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반집 노비로 배운 건 없지만 힘은 꽤 쓸 줄 아는 덕칠. 3년 만에 스크린으로 복귀하는 주지훈이 사극 코미디 ‘나는 왕이로소이다’에서 맡은 역할이다. 주지훈은 극중 유약하고 책만 읽기 좋아하는 충녕도 맡아 1인2역에 도전했다. 훗날 세종대왕이 되는 충녕은 박식하고 외모도 번듯하며 강단 있는 인물로 변하는 모습도 보여야 하는 법. 두 역할을 번갈아 연기한 주지훈은 서로 다른 두 배우가 각기 다른 캐릭터를 연기한 것처럼 덕칠과 충녕을 제대로 소화해냈다. 오랜만에 복귀한 그는 작심한 듯 코믹한 모습을 선사해 눈길을 사로잡는다.
‘나는 왕이로소이다’는 태종(박영규)의 셋째 아들 충녕(주지훈)이 주색잡기에 빠진 큰 형 양녕(백도빈)을 대신해 세자로 책봉된 뒤, 즉위식까지 3개월 동안 일어나는 일을 담았다. 흔히 일반인들이 알고 있는 세종대왕의 중요 업적 가운데 하나인 한글창제와 관련한 것이 아닌, 즉위 전 충녕에 무게중심이 쏠린다.
사건은 이때부터 시작이다. 충녕이 없어진 사실을 안 호위 무사 황구(김수로)와 해구(임원희)는 궁 밖에 쓰러져 있는 덕칠을 충녕으로 오해, 궁 안으로 데려온다. 하지만 데려온 인물이 충녕이 아님을 아는 건 순식간. 즉위식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왕세자가 없어진 사실이 알려지면 목이 달아날 판이니 덕칠에게 충녕 행세를 시킨다. 황구는 덕칠을 맡아 왕세자 역할을 하게끔 하고, 해구는 사라진 충녕을 찾아 길을 나선다.
노비가 왕세자 노릇을 하는 게 도대체 쉬울리 없다. 꼬질꼬질한 얼굴과 발, 손가락으로 스윽하며 엄청난 양의 때가 나올 것 같은 몸과 덕칠의 언행 하나하나가 웃음 포인트다. 왕세자 행세를 하는 덕칠의 모습을 보고 황구는 조마조마 하지만 그 상황을 지켜보는 관객은 웃을 수밖에 없다. 실수 투성이 캐릭터에 어설픈 행동, 무엇보다 주지훈의 그 표정에 웃지 않을 이는 없어 보인다.
행색이 남루하고 누가 봐도 덕칠인데 왕세자라고 우기는(?) 충녕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아무도 믿어줄리 없는 사실을 항변하지만 소용없다. 본인은 답답하겠지만 충녕을 향한 매질도 웃음으로 다가온다. 충녕과 함께 고생길에 들어선 해구의 호위도 눈물겹지만 웃기다. 호위 무사이긴 한데 어설프고 싸움도 그리 잘하는 편이 아닌 그는 유랑길에 오른 충녕을 보살핀다. 임원희식 코미디 표현법이 이번에도 제대로 꽂혀 웃음이 터지지 않고 배기지 못한다. 심각한 상황에서, 진지한 표정으로 웃음을 주는 건 임원희의 탁월한 연기 때문이다.
영화는 중반까지 한바탕 웃을 수 있는 재미로 가득 찼다는데 이견이 없어 보인다. 각 장면마다 웃기는 신이 수차례 나온다. 후반부로 달려갈수록 성군이 되기 위해 변해가는 충녕이 지루하게 다가오는 이도 있을 법하다. 하지만 인간적인 충녕의 모습으로 극의 방향을 틀어 생각할 거리를 던진 게 감독의 의도다.
이 영화를 다른 편에서 주목할 이유는 백성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나라를 통치하려 한 성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현철 기자 jeigun@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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