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준기(30)가 겸연쩍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다만 언젠가 반드시 꼭 이루어내고야 말겠다는 듯 눈빛만큼은 번쩍 빛났다.
관객 쏠림 현상은 여전했지만, 유난히 한국 영화계가 풍성했던 한 해였다. 여름의 시작과 함께 영화관을 뜨겁게 달군 한국 영화 역대 최고 흥행작 ‘도둑들’(감독 최동훈)을 비롯해 이병헌의 열연이 빛난 ‘광해, 왕이 된 남자’(감독 추창민)도 천만 관객을 넘어 순항 중이다.
천만 영화 관련 기사가 연일 쏟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역대 천만 영화들 또한 재차 조망됐다. 그 가운데는 2005년을 뜨겁게 달군 영화 ‘왕의 남자’(감독 이준익)도 있었다.
‘왕의 남자’는 탄탄한 스토리와 영상미뿐 아니라 정진영, 감우성, 강성연 등 쟁쟁한 배우들의 열연이 빛난 작품이었다. 이준기라는 숨은 진주의 발견이라는 의미 있는 성과도 빼놓을 수 없다.
꿈의 기록 천만. 많은 배우들이 꿈꾸겠지만 특히나 신인으로서는 감히 꿈도 못 꿀 숫자다. ‘왕의 남자’ 이전까지만 해도 눈에 띄지 않았던 그는 ‘공길’ 역으로 영화계 새 별로 단숨에 떠올랐다.
최근 MBC 드라마 ‘아랑사또전’을 마친 이준기와 만난 자리에서 천만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왔다. 이병헌, 김혜수, 김윤석보다도 7년 먼저 이를 체감한 이준기에게 운을 띄우자 “요즘 (‘왕의 남자’) 순위가 쭉쭉 내려가고 있다”고 너스레를 떨면서도 감회를 보였다.
“‘광해’나 ‘도둑들’ 모두, 배우로서 스타성을 비롯해 모든 게 검증되신 분들이라는 점이 있었지만 제 경우엔 정말 생 초짜 신인이었거든요. (저에 대한) 대중의 신뢰도 전혀 없는데다 감독님께 배우기에 바빴는데 그런 상태에서 어마어마한 축복을 받았다는 게 지금도 믿기지 않아요.”
이준기는 “내 인생에 어떻게 그런 기회가 있었을까. 돌이켜보면 참 신기한 일들의 연속이었다”고 생애 처음 맛본 뜨거운 스포트라이트를 떠올렸다.
하지만 ‘왕의 남자’ 이후 이준기의 필모그래피는 말 그대로 도전의 연속이었다. 영화 ‘플라이 대디’, 드라마 ‘개와 늑대의 시간’, ‘일지매’, ‘히어로’ 그리고 최근작 ‘아랑사또전’까지. 표면적으로 ‘왕의 남자’가 거둔 성적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다양한 변신과 도전을 통해 대중의 신뢰를 쌓아갔다.
대중 앞에 내놓아지기 전에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흥행. 천만 영화를 또 하고 싶지 않느냐 묻자 “기회가 오겠죠?”라고 반문하며 싱긋 웃는다.
“예전에는 1000만 돌파하면 1년 내내 뜨거웠는데 요즘은 그렇진 않은 것 같아요. 하지만 좋은 작품도 많고, 관객들의 성향도 달라졌으니 저 역시 좋은 작품을 하면 신뢰를 줄 수 있지 않을까요?”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박세연 기자 psyon@mk.co.kr/사진 강영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