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부산국제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에 초청된 영화는 106분 동안 답답하고 고문을 받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개봉(22일)을 앞두고 진행된 언론시사회에서도 변함이 없었다. 수위 조정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실제 故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고통은 이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으리라.
5일 오후 언론시사회를 마치고 한 식당에서 진행된 뒤풀이 자리에서 만난 정지영 감독은 고무된 눈치다. 부산국제영화제와 언론시사회에서 평이 기대 이상이기 때문이다. 전작보다 세련됐고, 재미있다는 평가에 놀라면서도 싫지는 않은 표정이었다. 남들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따라가지 않는 그는 이번 작품이 “대통령 선거에 어떤 영향을 미쳤으면 한다”고 했다. 공개석상에서 벌써 두 차례나 언급했다. 유권자들이 얼마나 정 감독의 의중을 파악할지는 모르겠지만 적잖은 울림은 줄 것 같다.
가장 궁금했던 점 하나. ‘부러진 화살’ 때도 한 번 물었는데 국가의 압력은 없었는지 궁금했다. 정 감독은 “정부도 나를 주시할 사람인 건 맞다고 생각하지만 건드리면 손해라는 걸 안다”며 “웬만큼 큰 사고를 치지 않는 한은 그냥 놔둔다”고 말했다. 정 감독은 ‘부러진 화살’이 흥행하고 있을 때도 “사법부에 전화를 받은 적은 없었다”고 했다. 하긴 ‘남부군’(1990), ‘하얀전쟁’(1992),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 등으로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해온 감독 아닌가.
또 한 가지는 영화의 초점이다. 김 상임고문은 민주화를 위해 애쓴 분이다. 그가 어떤 노력을 했는지 궁금할지 모르겠지만, 영화는 신체적 고통을 가했던 고문이 중심이다. 그의 수기를 바탕으로, 1985년 9월 민주화운동청년연합 의장 자격으로 붙잡혀 서울 남영동 옛 치안본부 대공분실 515호에서 22일 동안 고문당한 실화를 적나라하게 담았다. 영화는 용서도 초점이 아니다.
김 상임고문이 고문 기술자 이근안을 용서했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남영동1985’에서도 김종태(박원상)가 자신을 혹독하게 괴롭힌 고문기술자 이두한(이경영)을 만나 대화하는 장면이 나온다. 하지만 김종태(혹은 김근태)는 이두한(혹은 이근안)을 용서하지 못했다. 김 상임고문의 부인 인재근씨의 말을 빌어 정지영 감독은 “조금은 마음이 편해지긴 했겠지만 용서를 할 순 없었던 것으로 안다”며 “이근안을 용서하는 건 개인적인 일이 아니라 신의 영역”이라고 말했다.
사람 좋아 보이는 이들이 뭉쳤다고 영화를 허투루 보면 큰일이다. 섬뜩하다 못해 등골이 서늘해진다. 영화는 무엇을 생각했던 더 충격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고통과 두려움이 가득한 박원상의 표정을 본다면 차라리 눈을 감고 싶어 하는 이들이 꽤 될 것만 같다.
정 감독은 기자들에게 “가슴에 아픔과 슬픔이 느껴졌으면 그대로 전했으면 한다”고 바랐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현철 기자 jeigun@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