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미도(30)는 영화 ‘나는 왕이로소이다’(감독 장규성)에서 존재감을 제대로 드러낸다. 벌써 데뷔 8년차, 다양하고 개성 강한 역할을 맡아 연기를 했지만 이렇게 빛났던 적이 있던가.
거지와 왕세자 역할로 1인2역을 하며 망가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은 주지훈, 코믹의 대가 박영규·임원희·김수로, 연기 잘하는 대선배 변희봉이 빛나고 있는 이 영화에서 이미도는 자신이 나오는 장면마다 관객을 단숨에 사로잡아 버린다. ‘건축학 개론’에 신 스틸러 ‘납득이’ 조정석이 있었다면, ‘나는 왕이로소이다’에는 ‘세자빈 심씨’ 이미도를 기억할 만하다.
특히 날라차기로 화롯불을 넘어뜨리고, 검지와 엄지로 차력을 방불케 하는 촛불 끄는 장면, 주지훈과의 목욕신은 관객들을 박장대소하게 한다.
화제가 된 화롯불을 걷어차는 신도 당초 없었는데 갑작스럽게 생겼다. 감독의 주문에 당황한 이미도는 “이걸 왜 차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는 않았지만 감독님의 요청에 툭하고 찼다”며 “평상시 운동을 좋아하고 점프도 잘해서 두 배로 더 멋지게 찰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해 아쉽다”고 웃었다.
이미도는 오디션을 보고 이 역할이 자신에게 딱 맞는 역할임을 감으로 알았다고 했다. “오디션 때 누구도 할 수 없는 내 역할이구나라고 생각했다”며 “촬영 이틀 전에야 출연이 결정됐지만 ‘이 역할은 내 것’이라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특히 세자빈 역할이라서 무척 마음에 들었다. 실제 전주이씨 해안군파 18대손인 그는 “아버지가 어렸을 때부터 농담으로 ‘네가 조선시대 때 태어났으면 공주’라고 하셨다”며 “아버지는 오픈세트장까지 놀러 와서 응원해주셨다. 작은 역할이지만 기분 좋게 양념 역할을 제대로 하라고 하셨다”고 웃었다.
이미도는 그간 영화 ‘오싹한 연애’에서는 유진, ‘반가운 살인자’에서는 쭈꾸미 역할로 등장했다. 이밖에도 ‘시라노 연애조작단’의 류현경의 친구 소윤, ‘부당거래’의 이동석 부인, ‘마더’의 여고생 흉터,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의 현자 역 등으로 관객을 찾았다. 많은 역할을 했지만 알아봐주는 사람이 적으면 서운하지 않느냐고 하니 “영화에 부족한 인물이 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영화 속 캐릭터에 이미도가 묻힌 것 같다”고 별 신경을 쓰지 않는 듯 했다. 하지만 분명 더 열심히 하는 자극제가 됐다.
“제가 나온 영화 속 캐릭터를 설명하면 ‘그게 너였어?’라고 놀라세요.(웃음) 서른 살이 되고 나서 자신감이 더 생긴 것 같아요. 또 책임감도 생기게 됐다고 할까요? 하지만 제가 인기가 생길 것이라는 큰 기대를 하진 않아요. 재미있어 하시니깐 기분이 좋은 것으로 만족해요. 솔직히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으로 뭔가 큰 변화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없었거든요.”(웃음)
전라남도 광주 출신인 그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그렇게 크진 않았다. 살레시오여자고등학교 연극반에서 연기의 맛을 알게 된 그는 청소년 연극제 등의 대회를 석권했다. 최우수 연기상을 받고 광주에서 연기 천재라는 소리를 들었다. 상도 상이지만 각 학교에서 모인 연극반 친구들과 함께 강의를 들은 적이 있는데 파리와 책, 라면이라는 세 가지 소재로 즉흥 연기를 할 때 자신이 보여준 연기로 천재라는 소리를 들었던 일화를 전했다.
“친구들은 라면을 먹고 있다가 파리가 날라 오니 책으로 때려잡는 연기를 했죠. 하지만 저는 제가 파리가 돼 연기를 시작했어요. 라면이 너무 먹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니 옆에 놓인 책에서 요리법을 보고 요리를 해요. 그러다가 라면 열기에 날지 못하고 거기에 빠져죽죠. 결론까지 명확했는데 그것 보고 다들 웃었고 감탄했어요. 연기 천재라고 하더라고요.”(웃음)
그렇게 친해져서 목욕신도 너무 자연스럽게 나와 관객을 폭소케 하는가 보다. “‘아잉~’하고 덕칠한테 달라붙는 장면 있잖아요? 정말 전 진심으로 찰싹 붙었고, 또 지훈씨는 진심으로 도망가려고 한 거예요. 지훈씨가 물 튀기는 게 설정이 아니라 즉흥적으로 진짜 도망가려고 했죠. 리액션이 좋고 호흡도 잘 맞아 놀랐어요.”(웃음)
여배우지만 멜로에 대한 욕심은 없다는 이미도. “인간적인 소시민의 이야기더라도 깊이 있는 역할을 맡아서 제대로 연기를 하고 싶다”고 바랐다. ‘부당거래’ 때 금치산자 역할로 캐스팅 됐을 때 “흉내만 내는 게 아니라 정말 그 사람들을 알고 싶어 3개월 전부터 병원을 돌아다니고 연구했다”는 것만 봐도 그가 제대로 연기를 하고 싶다는 바람과 열정이 느껴진다.
이미도는 벌써 또 다른 작품에 캐스팅돼 촬영을 하고 있다. 우여곡절이 많았던 영화 ‘26년’에서 진구가 연기하는 조직폭력배 진배의 엄마 역할로 5·18 민주화 운동의 산 역사를 증언한다. 20대, 30대, 40대, 50대 역할로 단 네 장면이 나올 예정이지만, 준비를 철저히 할 그이기에 벌써부터 새로운 모습이 기대된다.
한편 ‘나는 왕이로소이다’는 왕이 되기 싫어 월담을 강행한 세자 충녕과 엉겁결에 그 자리를 차지하게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현철 기자 jeigun@mk.co.kr/ 사진 팽현준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