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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만의 드라마 컴백, 마흔 줄에 선택한 말랑말랑한 멜로, 쪽잠을 청할 수밖에 없는 강행군이 짐작됐다.
오랜만에 HD 화면 앞에 선 그의 얼굴을 보고 세월의 흐름을 실감한 팬들도 있었다.
최근 명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장동건 역시 “HD TV의 위력을 말로만 들었는데, 첫 방송을 보고 나도 깜짝 놀랐다”며 웃었다.
눈가에 부쩍 생겨난 주름살을 보면서 “젊었을 때 이런 드라마 하나 찍어놓을 걸” 뒤늦은 후회를 하기도 했단다. 하지만 이내 “20대 초반이나 30대 초반이었다면 지금처럼 내려놓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좋은 컨디션이 아니었다는 게 유일하게 드라마를 끝낸 후 아쉬움”이었다지만, “이번 작품을 통해 하고 싶은 건 원 없이 다 해봤다”며 후련한 표정이다.
아닌게 아니라, 최근 몇 년간 할리우드 진출작 ‘워리어스 웨이’와 강제규 감독의 ‘마이웨이’를 찍느라 10년치 고생은 다 했을 그였다.
김은숙 작가의 러브콜을 받고 주저 없이 선택한 작품. ‘신사의 품격’은 그에게 또 하나의 터닝 포인트가 됐다. “시청자와 바로 호흡하고 공감한다는 게 이런 재미구나”도 새삼 느꼈다.
촬영 전 장동건은 캐릭터보다 로맨틱 코미디에 대한 부담이 더 컸다고 한다. “대놓고 멜로 대사를 내뱉는 건 처음이었는 데다, 지금까지 로맨틱 코미디의 남자 주인공들치고는 위험한 지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보편적으로 사랑받을 짓을 하는 캐릭터가 아니잖아요.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캐릭터니까. 제 딴에는 시청자들에게 정감 있게 다가가려고 대사보다 더 의도적으로 망가진 부분들이 있어요. ‘신사의 품격’에 나오는 인물 중 선을 넘나드는 유일한 캐릭터였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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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빈이한테 코믹 연기의 고충을 토로했더니 대놓고 과감하게 하라고 하더군요. 하다 보면 더 욕심날 거라고 했는데, 정말 그렇게 됐어요.”
SOS를 쳐가며 로맨틱 코미디에 욕심을 낸 나름의 이유도 있었다.
“그동안 저의 무게감이 스스로도 부담스러웠어요. 그것을 털어내고 싶었고, 필요한 시점에 이 드라마를 만난 거죠. 영화 ‘위험한 초대’는 초고 시나리오를 만났을 때 옴므파탈을 되게 해보고 싶었는데 그때 만난 작품이고요. 만약 영화가 먼저 개봉됐다면 굉장히 신선해 보였을 텐데… 드라마 다음에 선보이게 돼 덜할 수도 있겠네요.”
‘진지한 장동건’을 훌훌 벗어던진 건 만족스런 부분이다. 오가며 마주치는 팬들이 사인 종이를 편하게 내미는 것만 봐도 달라진 풍경이다. “과거엔 저를 보면 부담스러운지 선뜻 못 다가오셨는데, 지금은 다들 친근하게 다가오세요.”
청춘스타로 안방극장을 호령하다 충무로로 건너가 고생을 사서 했다. 20년 이상을 톱스타 장동건으로 살아온 것 같지만, 그에게도 남모르는 슬럼프와 고민이 많았다.
10년 이상을 영화에만 올인했던 이유는 “큰 감정을 연기하는 게 좋아서”였다. 거기서 오는 카타르시스에 기뻤고, ‘친구’의 대박 이후 천만 영화(태극기 휘날리며)의 주인공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도 했다. 그런데도 그 행복감을 편하게 만끽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유는 “항상 다음이 고민”이었기 때문이다.
“장동건이란 배우는 20년간 한 번도 좌절이 없었을 것 같지만, 디테일하게 들어가면 굴곡이 많았어요. 처음 연기를 하면서는 이 세계에 들어온 두려움이나 고민이 있었고, 연달아 다섯 작품이 망가진 적도 있었고요. 그때 초월했어요.(웃음) 대중들은 한 번도 실패하지 않은 배우로 알고 있기도 하지만, 한동안은 아무 고민 없는 매너리즘에 빠지기도 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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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인 고소영이 ‘힐링캠프’에 출연해 “나한테도 안 해주는 백허그를?”이라며 발끈했을 땐 “속으로 뜨끔했다”고. “원래 소영씨는 이벤트 하는 남자는 싫다고 했는데, 그런 것도 아닌가봐요. 다 좋아하는 것 같더라고요.(웃음)”
가정을 꾸리고 아내와 아이가 생기면서 적잖은 영향도 받는다. 어떤 점이 달라졌다고 묻자 “키스신을 찍을 때도 주저하게 되더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러면서 “베드신은 앞으로 안하는 게 나을 것 같다”며 행복한 엄살을 떨었다.
천하의 장동건도 꽃다운 나이를 지나 어느덧 마흔이 됐다. “할 수 없는 역할이 점점 많아지겠지만, 반대로 할 수 있는 역할도 많아진다”는 그에겐 한 템포 쉬어갈 줄 아는 여유와 지혜가 생겼다.
“30대까진 무엇을 향해 걸어간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40대는 걸어간다기 보다 흘러간다는 느낌이 들어요. 제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도 있구나 싶고, 때로는 몸을 맡겨야 한다는 걸 알게 됐죠.”
아직 해보지 못한 ‘첩보물’은 숙원사업 중 하나다. 한 가지 더 꼽자면 허진호 감독과 작업하면서 “섬세하고 작은 것도 배우가 연기하는 것에 달라질 수 있는 것”에 매료됐다.
“요즘엔 대중적인 영화 말고 배우의 디테일한 연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작가주의 영화에 관심이 가더라고요. 그 영화(위험한 관계)를 하면서는 연출에도 관심이 생겼어요. 현장에 있으면 기웃거려 보게 되고. 자연스럽게 ‘나라면 이렇게 해보고 싶은데’란 생각도 들고요. 아직은 관심이고. 엄두는 안 나요.(웃음)”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향희 기자 happy@mk.co.kr/사진=팽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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