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덩이를 덩실거리며 광대춤을 추고, 방귀를 ‘부욱’하고 뀌어댄다.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고, 침상에서 상반신을 드러내고 한효주의 손길을 느끼며 괴상한 신음 소리까지 낸다. 그간 이병헌이 입고 있던 두꺼운 외피는 사라져 버렸다. 다양한 모습의 배우들을 본다는 건 관객의 입장에서는 기쁜 일이다. 연기를 잘해 관객을 동화시킨다면 더 좋다.
최근 특별 시사회에서 이병헌은 ‘공동경비구역 JSA’(2000)를 언급하며 “소리를 내면 안 되는 상황이었는데 시나리오를 읽다가 지뢰밭 신에서 빵 터져서 사람들 눈치를 본 적이 있다”고 했다. 갈대밭에서 볼일을 보다 지뢰를 밟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이병헌을 북한군 송강호는 그냥 지나치려한다. 이병헌은 “그냥 가면 어떡해!”라며 눈물을 흘리고 간절하게 살려달라고 했다. 이 장면은 관객을 빵 터트렸다.
임금이 용변을 보기 위해 쓰는 이동식 변기 매화틀 신을 비롯해 도승지 허균(류승룡)과 마주하며 위축된 표정을 짓는 등 깔깔대게 만드는 장면들이 많다. 이병헌이기에 더 웃기고 매력적이다.
이병헌이 극 전반을 끌고 가지만 상대역들도 관객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한 번도 활짝 웃지 않고 이병헌과 대적하며 웃음을 선사하는 류승룡, 눈물로도 웃길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호위무사 김인권, 쓸쓸해 보이는 중전 한효주가 힘을 제대로 실었다. 또 ‘도가니’에서 극악무도한 범죄자를 연기했던 장광은 조내관으로 등장, 깜찍한 웃음을 선사한다.
영화는 ‘광해군일기’ 중 “숨겨야 될 일들은 조보(朝報)에 내지 말라 이르다”라는 한 줄의 글귀에서 시작한다. 목숨을 노리는 세력을 피해 자신과 똑같은 이를 방패막이로 삼으려던 광해지만, 반역 세력의 농간으로 아편에 취해 병상에 눕는다. 와병중인 광해를 대신해 왕과 외모, 목소리 등 모든 것이 똑같은 기생집 만담꾼 하선을 대역으로 내세워 15일간 최고 권력자로 조선을 호령하는 일종의 쇼를 벌인다.
또 사극이라는 외피를 입고 코미디를 섞어 적절히 정치를 조롱한다. 천민도 들으면 이해하기 쉽고 너무나 당연한 대동법. 땅이 많으면 쌀을 더 많이 내고, 적은 땅의 지주는 쌀을 적게 내면 되는데 고관들은 자신들의 이득을 위해 배척한다. 호패제와 중국 명나라에 바치는 조공 등도 언급하며 국민보다 자기 이권만 챙기려는 현실 시대에도 일침을 가한다.
백성을 생각하는 왕을 꿈꾼 기생집 만담꾼의 정치라니…. 허황된 이야기일 수 있다. 하지만 가난하다고 꿈조차 가난하진 않듯이 비루하게 먹고 살았던 천한 신분일지라도 무엇이 바른 정치인지 안다. 이병헌이 연기하는 하선과 광해는 웃음과 함께 지도자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똑똑하게 전한다. 131분. 15세 이상 관람가. 20일 개봉.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현철 기자 jeigun@mk.co.kr]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