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는 3세의 나이에 미적분을 푸는 천재소년으로 주목받았다. 당시 그는 쓴 글과 그림 등을 모아 책까지 출판했다. 그의 글에는 어린 아이다운 상상력과 기발함이 돋보이는 동시에 어른 못지않은 통찰력 또한 엿보인다. 영어와 독일어 등 외국어 실력과 직접 그린 그림, 붓글씨 등 다양한 작품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그의 첫 작품집 '별한테 물어봐라'는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급기야 해외 전역에 번역되었다.
11세에는 미국 나사(NASA)에 취직하기도 했다. 8년 후 그가 한국에 돌아온 것은 외로움 때문이었다. 김웅용은 "나는 영원한 이방인이자 타인이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국내에 돌아왔지만 갈 곳은 없었다. 미국에서 석박사 과정을 수강했지만 학위를 받지 못했기 때문.
하지만 1979년 대입체력장이 있던 날, 그는 충격적인 모습으로 다시 등장했다. 왜소한 체격에 멍한 표정을 담은 사진 한 장에 세간의 관심은 다시금 집중됐고, ‘집안에 가둬놓고 키워졌다’, ‘바보·정신병자가 되었다’ 등의 악성 소문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온갖 낭설에 그는 차라리 침묵을 택했고, 이후 그에게는 ‘실패한 천재’ 라는 오명이 뒤집어씌워졌다. ‘
결국 김웅용은 충청도로 내려갔다. 김웅용은 현재 전공인 토목을 살려 충북개발공사에서 근무하며 두 아들과 아내와 함께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이현우 기자 nobodyin@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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