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9회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받은 영화 ‘피에타’의 남자주인공. 이정진은 “요즘 불특정 다수에게 인사를 많이 받는다. 특히 뉴스에 많이 나오니깐 이정진의 과거 영화도 모르고, 또 이 분야에 관심 없는 어르신들도 축하인사를 하시더라”고 웃었다.
잘 나가던 패션모델 활동을 접고 지난 2000년 영화 ‘해변으로 가다’로 데뷔한 뒤 ‘해적 디스코왕 되다’와 ‘말죽거리 잔혹사’를 통해 차곡차곡 필모그래피를 쌓았다. 이후 TV와 영화를 넘나들었다. 하지만 이정진은 ‘말죽거리 잔혹사’의 이미지로 제한됐다.
이정진은 “‘피에타’는 10년간 따라다닌 ‘말죽거리 잔혹사’ 이미지를 없애준 영화”라고 좋아했다. “일단 너무 너무 큰 상이죠. 또 제 인생에서 뿐만 아니라 한국 영화사에서 길이길이 제 이름이 영화와 함께 남아있을 거잖아요? 물론 이것으로 만족해선 안 될 것 같아요. 영화든 드라마든 다음 작품을 빨리 정해서 인사드리는 게 제 역할이죠. 이번 수상으로 더 많은 작품으로 인사드리는 기회가 될 것 같아 좋아요.”(웃음)
그는 “처음 수상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는 거짓말인줄 알았다. 믿겨지지 않았고 당황스러웠다”고 회상하며 “생각해보면 지금도 얼떨떨하다”고 했다. 한국 영화사에 기록적인 순간이었지만 이정진은 시상식 현장에 없었다. ‘이정진이 베니스에서 주목을 받지 못해 떠났다’는 얘기가 들리기도 했다.
‘피에타’의 공식 일정이 끝나고 프랑스 파리에 머물렀던 그는 시상식 참석 요청을 받았지만 갈 수 없었다. 시상식 당일 연락을 받아 비행기 티켓을 구할 수 없었단다. 파리에 머문 건 영화제에서 마련해 준 호텔 숙박 기간이 이틀이었고 다른 숙소가 없어 여행 차 이동했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편도 드골 항공이라 짐을 싸 파리로 갔다.
그는 “한국에 와서 축하인사와 함께 ‘정말 수고했어요. 고마워요’라는 말들을 많이 들었다”며 “그런 말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태극전사에게나 하는 말이고, 배우가 듣기 힘든 말인데 좋더라”고 아쉬운 마음을 달랬다.
‘피에타’는 잔혹하고 끔찍한 방법으로 채무자들의 돈을 뜯어내며 살아가는 남자 강도(이정진)가 어느 날 엄마라고 찾아온 여자(조민수)를 만나면서 비극적인 이야기가 전개된다. 엄마라는 존재에 무섭게 빠져드는 강도와 그 가운데 드러나는 둘 사이의 비밀이 섬뜩하다. 김기덕 감독의 예전 영화보다는 많이 완화됐다고 하나 잔인하고 잔혹한 면이 없지 않다.
특히 배우들이 고생한 티가 역력히 드러난다. 김 감독과 조민수, 이정진에게 박수를 보내는 관객들이 많다. 물론, 이정진의 연기가 살짝 아쉬웠다고 표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는 쓴소리를 달게 받아들였다. 이정진은 “당연히 안 좋은 소리를 하는 분들이 있으리라고 본다”며 “배우는 관객들에게 외면 받으면 끝인데, 냉정한 평가가 있어야 발전도 있고 좋은 결과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사실 그도 김 감독을 향한 시선이 곱지만은 않았다. 영화계 이단아, 난해하고 자기주장이 강한 감독 등 김기덕을 향한 선입견이 일반인과 비슷했다. 김 감독으로부터 출연 제의를 받았을 때도 “감독님 왜 저죠?”라고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단다. 김 감독은 조심스러워하는 이정진에게 “그냥 하면 된다”며 따라오길 원했고, 이정진은 받아들였다. 이정진은 좋은 결과를 이끌어내는 한 축을 당당히 해냈다.
이정진은 최근 들어 도전적으로 작품을 선택하는 것 같다. 로맨틱코미디의 주인공으로 달달함을 전했던 그는 이내 아동성범죄자(‘돌이킬 수 없는’), 악랄한 채권추심원(‘피에타’)에도 도전했다. KBS 2TV ‘해피선데이-남자의 자격’에 고정으로도 출연했다. 그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다”라며 “주어진 것 중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들을 선택한다. 좋은 기회가 많이 왔다고 생각하고 어떻게 보면 무리일 수도 있었겠지만 의도된 건 아니었다”고 웃었다.
34살이라는 나이면 결혼을 생각할 만하다. 특히 전작 ‘원더풀 라디오’에서 함께 호흡을 맞췄던 이민정이 이병헌과 결혼을 전제로 한 교제를 하는 걸 보면 부럽지 않을까.
이정진은 “이민정씨 열애 정말 축하한다”면서도 “나보다 나이 많은 배우들도 결혼 안하신 분들이 많다. 이병헌, 정우성 등의 형님들을 먼저 보내야 할 것 같다”고 넘어간다. 그러면서 “솔직히 말해서 내가 당장 다음 달에 결혼한다고 해도 이상한 것은 아니다. 결혼이라는 단어가 새삼스러울 정도의 나이는 아니지 않느냐”고 은근한 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현철 기자 jeigun@mk.co.kr/ 사진 강영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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