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석(44). 이제 이 이름 앞엔 ‘배우’라는 수식어는 따로 필요 없다. 이름 석자만으로 티켓파워이며, 연기력이고, 존재감이다.
비단 배우로서 일군 명성 뿐 아니다. 최근작에서 줄줄이 흥행을 기록했다. 자주 비교되는 송강호, 최민식, 설경구보다 흥행 타율에선 우위다.
25일 개봉한 ‘도둑들’은 이런 그에게 날개까지 날아줬다. 개봉 첫날 43만 이상의 스코어를 찍었고, 2일 만에 100만에 육박했다. 이 정도면 대박 흥행이다.
최근 중구의 한 호텔에서 만난 그는 “1000만도 바라볼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1000만이란 숫자는 인간이 예측할 수 있는 범주가 아니다. 운에 맡겨야 한다”고 섣부른 예측을 경계했다. 그러면서도 “최동훈 감독의 작품 중 ‘도둑들’에 가장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며 강한 만족감을 드러냈다.
“대한민국에서 이런 캐릭터에 개성을 부여해 앙상블을 조율할 수 있는 감독은 최동원 밖에 없어요. ‘도둑들’은 최동훈 감독의 일사분기 종합판이라 할 수 있죠. 영화 한편에 10명을 등장시켜 2시간 넘게 끌고 가야한다는 건 굉장한 힘과 영리한 시나리오가 요구돼요. 힘들고 긴 호흡을 가진 큰 영화를 멋지게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범죄의 재구성’ ‘타짜’ ‘전우치’에 이은 최동훈 감독과 4번째 작품. 이쯤되면 최동훈 감독의 ‘페르소나’란 단어가 떠오르지만, “우리들에겐 룰이 있다. 시나리오를 받고 거절해도 된다는 것”이라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지 않다면 옛날에 선거할 때 돈 주고 표 찍어달라는 거와 뭐가 달라요? ‘다음 작품에 날 안 써도 좋다’, 저 배우와의 정이나 인간관계 때문에 출연하는 건 아니라고 봐요. 근데 최동훈 감독의 작품은 늘 흥미롭죠. 캐릭터들이 살아있고 빼어나니까.”
김윤석은 최동훈 감독의 장점에 대해 “캐릭터와 이야기들이 강력하게 붙는다는 것. 스토리에 말려서 캐릭터가 죽는 게 아니라 팽팽하게 산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 중 김윤석이 연기한 마카오 박은 단연 매력적이다. 극의 중심을 이끌어갈 뿐 아니라, ‘태양의 눈물’이라는 다이아몬드를 훔치기 위해 한국과 중국의 도둑 10명을 마카오로 불러들인다. 작전 지휘를 하며, 누가 누구의 뒤통수를 칠 것인지도 꿰뚫어보는 ‘고수’다.
그는 이 역할을 위해 체중을 70kg대로 줄이고, 위험천만한 와이어 액션도 감행했다. “등산복 하나 입고 줄을 탔다”고 엄살이지만, 얼굴이 확연하게 노출되기에 대역을 쓸 수 있는 장면이 아니었다. 특히 “부산 액션신은 마지막 피치를 올리는 화룡정점 장면이었다. 한 달 동안 외롭게 촬영했지만 스태프와 감독, 배우 모두가 최선을 다해 찍었다”고 했다.
김혜수와 러브신은 “열 테이크 이상 갔던 것 같다”고 한다. 그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친한 여배우여서 편하게 촬영했지만, 멜로신은 필름에 담아내는 것 자체가 굉장히 어렵다. 더 하면 괴로울 것 같았다”며 웃었다.
영화는 화려한 캐스팅으로 제작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한중 톱배우 10인의 연기 대결은 그야말로 불꽃 튄다. 그들의 비주얼과 캐릭터를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눈은 호강한다. 일각에선 ‘오션스 일레븐’에 빗대어 설명하지만, 김윤석은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 “‘오션스 일레븐’은 남자 영화다. 그러나 ‘도둑들’은 아시아 주요 도시를 돌며 촬영했고, 한국형 케이퍼 무비라고 할 수 있다”는 것.
“국경을 넘어 모여든 그들을 보면서 새삼 느낀 건 “아, 배우들은 다 똑같구나”였죠. 보도책처럼 허울 좋은 말이 아니라, 작품에서 나만 칭찬받는 건 어리석은 일이에요. 함께 했던 모든 배우들이 자신의 영역 안에서 최선을 다해줬어요. 깨끗하게 치고 빠져나가야 할 타이밍을 알 때 환상적인 앙상블이 빚어지는 거니까.”
김윤석은 비결을 묻는 질문에 “이제는 작품성과 대중성을 구분할 필요가 없다”면서도 “내가 흥미를 느끼는 캐릭터 요소 중 하나는 고독하다는 거다. 그 속에서 찾아먹는 재미가 엄청나다”고 했다.
“사실 (남들이 모르는) 슬럼프가 올 때도 있죠. 정체되어 있다는 걸 스스로 느낄 때 공포스럽죠. 창조적이지 못하면 살아있는 게 아니니까요. 그럴 땐 기를 쓰고 애 쓸 필요가 없더군요. 차라리 확 놓아버리면 다시 올라오죠. 생명이란 그런 거죠. 다시 얻으려고 발버둥치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니에요.”
머리가 복잡해지면 가족과 함께 여행을 떠난다. 재충전의 방법이다. 스크린 밖에선 평범한 40대 가장일 뿐이라는 그는 “일상에선 순진하다. 작품에서처럼 에너지를 그런 곳에 쓰고 싶지 않다”며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향희 기자 happy@mk.co.kr/사진=팽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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