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영화 ‘늑대소년’은 미국에서 사는 할머니 순이가 한국에서 걸려온 한 통의 전화를 받으며 시작된다. 강원도의 한 낡은 집을 찾아온 할머니는 47년 전 만났던 소년을 회상한다.
십 여 년을 사람과 함께하지 않고 홀로 지낸 소년(송중기). 그는 폐병에 걸려 요양 차 산골로 이사 온 소녀 순이(박보영)의 가족을 만나 뒤늦게 철수라는 이름을 얻었지만, 아직 사람이라기보다 짐승에 가깝다. 먹을 것을 보면 쏜살같이 달려가 게걸스럽게 먹어 치워버린다. 말도 하지 못한다. 으르렁댈 뿐이다.
하지만 소년은 도구를 사용하고픈 본능이 있다. 떨어진 연필로 무언가를 끄적거리는 습관이 있다. 또 본능적으로 감미로운 노래에 반응하고, 이성을 향한 호감과 호기심도 갖고 있다.
몸이 아파 세상에 등을 돌리려 하는 소녀와 강제적으로 격리돼 살아왔던 소년은 비슷한 처지에 서로 끌린다. 처음에 소녀는 더럽고 상대하기조차 싫었던 소년에게 마음이 갔고, 그를 길들이기 시작한다. 비록 ‘애견 훈련법’이라는 책을 따라한 행동이지만 두 사람은 교감을 하게 된다.
이 산골에 사는 주위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만나지 말았어야 하는 소년과 소녀의 관계. 하지만 이들은 운명적으로 만났고, 서로에게 관계 맺기를 시도했다. 그리곤 서로 첫사랑이 되어 버렸다.
![]() |
보호해주고만 싶은 소녀 박보영도 절묘한 연기를 보여준다. 강인한 것 같지만 작고 여린 소녀는 극 전개에 너무 잘 어울리는 캐스팅이다. 여기에 소녀를 사랑하지만 방법이 잘못된 부잣집 아들(유연석)도 등장해 극을 풍부하게 이끈다.
소년의 정체를 알게 된 이 부잣집 아들은 소년을 죽이고 소녀를 차지하려고 혈안이다. 소년은 위태로워지고, 결국 소녀는 소년에게 숲속으로 떠나라고 한다. 헤어지기 싫지만 헤어져야 하는 두 사람의 가슴 아픈 사랑에 눈물 흘릴 이도 꽤 될 것 같다.
두 사람의 애틋한 멜로는 영화 ‘건축학개론’에서 사랑을 받았던 이제훈과 수지 저리가라 할 정도다. 방문을 사이로 두고 밖에서는 소년이, 방 안에서는 소녀가 누워 있는 장면이 특히 인상 깊다. 닫힌 방문 사이로 마주보고 있는 그들이지만 장벽은 어느새 사라져 버린 것만 같다.
물론 가끔 딴지를 걸고 싶은 상황 설정과 이해가 안 되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한 폭의 파스텔 같은 그림이 고개를 갸우뚱 거리려 할 때쯤, 도화지에 다시 또 두 사람의 사랑을 그려낸다. 동화 같은 판타지 느낌으로, 밝기를 키운 부분은 두 사람의 멜로를 더 강조한다.
47년 전에 ‘기다려. 다시 올게’라는 쪽지 하나를 들고 오랫동안 기다린 소년이 이제는 할머니가 된 소녀를 만나 짐승에서 사람이 됐을 때, 영화는 또 한 번 감동을 준다.
![]() |
또 한 가지. 196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는 정부를 향한 비판적인 시각도 담고 있다. 경찰과 군 간부로 나오는 이들의 행실이 바보스럽다는 점이다. 강한 대북작전 병기를 만들기 위해 늑대의 유전자를 지닌 소년을 길러낸 무시무시한 정부건만 어울리지 않는 공무원들을 의도적으로 등장시킨 감독의 재치가 기발하다.
2008년 ‘남매의 집’으로 칸국제영화제 시네파운데이션 3등상을 수상하고, 2010년 ‘짐승의 끝’으로 벤쿠버 국제영화제 용호상 부문, 로테르담 국제영화제 비경쟁부문에 진출해 실력을 검증 받은 바 있는 조성희 감독의 상업영화 데뷔작이다. 125분. 15세 관람가. 31일 개봉 예정.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현철 기자 jeigun@mk.co.kr]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