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라는 직업을 가진 이라면 응당 역할에 맞게 캐릭터를 변화시킬 의무가 있다.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역할만 골라서 하는 배우들도 있다. 변화는 두렵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배우 송중기(27)는 칭찬할 만하다.
지난달 31일 개봉한 ‘늑대소년’(감독 조성희)에서 그는 기존의 ‘꽃미남’ 이미지를 버렸다. 꾀죄죄한 얼굴과 몸은 냄새를 굳이 맡지 않아도 악취가 날 것만 같다. 게걸스럽게 음식을 먹고, 진짜 늑대처럼 ‘아우~’하고 소리도 내고, 코도 벌렁 거린다.
송중기는 솔직히 시나리오를 받고 바로 출연하겠다고 답한 건 아니었다고 털어놓았다. 다른 영화에 눈이 갔지만 제작이 무산됐고, 다시 들어온 ‘늑대소년’ 시나리오를 봤다. 송중기는 머리를 쳤다. “‘왜 내가 저번에 이걸 못봤지?’라고 생각했어요. 놓치면 후회할 것 같았죠. 그래 놓고 선택을 하긴 했는데 이내 또 ‘내가 왜 한다고 했을까?’, ‘이전에 없던 캐릭터인데 굉장히 큰 모험을 하겠지?’라며 갈팡질팡했어요.”
늑대소년을 어떻게 표현할 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생각을 많이 해서인지 역할 표현을 잘했다. 동물원에서 늑대의 습성을 살펴봤고, 동네 지나가는 개도 유심히 지켜봤다. 영화 ‘반지의 제왕’의 골룸(앤디 서키스)도 연구대상이었다. 그래서인지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먼저 상영되고, 각종 시사회에서 공개된 영화를 향한 반응이 호평일색이다.
그는 “배우들은 각자 접근법이 다 다르겠지만 못할 것 같아도 카메라가 켜지고, 그 장면이 상황에 맞고 작품을 살린다면 어떤 연기라도 하게 된다”고 웃었다.
“‘쌍화점’도 그렇고, ‘늑대소년’, ‘착한남자’ 등 모두가 소중하죠. 제 DVD 수납장에 드라마와 영화가 꽂혀있는 걸 보면 뿌듯해요. 하나도 미운 작품이 없죠. 하지만 모든 작품들은 나중을 위한 경험이에요. 많은 경험을 하다보면 시간이 지난 뒤 좋은 배우가 되지 않을까 해요. 그 때 생각을 하면 더 설레요.”
송중기는 배우가 되기 전 많은 활동을 했다. 중학생 때는 쇼트트랙 선수로 활동했다. 국가대표가 되고 싶었지만 그만한 재능이 없다는 걸 알고 포기했다. 상실감은 컸지만 머리가 좋은 터라 공부에 몰입했다.
“솔직히 어린 나이에 쇼트트랙 포기하고 힘들었어요. 하지만 공부를 하며 학교생활에 빠졌죠. (성균관) 대학교 들어와서 열심히 즐겼어요. 군대 가기 전에 해보고 싶은 것은 다해보자 생각해서 여러 가지 활동을 했죠. 다큐멘터리 만들어서 상도 받았고, 아나운서나 방송국 PD 공채 준비도 했고요. 솔직히 연기는 그중 하나에 불과했는데 연기공부를 하다가 데뷔까지 하게 됐죠.”(웃음)
여러 가지 꿈 중에 하나였던 연기가 사람들 반응도 좋으니 열정이 더 많이 쌓였다. 더 재밌게 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데뷔를 못했으면 다른 길로 빠졌을 텐데 배우가 됐고, 더 열심히 하게 되는 기회가 됐다. 그래서인지 쉽게 자만하진 않는다.
그는 “인기는 언제든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마음속으로 준비를 하고 있다”면서도 “인생의 최고 지점은 자기가 찾아서 올라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긍정했다.
‘늑대소년’은 세상에 없어야 할 위험한 존재인 늑대소년(송중기)과 세상에 마음을 닫은 외로운 소녀(박보영)의 운명적 사랑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한 편의 ‘판타지 동화’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두 사람의 만남이 애틋하고, 또 헤어짐은 가슴 아프다. 송중기는 ‘늑대소년’ 같은 사랑은 해봤을까.
“없다면 슬프겠죠. 저도 첫사랑을 잊지 못해요. 물론 (박)보영이 만큼 예쁘진 않지만 어렸을 때(좀 더 추궁하니 10대 때라고 고백했다) 사랑을 해봤어요. 우리영화를 보고 많은 분들이 첫사랑이 생각나는 뭉클함을 느꼈으면 좋겠어요. 저도 ‘늑대소년’ 보면서 첫사랑을 생각했거든요.”(웃음)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현철 기자 jeigun@mk.co.kr/ 사진 팽현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