.
“한석규 선배님을 진짜 좋아했어요. 연기적인 부분도 그렇지만 그 분 자체에 대해 굉장히 존경심을 갖고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좋아했기 때문에 좋아하는 이유를 묻는다면 딱히 말하긴 힘든데, 언젠가 꼭 한 번 뵙고 함께 연기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박세연 기자 psyon@mk.co.kr/사진 M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