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가 변하고 이들의 존재 방식이 위협을 받기 시작했다. 2000년대 초반 MP3 탓에 음반시장은 그라운드 제로 수준으로 붕괴했고 곧이어 싹을 틔운 디지털 음원 시대는 음악의 소비 패턴을 이전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바꿔놨기 때문이다. 기실 이는 국내 뿐 아니라 전세계 음악 시장이 비슷하게 겪은 사건이다.
뜬금없이 영화 투자‥왜 하필 ‘26년’
이승환이 영화 ‘26년’에 투자한다는 소식이 들렸을 때 이승환의 팬들이나 이승환을 잘 모르는 사람들조차 ‘왜?’라는 반응이 나왔다. ‘용산참사 유가족 돕기 콘서트’나 ‘MBC 파업 지지 콘서트’ 등 무대에서 종종 그를 만날 수 있었지만 영화 ‘26년’에 투자자로 나선다는 것은 전혀 다른 맥락이기 때문이다.
“우연하게 영화 ‘26년’이 기획 단계에서 표류하고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접하고 작품을 보게 됐죠. 가슴이 움직였어요. 그래서 강풀에게 연락을 했고 영화사 대표를 소개받았죠. ‘내가 투자 하겠다’ 했어요. 이 결정에는 분명 일말의 정의감 같은 게 있었겠지만 내용 자체가 너무 재미있었으니 절대 손해는 보지 않을 것 같았았어요. 하하”
당시 이승환은 자신이 설립한 기획사 드림팩토리를 다시 일으켜 세워보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기존의 방식과는 다른 형태로 회사를 운영해야 겠다고 결심했던 상황이었다.
“저는 누구도 하지 않는 단 한 가지를 하는 단 한명의 사람이 나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지금까지 살았어요. 내 또래 가수들과는 다른 길을 가야한다고 생각하고 살았고요. 그 영화가 아무도 하려고 하지 않는 영화라면 제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거죠. 저 스스로에게도 음악이나 음악과 관련한 것에서는 그렇게 살아왔는지 모르지만 영화 투자는 저도 한 번도 안 해 본 거 더라고요.”
이승환은 투자자 입장에서 제작과정이나 연출에는 전혀 개입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는 전적으로 감독의 권한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 역시 첫 시사회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영화가 전직 대통령의 암살이라는 소재인 까닭에 하지 말라는 사람이 더 많았다고 한다. 뮤직비디오 하나를 찍기 위해 후배들에게 출연을 도와달라는데 몸을 사리는 모습도 봤다고 한다. 하지만 그만한 신념과 배짱 없이 되는 세상이 어찌 변하겠냐는 생각도 든다.
“600만명 정도 기대하고 있어요.”
2년째 무소식‥새 앨범 대체 언제?
이승환의 정규 10집 ‘드림마이저’(Dreamizer)가 발매된 지도 2년이 훌쩍 지났다. 그간 음악 활동을 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연말 대형공연 소극장 공연 등 수차례 무대를 꾸렸다. 간혹 이 무대에서 자신의 팬들에게만 신곡을 들려주기도 했다. 하지만 새 앨범 소식은 통 틀리지 않는다. 그가 새 앨범을 만들지 않는 이유는 숨이 턱 막힐 만큼 충격적이었다.
“10집이 잘 안됐어요. 생각했던 것 보다 제 음반을 기다리는 사람이 많지 않더군요. 새로운 음악을 하면 사람들이 예전만 못하다는 반응을 보여요. 돈만 많이 들고.”
음악적 완성도에 대한 평가가 사라진지 오래고 음악계 후배들 조차 선배 세대가 남긴 유산에 대해 존경심을 표하지 않으며 이미 대중의 귀는 한 없이 얇고 경박해졌다고 한탄 할 이유는 없다. 결국 대중 앞에서는 모두 동등하게 선택을 기다려야 하는 대중음악인 이라는 사실은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대중의 취향에 계산된 음악을 하는 것은 창작자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일이다.
“앞으로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어쩌면 이제 발라드는 더 이상 만들지 않을 것 같기도 해요. 노래할 때 제일 재미있는 것이 발라드지만 발라드라는 형식은 사실 새로울 것이 전혀 없거든요.”
음악을 만드는 방식 역시 바꾸지 않을 것 같다. 홈 레코딩 기술이 나날이 좋아져 과거에 대형 스튜디오에서만 가능하던 작업이 얇은 노트북 하나만 있어도 가능한 시절이 됐지만 여전히 그가 원하는 것은 최상의 퀄리티기 때문.
“기술이 많이 좋아졌죠. 하지만 언제나 상위 1% 하이엔드는 비용이 많이 들 수 밖에 없어요. 연주자들의 실력 역시 마찬가지에요. 국내 연주자들이 이제 세계적인 수준으로 진입하고 있지만 아직 몇몇 악기들은 미국 같은 나라의 연주자들이 낫죠. 무엇보다도 엔지니어링 수준이 달라요. 당대 최고의 장비라고 구입해도 몇 년 후 가서 보면 전혀 다른 장비를 쓰고 있고 그럼 소리가 또 전혀 다르게 들리거든요.”
결국 안하겠다는 게 아니라 더 기다려 보란 얘기다.
설마 아직도 이승환 공연을 못봤어?
영화 투자를 계기로 인연을 맺은 인터파크 덕에 당초 올해 예정에 없던 연말공연이 한창 준비 중이다. 올해 연말공연은 부산에서 12월 24, 25일, 서울에서 12월 30일 31일 열린다.
그 어느 해 보다 쇼에 대한 자신감이 충만했다. 기실 이승환의 공연은 쇼 자체의 화려함과 완성도로 국내 어떤 공연과 비교하기 어렵다. 특히 올해 공연은 다른 어느 공연보다 대중 친화적이 될 전망이다. 올해는 공연시간이 2시간 30분 가량으로 비교적 짧고,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카니발 형식의 공연이라는 전언이다.
“공연은 자본의 미학이거든요.(웃음) 올해는 제가 얘기 한 걸 하드웨어 적으로 정리 해주고 극대화 시킬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서 시너지가 클 것 같아요. 이렇게 획기적으로 할 수 있는 공연이 있구나 할 정도의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완벽한 판타지를 구현하려 준비 중이에요.”
이승환의 가창력은 공연장에 보지 않으면 그 진가를 영원히 알 수 없다. 다섯시간 반짜리 공연을 3일 연속 할 수 있는 가수는 국내외를 통틀어 절대 흔하지 않다. 이승환의 나이를 생각하면 더 하다.
“작년에 목 때문에 고생하긴 했어요. 나이를 먹으면서 몸이 굳어지며 생기는 현상인 것 같아서 스트레칭을 시작했죠. 목도 자연스럽게 늙는 거지만 창법을 바꿀 생각은 없어요. 제 공연에 오신 분들은 제가 가성을 하는 것도 봐야하고 그로우링 하는 것도 봐야 하기 때문에 늘 관리를 엄격하게 해줘야 해요. 음악이 바탕이 돼 있으면 쇼가 강해도 상관 없다는게 제 지론이에요.”
내년에는 해외 공연을 보다 적극적으로 생각해보겠다는 계획이다.
“일본 사람들에게 내 음악을 들려주고 싶다는 마음 같은 건 아니에요. 사실 10년 전 쯤 일본에 작은 공연장에서 공연을 하는데 사운드가 너무 좋았거든요. 그걸 다시 경험해 보고 싶어서요. 자극을 더 받고 싶은 거죠.”
이것이 20세기형 아티스트가 21세기를 사는 방식이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이현우 기자 nobodyin@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