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조민수(47)는 김기덕 감독을 만나 너무나 좋은 듯 했다. 그토록 갈망하던 새로운 역할을 김 감독의 신작 ‘피에타’를 통해 만났기 때문이다. 여배우가 나이를 먹으면 어느 순간, 그는 엄마 역할로 국한된다. 또 시간이 흐르면 할머니를 연기하거나 연예계를 떠난다.
“제 안의 많은 것을 표현하고 싶었는데 영화 출연 기회는 거의 없었어요. 찾아주는 감독님이 많지 않았거든요. 김 감독님이 가능성을 봐준 거죠. 솔직히 드라마 ‘내 딸 꽃님이’가 후반부에 들어갔을 때 ‘피에타’에 참여했는데 드라마 할 때와는 다르게 너무 신났어요. 드라마 때문에 밤새고 영화 촬영하러 갔는데 행복하더라고요.”(웃음)
1980~1990년 노출이 있는 영화에서 몇 차례 러브콜을 받았지만 자신 없어 거절했다. 이후 영화 제의는 끊겼다. 2005년 ‘소년, 천국에 가다’에 나오긴 했지만 특별출연이었다.
조민수는 “80년대에는 ‘뽕’이나 ‘무릎과 무릎사이’ 같은 영화들이 유행이었는데 나는 노출하는 연기를 할 못하겠더라”며 “자연스럽게 드라마로 빠지게 됐고, 당시 감독님들과 친분이 없어졌다. 요새 감독님들과는 더 연이 없어서 아는 분들이 없다. 자연스럽게 영화와는 인연이 없게 됐다”고 아쉬워했다.
김 감독의 부름은 어느 때보다 좋았다. 김 감독이 조민수의 현 소속사(잠보엔터테인먼트)와 작업을 함께 한 친분이 있어 자연스럽게 ‘피에타’의 여자주인공으로 조민수가 나설 수 있었다. 촬영에 합류하는 건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는 ‘영화계 이단아’로 불리는 김 감독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김 감독을 만나는 순간 경계심과 긴장감이 사라졌고, 녹아내렸다.
“김 감독님의 전작들이 솔직히 불편했어요. 여성을 바라보는 특유의 시각도 싫었고요. 시나리오는 보지도 않고 일단 만나자고 했는데 감독님이 사람 냄새 나는 분이시더라고요(웃음). 자기 이름 석 자를 책임지는 분이라는 것도 알게 됐어요. 원래 감독이 연기자를 관찰하고 파악해야 하는데 오히려 제가 관찰했다니까요.”
조민수는 “‘피에타’는 피도 안 보이는데 잔인하고, 벗는 것도 없이 야하다”고 강조했다. “많은 생각을 해주는 영화”라고 자신했다. 김 감독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작업을 함께 한 그는 김 감독도 자신에게 고마워해야 한다고 했다. “여러 가지 인터뷰에서 감독님을 향한 선입견을 잠재우고 있다”고 웃으며 “이전의 이야기들은 알 수 없지만 내가 겪어본 김 감독은 이름 석 자에 책임을 질 줄 아는 분이라고 느꼈다”고 회상했다.
조민수는 1983년 CF모델을 시작으로, 1986년부터 연기자 생활을 했다. 오래 활동했지만 “연기는 여전히 어렵다”고 털어놓았다. “도자기 굽는 장인은 30년을 하면 익숙해진다고 하더라. 연기도 나이 들면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건 아니었다. 매너리즘에 빠질까 무섭다는 생각을 하며 계속 노력한다”고 했다.
“한석규 선배 연기를 보며 박수쳤어요. 이번에 종합선물상자 같은 연기를 하시더라고요. ‘얼마나 행복할까, 나도 저런 연기하고 싶다’고 부러웠죠. TV로 시상식을 봤는데 한석규 선배에게 꽃이나 선물 주는 후배들이 거의 없더라고요. 거기 있던 후배들에게 그랬어요. ‘너넨 저런 선배가 있는 게 안 감사하니? 난 정말 감사한데 꽃다발도 안 주더라’라고 혼냈죠. 연기 잘하는 선배들 보면 너무 좋아요. 그분들 에너지가 터질 때 너무 존경스러워요.”
연기의 갈증으로 인한 부러움을 ‘피에타’로 조금이나마 해소한 때문일까. 그는 “내가 가진 다른 색깔을 표현하려 하면 엄마 역할이 계속 들어와도 상관은 없는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새롭고 참신한 역할을 향한 갈망은 아직도 크다. 그는 “나이가 좀 든 남자 배우들은 다양한 직업군이 많아 부럽다”며 “여자 배우들에게도 다양한 직업군이 있고 여러 가지 캐릭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현철 기자 jeigun@mk.co.kr/ 사진 강영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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